'마이 네임' 폭력적 서사 속 지우의 아픈 성장

이정희 2021. 10. 26.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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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넷플릭스 <마이 네임>

[이정희 기자]

장안에 화제가 되고 있는 <오징어 게임>에 앞서 OTT 단독 드라마로 화제를 모았던 작품은 2020년 김진민 피디의 <인간 수업>이다. 생존을 위해 성매매 알선이라는 범죄적 수단을 선택한 한 소년과 그를 둘러싼 인간 군상을 통해 '성장'의 진실한 의미를 질문했던 드라마는 청소년물임에도 TV에서는 결코 다루어 질 수 없는 잔혹한 설정을 통해 화제작이 되었다. 

화제작이었던 만큼 마지막 회차, 여운을 남기며 사라진 주인공들로 인해 시청자들은 당연히 시즌 2를 기대했다. 하지만 김진민 피디는 지수 대신 또 다른 청소년 '지우(한소희 분)'를 데리고 돌아왔다. 또 다른 의미에서의 청소년 지우의 '인간 수업'이다.  
 
 마이 네임
ⓒ 넷플릭스
 
청소년 지우의 '인간 수업'

그런데 역시나 아직 고등학생인 지우의 처지는 더 혹독하다. 도박중독인 아버지가 돌보지 않은 지수보다 한 술 더 떠서 조폭에 가담한 약쟁이인 아버지가 자신의 눈 앞에서 죽어갔다.

아버지로 인해 형사들이 학교까지 따라다니고 그로 인해 대놓고 따돌림을 당하던 지우가 시끌벅적하게 '자퇴'를 선언한 날, 하필이면 그날이 지우의 생일이었다. 경찰의 수배를 받고 피해다니던 아버지는 그래도 생일이라고 꽃다발과 케이크를 보냈다. 하지만 그래서 더 화가 난 지우는 전화를 건 아버지에게 한껏 자신의 감정을 토해냈다. 

지우의 처지를 알게 된 아버지는 어렵사리 집으로 돌아왔지만 지우가 보는 앞에서 죽음을 당하고 만다. 자기 자신조차도 아직 감당하기 힘든 나이, 거기에 지우는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부채까지 짊어지게 된다. 상처입은 지우가 할 수 있는 선택은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자신을 던지는 것이다. 

자신이 살기 위해 남을 팔아넘기는 '짓'을 하게 된 청소년 지수와 규리가 겪는 일을 통해 스스로 '인간다움'을 질문하게 되는 과정을 다룬 드라마가 <인간 수업>이라는 절묘한 제목을 가지는 것처럼, 복수를 위해 자신을 던지고 지운 지우가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과정을 그린 <마이 네임> 역시 다층적인 의미를 담긴 제목이다. 

극중 지우는 복수를 위해 평범한 청소년이었던 자신을 지우고 아버지의 동지라 여겼던 동천파 보스 최무진(박휘순 분)의 수하로 들어간다. 당연히 조폭 조직인 만큼 남자들만 득시글거리는 '똘마니 양성소'의 막내로 던져진 지우는 '여성'으로서는 불가능한 상황의 담글질을 거친다.

하지만 지우의 여정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아버지를 죽인 총이 경찰의 것이라는 이유로 최무진은 지우가 경찰 조직의 '언더 커버(첩보 요원)'가 되어주기를 요청하고 지우는 기꺼이 다시 한번 자신을 지우고 여형사 오혜진으로 거듭난다. 

전쟁의 여신 아테나인가, 폭력 서사의 꽃인가 

아버지가 죽는 순간, 지우가 가장 버리고 싶었던 건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이었다. 그리고 지우가 동천파의 막내에서 형사 오혜진이 되는 과정은 아버지를 죽인 자를 향한 복수의 과정이지만 바로 자기 자신을 버리는 과정이기도 하다. 지우는 아버지가 죽는 순간 자신도 '죽였다.'

8부작의 대부분을 영혼 없이 살의만이 느껴지는 눈빛으로 일관하는 지우, 지우는 자신을 지웠다. 아니 지우고 싶었다. 조폭 약쟁이 딸이라는 치욕스런 수식어도, 아버지를 죽인 딸이라는 상흔도. 더불어 여자라는 성정체성도, 아직 꿈에 부풀 나이의 청소년도 사라졌다. 인간이라 할 그 무엇도 다 버리고 싶었다. 

'이름'은 한 사람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첫 번째 징표이다. <마이 네임>은 그 대표적 정체성조차 버리고 복수를 향해 달려가는 지우의 서사를 통해 역설적으로 성장을 그려낸다. 이름을 버리고 들어간 경찰의 수사 과정에 참여하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처럼 이름을 버리고 오랫동안 살아온 아버지의 진짜 모습을 알게 된 것이다. 진짜 아버지를 통해 지우는 비로소 자신이 부끄러운 조폭 약쟁이 딸이 아니라 자랑스러운 형사의 딸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얻게 된다. 더는 부끄럽게 자신을 버릴 필요가 없는 존재인 것이다. 

<인간 수업>이 지수와 규리 곁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미덕을 끝내 놓치지 않는 이왕철(최민수 분)이라는 '어른'의 울타리를 만들어 준 것과 달리, 지우의 성장은 보다 혹독하다. 

신화적 영웅 서사에서 평범한 청년이 영웅으로 거듭나는 과정은 아버지를 '극복'하는 과정이다. <마이 네임>은 여고생 지우에게 그런 영웅 서사의 통과 의례를 거치며 자신을 찾아가도록 한다. 

여고생인 지우에게는 이미 어머니는 없다. 극중 어머니에 대해서는 설명조차도 없다. 지우의 세계가 무너진 건 아버지가 사라져서였고, 그 아버지를 대신한 건 또 다른 아버지이자, 연인 같은 최무진이다. 그리고 지우는 복수를 위해 아버지의 세계, 그리고 남성의 세계에 자신을 던진다. 아버지 세계의 화법인 폭력을 통해 자신을 증명해 내고, 결국 복수를 해낸다.

마치 아버지 제우스의 머리에서 창과 방패를 든 무장한 모습으로 태어난 아테나처럼 '모성'을 지운 채 등장한 지우는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자신을 던지고, 그 과정에서 또 다른 아버지이자, 연인인 듯한 최무진을 통해 성장하고, 동료 전필도(안보현 분)를 통해 자신을 찾으려 한다. 그런 면에서 <마이 네임>은 여성 주체적인 이야기인 듯하지만, 그 여성의 서사는 온전히 남성의 세계 위에 얹혀져 있다.

그런 의미에서 '아이러니'하다. 지우의 복수 서사를 '아테나' 식의 전쟁으로 바라보아야 할 것인가, 그저 시대적 트렌드에 맞춘 눈요깃거리로써 폭력 서사의 꽃으로 여성을 도구화한 것인가 하는 지점에서 <마임 네임>은 숙제를 남긴다. 

논란이 되고 있는 전필도와의 애정신, 여성으로서는 물론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조차 버린 채 살아가던 지우가 진실을 알고, 복수 대신 인간으로서의, 여성으로서의 '희망'을 지피기 위한 상징적 장치로서 그 신은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여배우의 전라로 구성된 신의 과함은 또 다른 문제이다. 그런데 과한 걸로 치자면 8부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폭력신의 과함보다 더할까 싶다. 이건 이른바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OTT기반 드라마들의 딜레마이기도 하다. 

자신의 생존을 위해 남을 팔아치우는 것도 꺼리지 않았던 <인간 수업>의 소년은 수업의 대가를 처절하게 치른다. <마이 네임>도 다르지 않다. 자신을 용서할 수 없어 아버지의 복수를 향해 자신을 던진 지우 역시 복수를 하기 위해 타인의 피를 흘린 대가로 또 한번 자신의 '편'을 잃는다. 자신의 칼을 접어 복수의 악순환에서 자유로워지려 했지만 그녀가 선택한 폭력의 길은 그런 그녀를 자유롭게 허락하지 않는다. <인간 수업>에서 그렇듯, 그들이 선택한 길의 대가는 온전히 자신이 짊어져야 하는 것이 '성장'의 통과 의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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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브런치 https://brunch.co.kr/@5252-jh와 <미디어스>에도 실립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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