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듭된 실패, 집 안에 갇힌 삶.. 어디 그 혼자 뿐일까요
[김성호 기자]
▲ <희망의 요소> 스틸컷 |
ⓒ GIFF |
남자는 소설을 준비한다. 신춘문예를 통과하기 위해 작품을 쓰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 벌써 몇 년 째 허탕을 쳤을까. 언제쯤 작품이 공모를 통과해 어엿한 작가가 될 수 있을지. 이제는 감도 잡히지 않는다.
한때는 행복이었던 것이 불행의 족쇄가 되어 있다. 남자에겐 아내가 있다. 대학교 교직원인 아내는 몇 년 째 집에서 소설만 쓰는 남자를 못마땅해 한다. 남자를 바라보는 시선엔 짜증스러움이 묻어난다. 남자는 아내에게 죄를 지은 것만 같다. 아침과 저녁을 해다 바치고 빨래부터 청소까지 집안일을 도맡고 있지만 아내 앞에선 늘 어딘가 민망하다.
거듭된 낙방은 사내에게 자신감을 앗아간다. 하긴, 저를 짜증스럽게 바라보는 아내의 시선이 일말의 자존감도 남겨두지 않는다. 남자는 집 밖을 나가는 일도 얼마 없다. 간단한 산책과 장을 보는 일 말고는 늘 집에만 있을 뿐이다. 늘어난 셔츠와 운동복 차림으로 메마른 피부를 벅벅 긁는 사내의 모습은 누가 봐도 백수다.
아내는 그에게 참지 못하고 말한다. "도대체 언제까지 집에만 있을 거야." 남자가 답한다. "나 다음 주에는 면접 봐." 아내는 남편에게 면접자리를 소개한 친구의 이름을 듣고는 다짜고짜 화부터 낸다. 또 그 사람이냐고, 당신은 배알도 없느냐고, 이용만 당하겠지 하고 말이다.
▲ <희망의 요소> 스틸컷 |
ⓒ GIFF |
절망 가득한 사내의 무력한 삶
<희망의 요소>는 온통 절망으로 가득한 드라마다. 종일 집 안에서만 살아가며 세상과 단절된 한 무력한 사내의 이야기다. 하나뿐인 아내는 다른 남자와 바람을 피고 있다. 그러고도 제 남편을 함부로 취급한다. 그녀가 죄책감을 느끼는 건 제 남편이 비운 집에서 다른 남자와 몸을 섞다 남편에게 그 모습을 들켰을 때 뿐이다.
아내 역시 번듯한 직업을 갖지 못한, 그리하여 가정을 지탱하는데 역할을 하지 못하는 남자에게 실망하고 또 실망하였을 테다. 하지만 성별만 바꾼다면 그는 충실한 전업주부가 아니던가.
영화는 모든 갈등이 표면 위에 드러나며 비로소 변화를 꾀한다. 전반부 내내 방 안에 틀어박혀 별다른 일 없이 지내던 그가 드디어 집 밖으로 나가는 것이다. 부정한 아내를 더 볼 자신이 없어서일까 스스로가 실망스러워서였을까, 그는 제가 쓴 단편을 식탁 위에 놓아둔 채 집을 나간다. 그리고는 할 수 있는 일을 시작한다.
<희망의 요소>가 그린 이야기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연간 이혼이 10만 건이 넘은 지 오래다. 한 해 혼인 건수가 갈수록 줄어 불과 21만 건이니 결혼하는 부부 두 쌍 중 한 쌍이 파국을 맞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심지어 이혼과 혼인의 격차는 급격히 좁혀지고 있다. 그 와중에 비혼인구는 갈수록 는다. 결혼이라는 제도가 유지될 수 있는지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 <희망의 요소> 스틸컷 |
ⓒ GIFF |
주변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이야기
가장 안타까운 건 남편이 꿈을 걸고 있는 공모다. 아무리 노력해도 닿을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좁은 문에 그는 제 운명을 건다. 모든 노력을 들여 이룰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목표를 향해 꿈을 던진다. 영화를 보는 누구도 그가 꿈에 이를 수 있으리라고 함부로 말하지 못한다.
어디 신춘문예뿐일까. 사법시험과 행정고시, 각종 공무원 시험, 임용고시 등을 목표로 수년 씩 수험생활에 매달리는 이가 적지 않다. 그들이 퍼붓는 노력이 언제나 목표에 닿으리라고 대체 누가 보장할 수 있을까. 그 길고 지난한 과정 속에서 많은 이들이 자존감을 잃고 무너져 내리기 십상이다. 그들의 삶엔 희망이 있는가.
영화의 제목은 <희망의 요소>다. 그러나 영화는 남편이 남긴 소설을 끝내 보여주지 않는다. 아내는 그곳에서 '희망의 요소'를 보았다고 말하지만 영화는 끝내 그것이 무엇인지를 언급하지 않는다.
이원영 감독이 이 영화에서 보여주고자 한 것이 무엇인지는 오롯이 관객이 해석할 몫으로 남겨졌다. 낙담으로 가득한 우리네 삶에서 대체 어떻게 희망을 구할 수 있을지, 희망의 요소란 게 대체 무엇인지를 관객이 직접 찾아내야만 한다. 일부 공감이 가는 구석이 없지 않지만 대체로는 무책임하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영화인 건 바로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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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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