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 전 대통령 별세..군부 쿠데타·첫 직선 대통령 '빛과 그림자' 인생

심희정,김경택 입력 2021. 10. 26. 14:22 수정 2021. 10. 26.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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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에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남긴 노태우 전 대통령이 26일 향년 89세로 눈을 감았다.

노 전 대통령은 군부 쿠데타의 주동 세력이라는 낙인과 직접선거로 당선된 첫 대통령이라는 상반된 수식어를 짊어졌던 삶을 살았다.

같은 해 말이었던 15대 대통령 선거에서 대선후보들은 앞다퉈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의 사면복권을 공약으로 내세웠고, 15대 대통령 선거 이틀 후 김영삼정부에 의해 사면복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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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현대사에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남긴 노태우 전 대통령이 26일 향년 89세로 눈을 감았다. 노 전 대통령은 군부 쿠데타의 주동 세력이라는 낙인과 직접선거로 당선된 첫 대통령이라는 상반된 수식어를 짊어졌던 삶을 살았다.

노 전 대통령의 인생 자체가 ‘군부 독재와 민주화 운동’이라는 대한민국 현대사를 극명하게 보여준다는 평가가 뒤따른다. 대통령 재임 당시 공산권 국가들을 상대로 추진했던 북방외교는 그의 최대 치적으로 꼽힌다.

노 전 대통령은 2002년 전립선암 수술 후 건강 악화로 서울 연희동 자택에서 머물러왔다. 노무현 전 대통령 취임식 참석을 마지막으로 이명박·박근혜·문재인 대통령 취임식에 모두 불참하는 등 15년 넘게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최근 건강검진을 이유로 병원에 입원하는 일이 잦았던 노 전 대통령은 결국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장남 재헌씨가 국립5·18민주묘지를 참배하고, 광주를 찾아 5·18민주화운동 피해자에게 직접 사죄의 말을 전하면서 노 전 대통령의 죄과를 서거 전에 대신 씻으려 한 것 아니냐는 긍정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은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군인 출신 정치인으로 전두환 전 대통령과는 육사 동기다. 전 전 대통령과는 제4공화국 당시 군내 사조직인 ‘하나회’를 결성해 79년 12·12 군사 쿠테타와 이듬해 5·17 내란을 주도해 5공화국을 세우는 등 떼려야 뗄 수 없는 동지 사이였다.

하지만 6월 항쟁 이후 국민직선제로 당선된 노 전 대통령이 취임 후 ‘5공 숙청’이라는 명분으로 전 전 대통령을 백담사로 보내면서 사이가 틀어졌다. 전 전 대통령의 그림자에 가린 만년 2인자라는 평가도 받았었다.

노 전 대통령은 전 전 대통령 집권 후 정치인으로 전향했고, 13대 대통령 선거에서 ‘보통 사람의 위대한 시대’라는 슬로건을 내세워 당선됐다. 87년 6월 민주화항쟁으로 직선제 개헌이 이뤄졌으나 당시 민주화 운동의 양대 거목이었던 고(故) 김영삼·김대중 대통령이 후보 단일화에 실패하면서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럼에도 ‘보통 사람’은 현재까지 노태우정부를 상징하는 단어로 기억된다. “나 이 사람, 보통사람입니다. 믿어주세요”라는 노 전 대통령의 말은 오래도록 회자됐다.

퇴임 후인 95년에는 반란수괴·반란모의참여 혐의로 검찰에 구속됐다. 대한민국 역사상 첫 전직 대통령이 구속된 사건이었다. 이듬해에는 12·12 쿠테타, 5·18 광주항쟁 유혈 진압 및 학살에 대한 책임을 물어 전 전 대통령 등 신군부 인사들과 법정에 섰다. 1심에서 징역 22년 6개월을 선고받았고, 대법원은 97년 징역 17년과 추징금 2628억원을 최종 선고했다. 같은 해 말이었던 15대 대통령 선거에서 대선후보들은 앞다퉈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의 사면복권을 공약으로 내세웠고, 15대 대통령 선거 이틀 후 김영삼정부에 의해 사면복권 됐다. 다만 전 대통령에 대한 예우는 기본 경호 외에는 전부 박탈됐다.

재임 중 성과로는 북방외교가 꼽힌다. 노태우정부는 공산권 국가를 상대로 북방외교를 추진해 45개국과 수교를 맺었다. 특히 이 기간 중국·소련과 수교한 것은 노태우정부의 업적으로 남아있다. 89년에는 여야 4당 합의로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이 마련됐고, 91년 서울에서 열린 남북 고위급 회담에서 남북한 화해, 상호 불가침, 교류협력을 골자로 하는 남북 기본 합의서가 채택됐다. 추징금을 여전히 완납하지 않은 전 전 대통령과 달리 노 전 대통령은 2013년 말 추징금을 분할해서 완납했다.

심희정 김경택 기자 simcit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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