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후가 안타를 치면 역사가 남는다

배영은 2021. 10. 26.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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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움 외야수 이정후(23)는 역사를 만들어가는 타자다. 팀의 5강 경쟁과 자신의 타격왕 싸움이 모두 치열한 올 가을, 그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면서 기념비적인 발자취까지 남기고 있다.

이정후는 지난 25일 대전 한화전에서 4타수 4안타(1홈런) 6타점 1득점 1볼넷으로 펄펄 날아 팀의 9-4 승리를 이끌었다. 그냥 안타 4개를 몰아친 데서 그치지 않았다. 1회 초 단타, 5회 초 홈런, 6회 초 2루타, 8회 초 3루타를 잇따라 때려내 데뷔 후 첫 사이클링 히트를 달성했다. KBO리그 역대 29번째이자 키움 소속 선수로는 4번째 기록이다.

장타를 칠 때마다 값진 타점도 올렸다. 5회 초 홈런은 1-1을 만드는 동점 솔로포였고, 6회 초엔 4-1이던 1사 만루에서 적시 2루타를 쳐 주자 셋을 모두 홈으로 불러 들였다. 8회 초의 3루타 역시 승리에 확실한 쐐기를 박는 2타점 적시타였다. 이날 키움이 올린 9점 중 6점을 이정후가 만들어낸 거다.

일거양득이다. 가을 야구를 향해 마지막 스퍼트를 올리고 있는 키움은 경기 중반 시작된 이정후의 장타쇼로 흐름을 가져와 천금 같은 1승을 손에 넣었다. 홍원기 키움 감독은 "이정후는 팀 공격력의 중심이고 활력소다. 이번 경기에서처럼 직접 해결사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공격의 도화선이 되거나 막힌 혈을 뚫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며 "볼수록 감탄이 나오는 선수다. (23세라는) 나이를 생각하면 더 대단하다"고 감탄했다.

이정후 개인에게도 의미 있는 성과다. 한 경기만에 타율을 0.352에서 0.358까지 끌어 올리면서 절친한 후배 강백호(KT)와의 타율 1위 경쟁에서 한 발 더 앞서 나갔다. 아버지인 이종범 LG 코치(1994년 타율 0.393)와 함께 세계 최초의 '부자(父子) 타격왕'에 오를 가능성도 더 커졌다. 대를 이어 타격왕이 된 부자 야구선수는 KBO리그보다 역사가 훨씬 긴 메이저리그와 일본 프로야구에서도 아직 나오지 않았다.

끊임없이 이어지던 근막 통증을 이겨낸 성적이라 더 값지다. 후반기 재개 직후 오른쪽 옆구리 통증으로 한 달 가량 이탈했던 이정후는 최근 같은 부위 통증이 재발해 정상적인 타격을 하지 못했다. 지난 16~20일 열린 5경기에서 연속 무안타에 그치면서 고공행진을 하던 타율도 뚝뚝 떨어졌다. 하지만 휴식을 권하는 트레이닝 파트의 만류를 뿌리치고 지명타자로 경기 출전을 강행했다. 매 경기 1승이 절박한 팀 사정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이정후는 결국 자신의 페이스를 되찾았다. 지난 21일 LG전 3안타, 24일 KT전 2안타, 25일 한화전 4안타를 몰아치면서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아버지는 해보지 못한 사이클링 히트 기록도 보너스처럼 따라왔다. 천부적인 타격 재능에 노력을 더한 그가 투지와 책임감까지 갖춘 '완성형' 타자임을 재확인시켰다.

이정후는 "사이클링 히트라는 기록보다 안타 4개로 팀에 필요한 점수를 냈다는 게 더 크게 와닿는다"며 "최근 야구가 어려워서 나조차 나를 믿기 어려울 때, 아버지가 '너는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대단한 선수'라고 말해주셨다. 항상 격려해주시는 부모님께 감사드린다"고 했다.

배영은 기자 bae.younge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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