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면 진료 2년차..'마약‧항생제' 쇼핑 부작용 뒤따라

유수인 2021. 10. 26. 0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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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일부 의약품 처방 중지..醫 "금지 목록 만든다고 되나" 

국회‧산업계 ‘비대면 진료’ 허용 및 활성화 주장 

의협 “의사-환자 관계 형성 막고 의료비 상승 초래” 

윤기만 디자이너

[쿠키뉴스] 유수인 기자 = “오늘 아침 비대면 진료 플랫폼을 이용해 주문한 의약품이다. 별다른 제약 없이 2, 3분 만에 전화 상담으로 진행을 했고, 마약류 의약품인 식욕억제제와 안전사고 위험이 있는 사후피임약을 처방받을 수 있었다. 게다가 (배달원들은) 이 의약품들을 경비실에 두거나 문고리에 걸어놓고 가셨다.”

더불어민주당 최혜영 의원이 최근 진행된 2021년도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식욕억제제와 사후피임약 제품을 꺼내 들며 한 말이다. 최 의원은 “한시적인 비대면 진료 서비스를 통해서 혜택을 받으시는 분들도 분명히 있지만 제도시행 전에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점들이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비대면 진료 통한 ‘마약류 의료쇼핑’…처방인원 줄었는데도 처방량 늘어

코로나19 상황에서 한시적으로 허용된 ‘비대면 진료 플랫폼’이 마약류 등 의약품 오남용 처방의 온상이 되고 있다.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한시적 비대면 진료’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2월24일부터 올해 4월30일까지 총 201만 3954건의 전화 상담·처방이 이뤄졌다.

의료기관 종별로는 의원이 142만8110건(70.9%)으로 가장 많았고, 그 다음으로 종합병원 22만1036건(11.0%), 상급종합병원 18만637건(9.0%), 병원 7만7617건(3.9%), 한의원 7만6857건(3.8%) 순으로 많았다.

질병별로는 고혈압(51만1874건), 당뇨병(15만4195건), 기관지염(8만6062), 고지질혈증(4만6259), 치매(4만3786건) 순으로 많았고, 연령별로는 60대가 55만7010건(20.2%)으로 가장 많았다.

문제는 비대면 진료를 통한 ‘마약류 의료쇼핑’이다.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졸피뎀 처방 비중이 대면 진료에서보다 2배 이상 높았고, 마약류의 경우는 1.7배 정도 높았다. 

졸피뎀의 경우 명세서 건수(처방 건수) 비중이 2020년(2020.2.24~12.31일)은 대면보다 비대면에서 2.0배, 마약류는 1.6배 높았고, 2021년(2021.1.1~4.30일)은 졸피뎀은 2.3배, 마약류는 1.7배 높았다.

처방 1건당 처방량의 경우는 마약류가 2020년 1.7배, 2021년 1.4배 높았고, 졸피뎀은 같은 기간 각각 1.2배, 1.1배 높았다. 

게다가 비대면 진료가 이뤄지기 전인 2018년과 2019년 같은 기간과 비교해서 비대면 진료가 이뤄진 2020년 처방 인원수가 8.3%(45만9415명) 줄었는데도 처방량이 5.1%(2548만8082개) 증가했다는 것은 비대면에서 마약류 처방 관련 의료이용이 상대적으로 많았고, 처방건당 더 많은 양을 처방받은 것이 영향을 미쳤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이 같은 경향은 올해도 유사하게 나타났다. 2019년 1월~4월과 올해 같은 기간을 비교했을 때 처방인원은 5.7%(18만5584명) 줄었지만, 처방량은 7.6%(1497만8189개) 증가했다.

정 의원은 “비대면 진료는 여러 병·의원을 손쉽게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마약류 등 오남용 우려 의약품은 비대면 처방에서 제외할 필요가 있다”면서 “졸피뎀을 장기 처방 받은 환자들에 대한 부작용 및 의존성 여부를 평가해야 한다. 또 비대면 진료를 통한 비급여 처방은 처방 또는 조제 시점에 중복처방이 걸러지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청소년 등 비대면 의료이용에 특히 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올해 복지위 국정감사에서도 ‘비대면 진료’로 인한 부작용 문제가 잇따라 지적됐다.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비대면 진료의 한시적 허용조치 이후 비대면 진료 플랫폼 약 20개가 생겨났다. 플랫폼 업체 이용자도 많아지고 만족도도 높다는 평가가 있지만, 마약류의약품의 오남용 문제라든지 비급여 의약품, 비필수 의약품을 권유한다든지 환자 선택권을 제한한다든지 하는 여러 문제점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서영석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비대면 진료로 인해 식욕억제제나 발기부전제, 탈모제 등이 무분별하게 처방되고 있다”며 “대리 진료나 허위 진료여부를 확인할 방법도 없고 환자를 확인할 방법도 없다. 처방전 위조 여부도 확인하기 어렵다. 심지어는 조제 장소가 약국인지, 정상적으로 유통된 의약품인지도 확인할 방법이 없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대한의사협회는 지난 7월 9일 대검찰청을 방문해 대면진료 없이 전화로 진료 및 전문의약품 등을 처방한 의사를 의료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 바 있다. 피고발인 의사는 환자가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전화진료 예약을 하면 예약한 환자에게 전화해 진료 및 처방하는 시스템을 이용해 한 번도 대면한 적 없는 환자까지 짧은 전화 통화만으로 전문의약품을 처방했다.

산업계, 비대면 진료 활성화 목소리 

그러나 산업계는 코로나로 인해 촉발된 비대면 진료의 활성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장지호 닥터나우 대표는 복지부 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출석해 “의료서비스 이용이 어려운 환경에서 닥터나우를 통해 도움 받는 분들을 생각하면 한시적 운영이라는 현실이 버겁다. 향후 의료 시스템과 환경 개선을 고민했을 때 비대면 진료는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정부에서 비대면 진료 산업 위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주면 이를 기준으로 안전체계 구축에 힘쓰겠다”고 부연했다.

비대면 진료 허용 후 향정신성의약품이 과다 처방됐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최근 코로나 블루, 자살율 증가 등 여러 상황으로 인해 정신과 진료 수요가 높아졌을 가능성도 고려해 봐야 한다”며 “본질은 약물 오남용을 막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DUR(의약품안전사용서비스) 시스템을 활용하면 진료 및 처방 금지도 가능하고 닥터나우가 도움을 드릴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국회에서는 비대면 진료의 법적 근거를 만들기 위한 의료법 개정안이 잇따라 발의됐다.

강병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원격지 의료인이 환자의 건강 상태를 원격으로 관리하는 의료 원격모니터링을 가능하게 하는 의료법을 대표발의했다. 강 의원이 발의한 의료법 개정안은 의원급 의료기관에 한정해, 고혈압, 당뇨, 부정맥 등 기저질환 재진환자에게 행하는 원격모니터링의 법적 근거를 담았다.

최혜영 의원은 필요한 환자에게 비대면 진료를 실시할 수 있도록 하는 ‘의료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 했다. 감염병법에 따른 한시적 비대면 진료는 코로나와 같이 감염병으로 인한 위기 상황시에만 활용할 수 있어 도서·벽지나 군·교도소 등 평소 의료기간의 접근성 제한 등으로 진료를 받고 싶어도 진료 받지 못하는 문제는 여전히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로 남아 있다는 것이다.  

송승재 라이프시맨틱스 대표는 해당 법안에 대해 “환자들에 꼭 필요한 법안”이라며 찬성 입장을 피력했다. 

송 대표는 “환자의 치료와 안전을 최우선으로 의료 사각지대를 해소하는데 원격 진료 서비스가 더 큰 힘을 보탤 수 있는 시기가 앞당겨지길 바란다”며 “의료진들이 더욱 편리하게 비대면 진료 시스템을 활용할 수 있도록 라이프시맨틱스에서도 기술 고도화를 위한 연구개발에 만전을 기할 것”이라고 전했다. 

마약류 등 일부 의약품 비대면 처방 중지…醫 “항생제 남용 문제도 있어”

이에 정부는 한시적 비대면 진료가 당초 취지에 맞게 운영될 수 있도록 마약류‧오남용 우려 의약품 등 특정의약품의 처방을 제한하기로 했다. 

복지부는 오는 11월 2일부터 마약류와 성기능 개선제, 이뇨제, 단백동화스테로이드제, 전신마취제 등 오남용 우려 의약품을 한시적 비대면 진료의 범위에서 제외하고, 만약 처방제한 의약품을 처방하는 경우 ‘의료법’ 제33조제1항 위반으로 500만원 이하의 벌금형 및 자격정지 3개월의 행정처분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의료계는 단순히 ‘처방 금지 약물’ 목록을 만들어 처방을 제한하는 것만으로는 비대면 진료의 문제 행태를 개선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박수현 의사협회 홍보이사 겸 대변인은 “협회 차원에서도 마약류 의약품 오‧남용 문제는 심각하다고 인지하고 있고 교육과 홍보를 지속적으로 강화하고 있지만 처방을 아예 안 할 순 없다. 환자마다 질환과 증상이 다르기 때문에 써야 할 약이 있다”면서도 “처방하면 안 되는 약의 목록을 만들어 처방을 못하게 한 것은 매우 아쉽다. 그렇다면 환자가 도저히 통증 등 증상을 조절하기 어려울 때도 그대로 두도록 해야 하느냐. 며칠 동안 잠 못 자고, 힘들다고 그러면 의사 입장에서 (수면제 등의 약물) 처방을 안 해줄 수가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마약류뿐만 아니라 항생제 남용 문제도 있다. 우리나라는 OECD국가 중 세 번째로 항생제 사용량이 많은 국가라 항생제 사용을 줄여야 하는데 환자들은 무조건 항생제를 달라고 한다”면서 “의사가 아니라 본인이 진단하고 네이버로 검색해서 항생제가 필요하다고 결론을 내린다. 의사가 안 된다고 하면 처방 받을 때까지 클릭하며 불필요한 닥터쇼핑으로 이어지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비대면 진료가 눈에 보기엔 좋아 보이고 혁명이라고 생각해볼 순 있겠지만 진료에 있어서는 매우 신중해야 한다. 외국은 초진부터 비대면 진료를 보는 경우가 없는데 우리는 인터넷 쇼핑몰처럼 혼자 진단하고 약을 검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박 대변인은 비대면 진료가 환자와 의료진간 관계 형성을 막고 진료의 연속성을 방해할 수 있기 때문에 보수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박 대변인은 “대면 진료에서는 환자가 얼마나 아픈지, 기저질환이 있는지, 약을 어디까지 처방해야 하는지 보기 쉽지만 비대면은 그런 측면에서 어려움이 있다”면서 “또 지방, 도서산간 지역에 있는 사람이 서울 소재 병원에서 비대면 진료를 받다가 문제가 발생하면 의사를 찾아 가야 하는데 주변 의료 인프라가 무너진 상태에서는 서울로도, 인근으로도 갈 수 있는 병원이 없다”고 했다.

그는 “의료 사각지대 해소 측면에서 비대면 진료가 필요할 수 있지만 잘못 시행하면 의료체계가 붕괴될 수 있어서 발생할 수 있는 여러 문제들을 고려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의료에 있어서는 당장 사람이 죽어나가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보수적으로 신중하게 접근하는 게 필요하다. 가장 최악의 상황이 의료의 산업화”라며 “자본이 들어오면 의료비가 상승하게 돼 있다. 비대면 진료가 의료비 상승을 초래하면서까지 환자에게 이득이 되느냐. 특수한 상황에서 보조적 수단으로만 시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현재 정부는 선 시행하고 문제 생기면 하지 말라고 하는 정책을 하고 있는데 처음부터 전문가 의견을 들은 후 조금 더 심도 있게 다른 나라와 분석하며 세세하게 고려했으면 좋았을 것”이라며 “이번에 국회에서 발의된 밥안들도 최대한 의료계 입장을 반영하고 있다고 하지만 단편적으로 한 두줄 넣는다고 되는 게 아니다. 실제 진료를 하고 있는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suin92710@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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