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톺아보기] 중산층 이데올로기와 내 집 마련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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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많은 선진국들은 중산층 지키기에 실패했다.
오늘날 중산층의 정체성은 소득이 얼마나 되는지, 직업이 무엇인지, 집이 있는지 없는지 보다는 금융 지렛대를 얼마나 잘 활용하는가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빚내도 구입하기에는 너무나 벅찬 집값 부담으로 내집 마련에서 밀려나는 탈중산층이 느는 것이다.
집 없이 중산층으로 버텨내기도 어렵지만 그렇다고 집을 구입하려니 빚을 내기도 감당하기도 쉽지 않은 여건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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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많은 선진국들은 중산층 지키기에 실패했다. 일본은 아베노믹스 8년간 막대한 경기 부양책으로 주식시장이 급등했고 고급차가 빠르게 팔려나갔지만 임금인상으로 가계형편을 개선시키지는 못했다. 영국의 중산층을 낙하산 계층, 죽어가는 계층으로 묘사한 가디언지는 구중산층의 청산은 이제 뉴노멀, 신흥 금융귀족만이 있을 뿐이라고 논평했다. 기회의 땅이라고 했던 미국은 60%를 넘던 중산층이 2019년에는 52%로 줄었다. 부의 쏠림도 더 심해져 2020년에는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최상위 1%가 보유한 자산 규모가 중산층 전체의 자산보다 많아졌다.
지난 20세기는 가히 중산층의 시대였다. 고도성장과 생활수준의 향상으로 중산층은 일종의 정상 상태였다. 열심히 일하고 노력하면 통했다. 그러나 경제 성장이 점차 둔화되고 산업구조가 재편되면서 일자리는 점차 불안해졌다. 물가와 집값은 치솟는데 소득은 그만큼 늘지 않았다. 정부는 복지지출을 점차 줄였고 중산층에게 돌아올 몫은 거의 없었다. 이제 중산층은 위로 더 올라가기는커녕 밑으로 떨어지지 않으려고 고군분투할 수 밖에 없었고 그 지렛대를 ‘투자’에서 찾았다.
오늘날 중산층의 정체성은 소득이 얼마나 되는지, 직업이 무엇인지, 집이 있는지 없는지 보다는 금융 지렛대를 얼마나 잘 활용하는가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베를린홈볼트 대학교의 하다스 바이스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가 결코 중산층이었던 적은 없으며 중산층이 될 수 있다는 이데올로기만 존재한다’고 말한다. 여기서 이데올로기란 바로 ‘투자’이다. 그녀는 투자를 통해 어느 정도의 자산을 가진 중산층이 될 수 있다는 ‘환상’만 있을 뿐이라고 꼬집는다.
우리나라는 1998년 아시아경제위기 이후 경기부양책으로 소비자 금융을 대대적으로 확대했다. 지난 20여년간 개인 금융투자가 늘고 대출문턱도 크게 낮아져 금융의 민주화를 이루기도 했다. 그러나 부작용도 심하다. 저금리로 빚내서 투자에 몰두하는 현상이다. 2000년대 초에는 재테크를 넘어 빚테크라는 신조어가 생겼다. "똑똑한 ‘빚테크’, 불타는 증시, 빚내서라도 올라 타자, 빚 잘 굴리는 당신 부자되겠네요"와 같은 기사들이 넘쳤다. 이를 데자뷰한 듯 2021년에는 빚투, 영끌이 등장했다. 주식시장에서는 30대 이하의 젊은 개미투자자들이 크게 늘었고, 주택시장에도 2030세대의 매매거래가 확연했다.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그에 따라 가계 부채도 크게 늘었다. 집값을 대기 위해 빚을 얻고 이 빚이 다시 집값을 밀어올리는 악순환이 거듭되고 있다.
오늘날 선진국의 중산층 감소세는 자가소유율의 감소와 맥을 같이 한다. 빚내도 구입하기에는 너무나 벅찬 집값 부담으로 내집 마련에서 밀려나는 탈중산층이 느는 것이다. 우리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1990년대초 75%에 육박했던 중산층은 이제 50.8%로 주저앉았다. 고소득층으로 이동한 중산층보다는 빈곤층으로 추락한 중산층이 더 많다. 집 없이 중산층으로 버텨내기도 어렵지만 그렇다고 집을 구입하려니 빚을 내기도 감당하기도 쉽지 않은 여건이 되고 있다.
금융의 민주화는 삶의 기회를 확대하고, 자가소유는 주거안정과 자산기반 복지에 기여한다. 그러나 과도한 금융으로 과도하게 집에 투자한 결과, 우리는 지금 심각한 부의 불평등과 갈등을 경험하고 있지 않은가. 중산층 이탈은 중산층만의 문제가 아니다. 금융의 덫에 빠진 투자 열풍의 소산이자 공동 이익보다는 내가 투자한 곳의 이익만 중시한 사적 이익 추구의 사회적 결과가 아닐까. 우리는 중산층 지키기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그리고 중산층을 위한 진정한 주거 모델이 있었는지도 다시금 되짚어보자.
진미윤 한국토지주택공사(LH) 토지주택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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