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간 북 만든 장인에게 푸대접한 평창.. 이 영화의 위로

김상목 2021. 10. 25.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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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예술영화 개봉신상 리뷰] <울림의 탄생>

[김상목 기자]

 영화 <울림의 탄생> 포스터
ⓒ 씨네소파
 
한국 현대 수필 중 아마 가장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게 바로 1974년 윤오영이 발표한 <방망이 깎던 노인>일 테다. 1930년대 동대문 저잣거리에서 빨래를 다듬이질 하는 다듬이 방망이를 깎아 팔던 노인과 작가의 일화는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도 실릴 만큼 명문장으로 꼽힌다. 특히 "옛날 사람들은 흥정은 흥정이요 생계는 생계지만, 물건을 만드는 그 순간만은 오직 아름다운 물건을 만든다는 그것에만 열중했다. 그리고 스스로 보람을 느꼈다. 그렇게 순수하게 심혈을 기울여 공예 미술품을 만들어 냈다"는 문장은 바로 '장인정신'에 대한 소박한 예찬이다. 하지만 젊은 날의 작가는 방망이 깎던 노인의 진심을 이해하지 못하고 투덜거렸던 과오를 뒤늦게 반성하는 결말임을 우리는 모두 잘 알고 있다.

한국사회에서 '장인'에 대한 대우는 옆 나라 일본에 비해 매우 박한 수준이다. 전문기술을 '잡기'라 폄하하는 구습이 잔존하고 있는데다, 중앙집권화에 따른 관료제가 강력한 나머지 그에 맞는 인재 육성을 위해 분야별 실용적 재능보다는 고시 부류의 획일화된 시험을 통과하는 게 실력 증명이 되어버린 탓이기도 하다. 그런 사회적 인식이 바뀌지 않는 가운데 아무리 일본의 백년가업을 소개하고, 독일의 '마이스터' 문화를 예찬해봐야 크게 바뀔 리가 없다. 그런 천대와 외면 속에서 묵묵히 자신들의 영역을 지켜오던 장인들의 맥은 하나둘 끊어져가는 중이다.

그나마 정부에서 지정한 인간문화재라 해도 처우는 그저 연금 혜택에 그치는 게 현실이다. 그것조차 논란에 오르내리거나 턱없이 부족한 경우가 적지 않다. 판소리 명창이자 민속무용 대가인 고(故) 공옥진 선생조차 문화재 선정은 타개하기 불과 2년 전이었다는 걸 알면 놀랄 이들이 많을 테다. 명확하지 않은 기준과 계승 작업에 대한 관심부족으로 오랜 기간 이어져오던 다양한 전통문화가 사라져가는 실정이다. 마침 해당 문제를 환기하기 좋은 한 편의 다큐멘터리 영화가 개봉을 맞이했다.

장인의 지난했던 인생역정을 엿보다
 
 영화 <울림의 탄생> 스틸
ⓒ 씨네소파
 
해당 영화는 60년간 북을 만들어온 경기무형문화재 30호 악기장(북메우기) 임선빈 장인의 이야기이다. 영화가 시작되면 장인이 북을 다듬고 손질하는 과정이 특별한 설명 없이 오직 시각적 이미지로만 구현된다. 세계적 거장 이안 감독의 명작으로 손꼽히는 <음식남녀>(1994)의 도입부에서 주인공인 유명 호텔 요리사 '주 사부'가 정갈하게 물 흐르듯 식재료를 다듬는 솜씨를 선보이던 일세의 명장면이 저절로 겹쳐 보일 만큼 인상적인 도입부다. 곧이어 고풍스런 로고로 화면에 제목이 떠오른다. <울림의 탄생>이다.

장인은 평생 북을 만들어왔다. 오랜 세월 기예를 펼쳐온 일흔 살 가까운 장인의 일거수일투족에 관객은 초반부터 몰입하게 될 테다. 그런데 어찌 장인의 몸이 성치 않아 보인다. 알고 보니 장인은 어릴 적 소아마비를 앓아 한쪽 다리를 절게 되었다. 거기에다 한국전쟁 전후 궁핍하던 시절 장애를 가진 어린 소년은 9살 나이에 가족과도 떨어져버린다. 비슷한 처지의 소년들 사이에서 지내던 장인은 행동이 굼뜨고 벌이가 시원찮다는 이유로 구타를 당하다 한쪽 청력마저 잃었다. 그렇게 가혹한 시련에 처한 채 2년을 견뎌내지만 희망은 보이지 않던 그 순간, 마치 하늘에서 동아줄이 내려온 것처럼 누군가가 그를 데려간다. 북 공방을 운영하던 고 황용옥 선생이 자신의 공방으로 11살 소년 시절의 임선빈 장인을 데려간 것이다.

장인은 인생의 구원자를 만나 기술을 전수받고 공부도 할 수 있었다. 초지일관 정진해 '장인'의 경지에 이르렀다. 1988년 서울올림픽 개막공연에 쓰이던 큰북이건 청와대 춘추관 북이건 통일전망대 북이건 모두 장인의 손길을 거친 것들이라고 설명하면 임선빈 장인의 위상과 실력을 측량할 만하다. 그렇게 실력을 인정받지만 북 만드는 일은 늘 고되고 형편은 빠듯하다. 그런 그의 곁에 젊은 일꾼이 하나 눈에 띈다. 알고 보니 친아들 임동국이다. 그는 북메우기 전수조교로 아버지인 장인의 일을 돕고 있다. 두 부자는 작업방식부터 여러 가지가 사뭇 달라 늘 티격태격하며 지내지만 돕고 의지하는 사이다.

휴먼 다큐멘터리를 넘어 구도의 경지로
 
 영화 <울림의 탄생> 스틸
ⓒ 씨네소파
 
영화 내내 장인은 불편한 몸을 이끌고 꼼꼼한 관리와 지극한 정성으로 북을 만드는 데 힘쓴다. 하지만 원래 장애를 가졌던 데다 노쇠한 몸으로 중노동을 거듭하니 이제 그나마 성하던 한쪽 귀의 청력이 계속 저하되는 중이다. 온몸이 성한 데가 없다. 이제 장인에겐 남은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아 보인다.

다른 예술가들과 달리 북메우기 장인들은 자기와 가족의 생계를 위해 북을 만들어 팔아야 하는 처지다. 늘 주문제작을 받아 다양한 곳에 북을 납품하는 수요를 쳐내느라 여념이 없다. 하지만 노동은 고된데 대가는 지독히 짜다. 방망이 깎던 노인의 고사 마냥 세상 사람들은 장인이 직업적 전문성과 자긍심을 갖고 제시하는 작업에는 별 관심이 없다. 오직 저렴한 가격에 적당히 겉으로 보이는 기능만 갖춰주면 만사 오케이다. 발휘된 솜씨나 중장기적 유지보수 업무는 뒷전으로 미뤄진다.

그런 풍토 하에서 장인이 설 자리는 날이 갈수록 비좁아지는 중이다. 아버지의 고생스러운 생애를 지켜봐온 아들 동국은 변화된 세태에 적응하고자 이것저것 시도해본다. 아들 또한 자기 나름대로 고민이 깊다. 하지만 그런 아들의 색다른 도전과 시도의 결과물들은 장인이 보기엔 북의 소리보다 외형 요소에만 더 공들여 치중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장인은 영 마뜩찮아하는 시선을 숨기지 않는다.

장인은 나이를 먹고 건강이 계속 악화되자 중대결심을 선포한다. 즉 주문자의 의도가 아니라 자신이 만족하기 위한 북 창작을 준비해 보겠다는 태도다. 예전에 빛나는 무대의 주역이던 여러 북 제작에 참여해 왔지만, 그 당시만 해도 선배들의 보조 역할로 참여해야 했던 대북 제작을 장인의 북 인생 결산 겸 기념비로 삼고자 하는 의도이다. 그를 위해 23년 전 점찍어두고 구입해둔 목재를 드디어 꺼낸다. 주문생산이 아니라 (자신의 반세기도 훨씬 넘겨버린) 북과 함께 해온 생애를 정리하는 역할의 '대북 제조 과정은 이제 임선빈 장인에게는 일종의 'Life-Work'가 되어가는 셈이다.

영화는 중반을 지나면서 이제 온전히 장인의 랜드 마크가 될 대북 제작 과정에 집중한다. 한 분야에서 경지에 오른 이들이 보여줄 수 있는 고결한 풍모를 장인을 통해 투영하고자 하는 감독의 의도와 함께, 본 작품은 전통 북 제작의 쇠퇴에 대한 고민은 물론 아버지의 일을 물려받아 계승·발전하려는 아들 동국의 고민을 쭉 풀어낸다.

나무의 변형을 막기 위해 비와 눈을 피하고 시행착오와 계산착오를 숱하게 겪어가며 시련을 거듭한 끝에 마침내 장인 일생의 숙원이던 대북은 완성된다. 장인의 평소 지론에 따라 대북을 장식하는 단청이나 도안 문양들은 모두 장인이 직접 소화해낸다. 장인으로선 스승으로부터 각고의 노력을 통해 얻어낸 기술과 인생에 마침표를 찍는 일보가 아닐까? 거기에 시종일관 담담하던 장인이 어렵게 끄집어내는 기억의 편린, 어릴 적 북소리를 들으면서 간절히 그리워했던 가족의 형상을 떠올릴 때 이 제작 과정이 장인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관객 또한 동병상련의 심정으로 무탈한 완성을 기원하게 될 법하다. 이제 십만 번 망치질하고 백만 번 두드려 완성된다는 대북이 마침내 테스트를 마치고 웅장한 면모를 드러낸다.

각 분야의 전문가가 외면당하는 시대, 장인의 자리는
 
 영화 <울림의 탄생> 스틸
ⓒ 씨네소파
 
그 랜드 마크 격인 대북은 2018년 평창 패럴림픽 개막공연에 기증된다. 장인과 아들, 두 부자는 기증된 대북이 공연에 쓰이는 걸 목격하기 위해 평창으로 향한다. 설레는 마음으로 대북을 응시하지만 패럴림픽 개막식 행사 팸플릿에 구두로 포함될 것을 약속받은 내용, 행사 협력업체 소개란에 임선빈 장인에 관한 부분은 누락되어 빠졌다. 평생의 역작을 사회를 위한 공익목적에 기부했지만 돌아온 건 무시와 푸대접일 뿐이다.

이번에는 정재은 감독의 건축 다큐멘터리 연작 두 번째 시리즈, <말하는 건축 시티: 홀>이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아른거리기 시작한다. 건축가 유 걸 선생은 서울시청 신청사를 설계한 주역이지만 신청사가 완공되어 공개되던 날 기념행사에 참석했음에도 관료주의와 행정착오로 인해 플라스틱 의자 하나 마련되지 않았던 영화 속 풍경과 너무나 겹쳐 보이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실제 전문지식과 기술로 성심을 다해 기여한 이들이 홀대받고 겉치레 중시하는 고위 관계자들이 행세하고 '의전'이라는 공허한 형식에 얽매이는 광경은 늘 개운함과는 거리가 멀다.

2012년 런던 올림픽 당시 개막식 행사는 그에 대한 좋은 반례가 될 법하다. 올림픽 주경기장 메인 스타디움을 건설한 노동자들이 당대의 스타나 선수단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주 트랙을 천천히 자신들의 업적을 뽐내며 관중들의 환호를 받는 어찌 보면 아주 자연스러운 광경이 여러 사람에게 신선한 충격을 선사했던 것과는 천지차이다. 그나마 행사 후 받은 감사패 문구를 카메라가 찬찬히 훑어 내려가는 장면은 그런 부당함에 대한 감독의 위로로 비춰지기도 한다.

다시 장인의 일상으로 영화는 돌아간다. 임선빈 장인은 점점 골골해 하지만 기력이 남아있는 한 여전히 북을 만드는 중이다. 아들이자 조교인 동국도 그 곁에서 여전히 투덜거리며 작업하고 있다. 반세기 훌쩍 넘긴 세월의 무게가 실린 손마디 끝이 물 흐르듯 움직이면 나무가 토막 나고 가죽이 잘려지며 못이 박혀나가고 있는 기예의 순간이 흐른다. 이 장면에 대사는 거의 불필요하다. 도입부의 무언 장면과 말미의 그것은 끊임없는 거대한 순환반복처럼 펼쳐진다.

그렇게 영화는 임선빈 장인의 순탄치 않았던 인생 여정, 그리고 북메우기 기술이 잊혀져가는 세태를 때로는 장엄하게, 한편으로는 애잔하게 조명한다. 장인의 직업적 전문성을 견결히 고수해나가려는 의지와 그 아들이 변화되는 추세에 적응하려 고민하며 이것저것 시도하는 실험은 여전히 불협화음을 일으키는 중이다. 하지만 영화는 그런 신구 세대 간 대립을 화해 불가능한 적대가 아니라 새로운 순환의 자연스런 과정으로 설정하려는 태도를 취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게 가보지 않은 길에 도전하는 장인의 황혼빛깔 경지를 감독은 운 좋게 포착했고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듯 꾸준히 성실하게 기록한 결과물로 <울림의 탄생>을 세상에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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