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사니] 금수저 분노 마케팅의 이면

이종선 2021. 10. 25. 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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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선 경제부 기자


‘10세 미만 미성년자 4년간 주택 552건 1047억원어치 구입’ ‘부모 찬스 갭투자 증가… 서울 아파트 매입 10대 98% 임대 목적’.

해마다 국회 국정감사 철이 되면 금수저들의 부동산 매입 실태가 속속 신문에 소개된다. 올해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무래도 주택의 실수요층으로 보기 어려운 10대 등이 ‘부모 찬스’로 집을 사들였다는 소식을 접하면 천정부지로 치솟은 집값에 내 집 마련조차 어려워진 평범한 30, 40대로서는 큰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자꾸 비슷한 뉴스를 보다 보니 조금 삐딱한 생각도 든다. 금수저를 보면서 배 아픈 건 인지상정이라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증여세 제대로 내고 다른 위법 사항이 없다면 개인이 자기 돈으로 자녀 집을 사주는 게 무슨 문제인가.

따지고 보면 금수저들의 주택 매입이 집값을 올린 주범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한국부동산원이 매달 집계하는 매입자 연령대별 아파트 매매거래 통계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8월까지 서울 아파트 전체 매매거래 3만9099건 가운데 매입자가 20대 이하인 거래는 1967건으로 5%에 불과했다. 시세에 영향을 줄 정도로 유의미하게 많은 비율로 보이진 않는다.

물론 어린 금수저의 아파트 구매를 옹호할 생각은 없다. 정상적인 상황도 아니고, 편법 증여나 부모의 차명 거래 가능성도 크다. 그럼에도 이런 현상이 소위 집값이 고점이라는 상황에서도 계속된다면 한번쯤 왜 이런 일이 계속 일어나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궁극적 이유는 아파트가 돈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시장에서는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과 정부의 고강도 대출 규제 등에도 집값 상승세가 완전히 꺾이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이런 관측의 주된 근거는 3기 신도시 등 현 정부가 공급한 아파트에 입주하기 전까지 수년간 입주 물량이 과거보다 감소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입주 물량 감소는 따지고 보면 정부가 지난해 중반까지 공급은 충분하다며 등한시했던 과거 실수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정부 정책이 부메랑 돼서 오히려 금수저를 대거 양산하기도 했다. 다주택자가 가진 매물을 유도하겠다고 시행한 각종 세제 중과는 오히려 결과적으로 다주택자가 부동산 자산을 자녀에게 증여하도록 부추겼다. 오르는 집값을 보며 조금이라도 여유가 있으면 자녀 이름으로라도 하나 사는 게 경제적으로 유리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부동산 투기를 막겠다고 내놓은 규제가 오히려 가격만 잔뜩 높이고 ‘부동산 불패’의 잘못된 신화를 만든 셈이다.

그런데 이런 현상을 일으킨 정책을 수정하려는 기미는 딱히 보이지 않는다. 국감철 금수저의 실태를 제기한 의원들은 하나같이 하루빨리 부동산 감독기구를 발족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부동산 감독기구는 불법 거래를 잡아내는 데는 역할을 하겠지만, 불법이 아닌 거래를 잡아낼 도리는 없다.

전월세 시장의 안정 측면에서 보면 오히려 경제적 여유가 있는 금수저들이 임대 목적의 집을 매입하는 편이 좋을 수도 있다. 가뜩이나 지난해 여당 주도로 임대차법 개정이 이뤄진 뒤 전월세 물량 급감과 임대료 급등이 현실화하지 않았나. 금수저는 주택을 사고도 바로 실거주하지 않으니 전월세 공급이 늘어난다. 배는 아프지만 실리는 있다는 얘기다.

올해 들어 지난달까지만 서울 아파트 매매가와 전셋값은 각각 13.46%, 9.81%(KB국민은행 기준) 오르는 등 동반상승하고 있다. 이 난맥상을 해결하려면 우선 전월세 시장부터 안정시키는 게 순서라고 여러 전문가들이 조언한다. 금수저들이 ‘임대 목적’의 집을 사는 것을 마치 죄악인 것처럼 몰아가는 분위기 속에서 전월세 공급이 늘어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다른 묘안이 있는 것도 아니다. 기껏 생각해낸 게 ‘호텔방’을 전셋집으로 리모델링하자는 수준 아닌가. 금수저에 대한 ‘분노 마케팅’만으로 현실에서의 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않는다.

이종선 경제부 기자 remembe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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