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獨)한 것들] '최초'.. 야구소녀들의 발걸음
백송고등학교 야구부 투수 주수인. ‘20년 만의 여자 야구 선수’로 화제를 모았지만 프로 지명을 받지 못했습니다. 수인의 최고 구속 134㎞는 여자 선수로서 대단할지 몰라도 프로 선수의 기준으로는 턱없이 부족했죠. 모두가 수인에게 불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수인의 엄마는 야구가 아닌 취업을 선택하길 원했습니다. “길 가는 사람 아무나 붙잡고 물어 봐라. 쟤가 야구 선수처럼 보이는지. 야구가 무슨 서커스냐?” 코치 진태와 찾아간 스카우터는 수인을 향해 이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그저 프로 선수가 되고 싶을 뿐인데, 모두가 포기를 강요했습니다.
수인은 노력으로 맞섰습니다. 150㎞ 공을 던지면 프로에 갈 수 있으니 구속을 올리기 위해 손에 피가 나도록 연습했습니다. 수인의 모습에 ‘너는 안 된다’고 말하던 코치 진태의 마음도 움직였습니다. 진태는 수인의 강점인 볼 회전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너클 볼을 가르치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수인은 프로 선수라는 꿈에 한 발짝 다가갔습니다.
우리나라 프로야구 리그는 1982년 출범했습니다. 출범 당시에는 남자만이 야구 선수가 될 수 있었죠. ‘의학적으로 남성이 아닌 자’는 부적격 선수로 분류됐기 때문입니다. 1996년 규약에서 이 문구가 사라진 후에야 여자도 프로야구 선수로 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자 야구 선수 안향미 역시 수인처럼 끝없이 현실과 싸워야 했습니다. 사람들에게 여자 야구 선수는 별종일 뿐이었습니다. 1997년 당시 여학생이 야구 선수로 고등학교에 입학한 선례 자체가 없었습니다. 여자 체육 특기생을 선발하는 종목에 야구가 없어 고교 야구부 진학조차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안향미 선수는 교육청의 도움을 받고 나서야 야구 명문인 덕수정보산업고등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습니다. 유일한 고교 여자 야구 선수가 된 이후 여자가 야구를 왜 하냐는 시선을 받을 때도, 남자 선수들과 같은 기회를 받지 못할 때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안향미 선수는 1999년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 4강전에 여자 선수로 처음 마운드에 올랐죠.
하지만 편견의 벽은 여전히 높았습니다. 고교 야구 선수로 활동했지만 그를 받아주는 프로팀은 없었습니다. 국내에서는 활동이 어려웠기에 안향미 선수는 일본 진출을 결정합니다. 일본의 세미프로 여자야구팀 드림윙스에서 투수와 3루수로 활동하다 2004년 ‘비밀리에’라는 여자야구팀을 창단했습니다. 창단 몇 달 뒤 참가한 여자야구 월드시리즈에서 홍콩에 16대 6으로 패배, 일본에 53대 0으로 패배라는 처참한 성적을 받아 들고 맙니다. 하지만 비밀리에의 국제 대회 참가는 또 다른 여자야구팀의 창단을 낳았죠. 2007년에는 한국여자야구연맹이 출범했습니다.
안향미 선수처럼 한국 여자야구의 새로운 길을 만들어 나가는 선수가 있습니다. 바로 여자야구 국가대표 김라경 선수입니다. 김라경 선수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오빠를 따라 계룡시 리틀야구단에서 야구를 시작했습니다. 규정상 리틀야구는 중학교 1학년까지 참여할 수 있는데 중·고교 여자야구부가 없어 야구를 계속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여자 선수는 중학교 3학년까지 리틀야구를 뛸 수 있도록 ‘김라경 특별 룰’이 만들어졌죠. 김라경 선수는 중학교 3학년 때 113㎞의 공을 던질 정도로 남다른 실력을 보이며 최연소 국가대표로 선발됐습니다.
김라경 선수는 일본 리그 진출을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부모님들은 직업이 안 되면 안 시키니까. 그것 때문에라도 일본에 다녀오고 싶다”고 자신의 목표를 설명했습니다. 여자 야구 선수의 길을 걸으려는 후배들을 위해 또 하나의 최초를 만드는 여정을 진행 중입니다.
포기하라고,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수인은 대답합니다.
“전 해 보지도 않고 포기 안 해요.”
지난 해 메이저리그 최초의 여성 단장이 탄생했습니다. 킴 응 마이애미 말린스 단장은 “‘볼 수 없는 건 될 수 없다’는 격언이 있죠. 그러나 이젠 이렇게 말해주고 싶네요. 지금은 볼 수 있다고.”라며 부임 소감을 전했습니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는 최초의 여성 코치로 알리사 내킨을 임명하기도 했습니다.
현재 한국여자야구연맹에는 48개의 여자야구단이 등록되어 있습니다. 지금도 최초들은 포기하지 않고 한 걸음씩 내딛고 있죠. 이들의 걸음은 미래의 큰 변화를 향하고 있습니다. 머지않아 수많은 주수인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요?
김수연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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