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 먹다 눈이 스르르.. 아기야, 미안하다 [코로나 베이비 시대 양육 고군분투기]

최원석 2021. 10. 24.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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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하지 못해 얼마나 답답했을까? 그렇게 먹고 싶었는지 몰랐단다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코로나 시대의 육아를 누군가는 기록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으로 연재를 시작했습니다. 시간은 흐르고 언젠가 막이 내릴 시대이지만 안 그래도 힘든 육아에 이 시국이 무언가로 고통을 주는지 알리고 공유하며 함께 고민해 보고 싶었습니다. 항상 말미에 적는 글이지만 아기를 양육하고 계시는 이 시대의 모든 부모님들께 위로와 응원 너머의 존경을 보내는 마음으로 글을 씁니다. <편집자말>

[최원석 기자]

한 끼를 챙겨 먹는다는 것

이 시국의 육아에서 엄마들께서 한 끼를 제대로 챙겨 먹는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라 생각한다. 일전에 기사에서 엄마들께 '꼭 스스로의 식사를 챙기셨으면 좋겠다'고 부탁을 드렸던 이유다. 비단 우리 아기 엄마도 사정이 이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아기가 자기만을 기다려 아기의 식사를 준비하고 집안일을 하고 나면 아내에게 여유시간이라는 것은 내가 출근하는 평일에는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아내에게 제일 많이 사다준 것이 '빵'이었다. 원할 때, 혹은 짬이 날 때, 아기가 잘 놀고 있을 때 등 '집 콕 육아'의 정점인 코시국의 육아에서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먹을 수 있으니 이 얼마나 효율적이고 감사한 존재란 말인가. 하지만 매일 똑같은 빵을 사다 준다는 것은 아내를 돕는 것이 아니라 아내를 괴롭게 하는 일이자 고문(?)을 하는 것이었다.
 
▲ 빵 아내에게 사다 준 빵의 모습
ⓒ 최원석
 
이런 이유로 퇴근길에 아기 엄마의 빵을 사는 것은 나에게 필수 절차가 됐고, 종류와 다양성을 추구해야 하는 이유에서 고민은 쉽지가 않았다. 시간이 날 때마다 조금씩 다른 빵들을 검색해서 찾아냈다. 그렇게 지난하고 험난한 검색을 거쳐 찾아낸 핫하고 건강하다는 빵집은 그렇게 하나하나 나의 리스트에 추가됐다. 그렇게 퇴근길에 들러야만 하는 곳은 자연스레 늘어만 갔다.

이 고민은 여기쯤에 멈춰도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한데 아기가 12개월을 맞으면서부터는 아기가 자지 않으면 이것조차도 먹는 것이 쉽지 않았다. 아기는 매일 같이 달라지는 엄마의 주식과도 다름이 없는 이 고소한 빵의 냄새를 맡으면 엄마에게 빠르게 기어서 돌진해 왔다. 이런 이유로 아기 엄마가 아기 앞에서 빵을 먹는 것이 더는 불가능해졌다.

아기가 6개월 차부터 빵을 먹이기 시작해서 돌을 맞은 지금까지 꾸준히 조금씩 먹어 왔었다. 밀가루에 대한 알러지가 있는지 테스트를 해야 했었고 아기의 취향을 알아볼 생각으로 아기의 머리 크기만 한 식빵을 줬었다. 아기가 스스로 빵을 탐구하고 친해질 수 있게 여러 번을 통째로 줬다. 
   
▲ 빵을 먹는 아기 아기에게 빵과 친해질 수 있는 시간을 주기 위해 통으로 쥐어 주었다. 빵의 촉감을 느끼고 냄새를 맡고 빵을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을 주고자 했다.
ⓒ 최원석
   
아기는 걱정하는 부부의 마음과는 다르게 빵을 엄청 잘 먹었다. 알러지 증상도 다행히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거기서부터 다른 고민이 시작됐는데 빵을 좋아해서 자주 주니 빵을 자꾸 먹으려고 했다. 정성껏 엄마가 준비한 이유식은 거부하고 접시까지 던져버리는 '대환장 파티'가 일어난 것이다.

아기 엄마는 결단을 내렸다. 아기에게 '빵 금지령'이라는 특단의 조치가 취해졌다. 아기에게 당분간 주지 않았다. 아기 엄마도 아기 앞에서 더 이상 먹지 않았다. 그런 이유로 아기는 빵을 얼마간 보지도 먹지도 못한 터였다.

아기가 먹는 유기농을 추구한다던 빵집을 찾아서 처음 빵을 살 때, '아기들 먹여도 되냐?'라고 망설이며 걱정하는 마음으로 여쭙는 초보 아빠인 내게 사장님이 웃으면서 한 말이 있다. '아기는 물론 아기 엄마들도 많이 찾으시니 걱정 마시라'고 '아기에게 먹여도 되는 것은 물론이고 배달을 하지 않음에도 오히려 코로나 이후 더 많은 엄마들이 찾아 주시니 믿고 아기에게 주시라'라고 안심을 시켜줬다. 

아기에게 빵을 처음 주었던 그때가 떠올라 아기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너무 오래 아기에게 주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오늘만큼은 꼭 줘야겠다'라고 생각해서 줬는데 아기는 매우 좋아했다. 아빠가 사다 준 엄마의 빵들은 설탕이나 소금 혹은 다양한 소가 들어있거나 토핑들이 뿌려져 있어 아기와 함께 먹기는 어려웠지만 이 식빵만큼은 예외라 마음 놓고 줬다. 
 
▲ 아기의 식빵 아기가 먹다가 잠이든 식빵
ⓒ 최원석
 
아기는 식빵을 기다렸다는 듯 다행히도 잘 먹었다. 왜 이제 주었냐고 항의를 하듯 아기는 먹기 시작했다. 그때, 갑자기 아기의 두 눈에 힘이 풀리기 시작했다.  잠이 오는 모양이었다. '이대로 안 되겠는데... 재워야겠는데'라는 마음에 안으려고 했더니 아기는 짜증을 내며 울어버렸다.

그리고는 다시 식탁의자에 앉아 빵을 먹더니 조용해졌다. 잠이 오는 것을 인지한 부모는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무엇을 먹다가 자는 아기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처음 겪는 경험이었다. 어찌할 바를 몰라 헤매었다. 매우 난감한 순간이었다.

아기는 한 번씩 눈을 감았다가 떠서 빵을 먹고 먹다가 눈이 다시 감기는 행동을 반복하더니 빵을 입에 물고 스르르 눈을 감고 잠이 들었다. 그 모습을 보는 엄마와 아빠는 아기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지금 눈앞의 아기의 모습에 웃음도 나고, 아기의 이런 현실에 짠하기도 한, 여러 가지의 주체할 수 없는 감정들을 떠올리게 됐다.

'엄마가 빵을 먹는 것을 그렇게 많이 봐서 그럴까?... 얼마나 평소에 먹고 싶었으면 저럴까? 표현하지 못해서 얼마나 답답했을까?'
 
▲ 빵을 먹다 잠이든 아기 빵을 한동안 주지 않았더니 빵이 그리웠는지. 세상에... 빵을 먹다 잠이 들었다.
ⓒ 최원석
 
다른 엄마들의 식사는 어떨지가 궁금하다. 우리 가정과 같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우리 부부와 사정이 비슷하다면 비슷할수록 참으로 씁쓸한 일이다. 이 시대의 육아가 아니었다면 빵 말고도 엄마들의 선택지가 조금은 다양하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이 시간 아기의 식사나 이유식을 정성스레 준비하시면서 우리 아기 엄마처럼 혹 빵 한 조각으로 한 끼를 때우실 모든 어머니들께 존경과 응원을 보낸다. 그리고 그 엄마들의 식사를 사랑과 정성으로 챙기시고 계실 모든 이 시대 아버지들께 갓 구운 아기의 식빵의 고소하고 담백한 냄새를 담은 감사와 격려를 보낸다.

어쩌면 육아에 지친 엄마 아빠들에게 위안이 될 수 있는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의 명대사를 전하며 글을 마친다.
 
살아있는 동안은 아무것도 끝나지 않잖아.

내가 오늘 좀 잘 됐다고,
그걸로 내 인생 끝나는 거 아니고,
내가 오늘 좀 잘못됐다고,

그걸로 역시 내 인생 끝나는 거 아니니까.
좋은 일도 나쁜 일도 다 지나가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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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추후 기자의 브런치에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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