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세월이 담긴 유골함.. 언제 보낼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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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노휘 기자]
▲ 간식 탐도 많지만 늘 웃는 듯한 표정이었다 |
ⓒ 차노휘 |
수술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거의 온 몸에 암이 퍼졌다는 진단을 받은 지 2개월. 그때 수의사는 오래 살면 4~5개월이라고 했다. 1주일 전 목욕을 시킬 때 목 주위, 배 그리고 성기 주변으로 울퉁불퉁 나온, 영역을 넓혀가는 그 이질적인 존재들을 쓰다듬으면서 부디, 녀석과 오래 공생하기를 빌었다. 외형이 변하더라도 그 맑은 눈동자로 나를 쳐다보는 것이 좋았으니까.
나는 논문 준비가 한창이었다. 참고 문헌 찾고 읽고, 그동안 인터뷰한 것들 채록하는 등 소논문 한 편 쓰기에 바빴다. 월요일 밤을 학교에서 보내고 집에 갔더니 집안이 난리다. 그리고 발견한 배변 패드에는 설사의 흔적이 남았다.
녀석의 항문에 묻은 오물을 씻겨주면서 이제는 뒷다리도 울퉁불퉁 나와 있는 이질적인 존재들을 봤다. 애써 모른 척 약을 먹이고 간식을 줬더니 다른 날과 달리 그렇게 좋아하던 쇠고기 그루머를 절반도 못 먹는다. 하지만 다른 간식은 잘 받아먹어서 이틀 후 예약한 날짜에 병원에 가기로 한다. 그리고 청소, 다시 오전 10시에 학교로 출근.
내방에서 나오지 못한 반려견 '까만'
오후 2시가 되었을까. 반려견 '까만'이가 보이지 않는다는 전화를 받았다. 기척만 들리면 제일 먼저 뛰어나오는 녀석인데 사람이 들어와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아 혹시 내가 데리고 갔는지 묻는 전화였다. 그리고 다시 걸려온 전화. 얼른 집으로 오라고. 녀석이 내 방에서 꼼짝하지 않는다고. 약간 겁먹은 음성.
예정된 거지만 늘 슬픔은 준비 없이 온다. 설령 준비를 했다고 해도 리허설 같은 것을 깡그리 무시하는, 그냥 생중계다. 나를 기다린 듯 앞다리 하나는 접고 머리를 바닥에 댄 채 눈을 뜬 채 굳어 있다. 아침에 준 간식이 노란 구토물에 섞여 주변에 널려 있다.
수의사가 그랬다. 암이 폐까지 전이되면 보호자가 알 수 있을 정도로 호흡곤란이 있을 거라고. 그때는 안락사를 준비해도 괜찮다고. 아침에만 해도 간식을 잘 받아먹었고 걸레질 하는 나를 졸졸 따라다니며 뽀뽀하려고 했다. 식사하는 나를 테이블 아래에서 보며 뭔가 맛있는 것을 얻어먹기를 간절히 바라는 눈빛을 보냈는데...
▲ 12년 전 뜨거운 여름 녀석은 태어났다 |
ⓒ 차노휘 |
▲ 반려견 가족 |
ⓒ 차노휘 |
10월 19일에 무지개다리를 건넌 '까만'이는 12년 전 여름에 태어났다. 나는 엄마아빠오누이로 구성된 반려견 가족을 키우다가 5년 전 어미를 먼저 보내고 지금 두 번째 장례를 치렀다. 지금 남아 있는 반려견 가족 구성은 아빠하고 딸이다.
녀석의 어미를 감쌌던 담요가 이제는 녀석의 굳은 몸을 감싼 채 내 무릎 위에 놓였다. 선하나 잘못 그은 것 없는 듯 담백한 산등성이 위로 맑고 푸른 하늘이 펼쳐졌다. 그리고 새하얀 구름들.
참 좋은 가을 날 녀석은 갔다. 목적지만 빼면 그냥 녀석과 드라이브 가는 기분이다. 내가 운전할 때면 늘 내 허벅지에 누웠었는데... 늘 그렇듯 이번에도 녀석의 머리, 귀 그리고 등을 손으로 쓰다듬는다. 간혹 까만의 눈물이 눈가 털을 더럽히곤 해서 눈주위를 닦아 주는 것이 습관이었는데... 아, 여전히 녀석의 눈가는 촉촉하다.
녀석은 여전히 눈을 뜨고 있다. 도착해서야 지그시 몇 분 눌러줬더니 그제야 순하게 감긴다. 내 허벅지 체온을 나눠가진 녀석의 빵빵한 배가 따뜻하다. 어디선가 읽었다. 한 개체가 생명을 잃으면 그동안 부풀었던 암세포도 꺼진다고. 그것은 개뿔이나 거짓말이다. 녀석은 죽었지만 그 녀석 몸 안에 있는 것은 여전히 부풀어 있다.
▲ 장례식장에서의 까만. |
ⓒ 차노휘 |
오후 5시에 예약했지만 30분 일찍 도착했더니 직원이 들어오란다. 이제 마지막이다. 저 사랑스러운 형체가 없어진다. 이제 더 이상 체온을 나눌 일도 털을 쓰다듬으면서 느꼈던 손가락 감촉의 따뜻함도 더 이상 느낄 수가 없다. 나는 담요에 싸인 녀석을 안고 십 분 더 미적거린다. 상담할 때도 여전히 녀석을 안고 있다.
화구에 들어가 재가 되는 한 시간이라는 시간. 두 세상을 가르는 유리 사이로 녀석은 타고 있고 나는 12년이라는 시간 속으로 타들어간다. 산책 갈 때 목줄이 필요 없을 정도로 나만 따라다녀 '껌딱지'라는 별명이 붙었고 현관 비밀번호 키를 누르면 제일 먼저 뛰어나온 녀석을 데리고 놀이터 한 바퀴를 돌고 들어가곤 했는데...
이제 녀석과 은밀한 시간을 가질 수가 없다. 간식을 줄 때에도 대놓고 녀석에게 하나라도 더 줬는데... 그렇지, 내가 바닥을 걸레질 할 때면 눈높이가 맞아서인지 뽀뽀하려고 달려들었지. 내가 제일 예뻐한다는 것을 알고 까불더니 먼저 저 세상으로 갔다.
뼛조각과 함께 전날 달 하나 걸린 어둠까지 담고 온 그 유골함이 지금도 내 무릎에 있다. 미처 먹지 못한 이틀 분 약까지 화구 속에 밀어 넣었다. 조만간 녀석의 엄마가 뿌려진 곳에 뿌릴 예정이지만 당장은 아닌 것 같다. 녀석은 갔지만 아직 내가 준비가 안 된 것 같다. 조만간 여행을 떠날지도 모르겠다.
"그동안 참 고마웠다, 저 세상에서는 사람으로 태어나렴."
녀석의 마지막 가는 길 사진은 일부러 나와 함께 찍은 사진을 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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