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대통령 될 MBTI인가"..野 후보 4人4色 성격유형
모두 외향형인 'E' 성향..결과 분석 맹신 금물
“‘나는 성격 유형을 알아보는 MBTI 검사를 해봤다’? OX표를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지난 7월 6일 진행된 더불어민주당 대선 예비후보자 TV 토론회에선 다소 이색적인 광경이 펼쳐졌다. 사회자가 “분위기를 푸는 차원에서 첫 번째 질문은 다소 가벼운 걸 준비했다”며 MBTI 테스트를 해본 적 있느냐고 물은 것이다. 당시 이 자리에 있던 민주당 경선 후보 중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을 제외한 모두가 ‘O’ 표를 들었다. 대부분 검사를 해본 경험이 있단 얘기다.
도대체 MBTI가 뭐길래 대선 후보 토론회에서까지 ‘소환’된걸까.
MBTI는 몇 해 전부터 젊은이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성격 유형 검사다. 미국 심리학자 캐서린 브릭스와 그의 딸 이사벨 마이어스가 정신분석학자 카를 융의 이론을 토대로 만들었다. 외향형-내향형(E-I), 감각형-직관형(S-N), 사고형-감정형(T-F), 판단형-인식형(J-P) 등 4가지 선호 지표를 조합해 응답자를 16가지 성격 유형 중 하나로 분류한다. 검사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고, 무료로 검사해볼 수 있는 웹사이트도 존재해 접근성이 높다. 많은 국민에게 MBTI가 일종의 놀이처럼 여겨지고 있는 이유다.
그렇다면 각 후보가 밝힌 자신의 MBTI 결과와 후보의 성격 사이엔 어느 정도의 유사성이 있을까. 홍준표 의원은 지난 9월 한 언론 인터뷰에서 자신의 MBTI 검사 결과가 “ESTJ-A로 나왔다”고 밝혔다.
ESTJ형은 일반적으로 ‘엄격한 관리자형’으로 평가된다. 한국MBTI연구소는 이 유형에 대해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며 사실적(인 유형)”이라며 “가능한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결과를 얻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명확한 일련의 논리적 기준을 가지고 있고 규칙적으로 그것에 따르며 다른 이들도 그렇게 하기를 바란다. 자신의 계획을 추진해 나갈 때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한다”고 풀이했다. ESTJ 뒤에 붙은 A는 ‘Assertive(확신에 찬)’의 약자로 알려져 있다. 외부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고, 자신의 주관이 뚜렷하다는 의미다.
법과 기준을 중시하는 직업인 검사 출신으로, ‘빠칭코 사건’ 등 굵직한 수사를 원칙대로 밀고 나가며 유명세를 탄 홍 의원과 어울리는 것으로 보인다. 정치인 중에선 홍 의원 외에도 정세균 전 국무총리, 양승조 충남지사 등이 자신을 ESTJ형이라고 밝힌 적 있다.
유승민 전 의원은 검사 결과 ENFJ-A형이 나왔다고 했다. ENFJ형은 일반적으로 감정이입을 잘 하는 따뜻한 성격이고 타인에게 높은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집단 내의 원활한 상호작용에 기여하는 성격이라고 알려져 있다. 한 인터넷 무료 MBTI 검사 사이트에선 이 유형에 대해 “진정으로 타인을 생각하고 염려하며, 그들이 필요하다고 느낄 때면 발 벗고 나서서 옳은 일을 위해 쓴소리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그간 ‘개혁 보수’ ‘따뜻한 보수’를 천명해왔고, 2015년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며 대기업·부자 증세의 필요성을 역설했던 유 전 의원을 수식하기에 적절한 유형으로 보인다.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는다’는 대목은 과거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고언을 아끼지 않아 충돌로 이어졌던 상황을 연상시킨다.
민주당에선 마지막까지 대선 경선을 완주했던 박용진 의원이 이 유형이라고 밝힌 바 있다.
원희룡 전 제주지사는 지난 15일 SNS에 “제 MBTI는 ESFP”라며 “리액션 장인(타인의 말이나 행동에 잘 반응해준다는 뜻)이라고 한다”고 적었다. 실제로 ESFP 유형은 ‘자유로운 영혼의 연예인’이라고 평가된다.
한국MBTI연구소도 “(ESFP 유형은) 사교적이고 다정하며 수용적이고 긍정적”이라며 “타인들과 함께 일하는 것을 즐기며 상식적·현실적인 접근으로 일을 재미있게 하고자 한다. 융통성이 있고 자발적이며 새로운 사람들과 환경에 빨리 적응한다”고 평가한다.
실제로 원 전 지사가 출연한 예능 프로그램 등을 보면, 원 전 지사는 다른 출연자들의 쉴 새 없는 질문에도 재치있는 답변과 언변으로 웃음을 자아낸다. 임기응변에 능하고 순발력이 뛰어나 전문 코미디언들도 “재미있다”고 평가할 정도다. 원 전 지사 캠프 관계자는 23일 “일정 수행 중 예정에 없던 이벤트를 원 전 지사가 직접 제안해 실행되는 일이 많다. 캠프 내 젊은 구성원들과도 SNS에서 격의없이 소통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라고 전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경우 아직까지 MBTI 검사를 받아본 적 없었다. 이에 국민일보는 윤 전 총장 측에 ‘MBTI 검사를 받아볼 의향이 있느냐’고 물었지만 윤 전 총장 캠프 관계자는 “아직 검사를 받을 계획이 없다”고 밝혀왔다. 다른 후보들이 경쟁적으로 MBTI 검사 결과를 공개하며 젊은층과의 스킨십을 늘리려는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로 확정된 이재명 경기지사도 윤 전 총장과 마찬가지로 정확한 MBTI 결과를 공개하진 않았다. 이 후보는 지난 7월 민주당 대선 경선 예비후보자 토론회에서 “(MBTI 검사를) 2002년에 한 번 장난삼아 해 본 기억이 있다”며 “검사결과를 보고 같이 시민운동을 했던 의사분이 저를 끌어안더니 울더라. 왜 그러냐고 했더니, 검사 결과를 보면 (이 후보는) 내성적이고 섬세한 성격인데 어떻게 그 험한 시민운동을 했는지 (모르겠다고 하더라). 그때 들은 얘기로는 섬세하고 내성적이고 이래서 사회활동을 하기 적합하지 않은 유형이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이에 사회자는 “짐작컨대 I로 시작하는 유형일 것 같다”고 첨언했다. MBTI에서 ‘I’(Introversion) 유형은 내향형을 의미한다. 자신의 외부보다는 내면에 집중하고, 조용한 경향을 보인다.
이렇듯 MBTI 검사 결과는 한 사람의 성격을 파악하는 데 일정 부분 참고할 만하다. 젊은 층에서 연애 상대를 고르거나, 직장 내 상사와의 관계 등을 풀어가는 데 MBTI 결과를 따져보는 이유도 그래서다.
대선을 앞두고 후보들이 자신의 MBTI 검사 결과를 공개한 것은 이처럼 많은 국민이 MBTI 검사를 즐긴다는 사실을 이용해 지지자들과의 소통을 늘리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MBTI가 과학적으로 충분히 입증됐는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고, 인터넷 무료 검사는 그 정확도가 더욱 떨어진다는 지적이 있는 만큼 이를 대선 후보 평가에 적극적으로 이용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임병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과학적으로는 MBTI보다 MMPI, Big 5, DSM-5 등의 검사가 더 근거가 있다”면서도 “누군가의 성격이나 심리를 이해하는 실마리로서는 이용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MBTI를 하나의 참고 자료로 활용하는 데엔 무리가 없다는 설명이다.
임 교수는 다만 “검사가 너무 쉽다보니 의도적으로 ‘나는 이런 성향’이라고 거짓말을 할 수도 있다. (대선 후보에겐) 직관보다는 논리, 감정보다는 사고를 중시하는 모습이 더 낫다고 평가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대선 후보들을 평가하는 하나의 참고 자료로서 MBTI를 이용하더라도 그가 자신의 이미지를 의식해 의도적으로 특정 답변을 제출했을 가능성을 염두해야 한다는 당부다.
안명진 기자 am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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