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음료' 커피에 새로운 바(BAR)람?..'에쏘바' 인기

유지연 2021. 10. 2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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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에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아메리카노를 외쳤다면, 이제는 조금 바꿔볼 때가 됐다. 최근, 익숙한 아메리카노와 라떼 대신 에스프레소를 내세우는 커피집이 하나 둘 심심찮게 눈에 띈다.

한 모금이면 사라질 것 같은 작고 오목한 잔에 소량의 커피가 담겨 나오는 곳. 아찔할 정도로 진하게 추출한 에스프레소를 앉는 테이블 대신 바(bar)에 서서 홀짝인다.

에스프레소 바가 커피 업계의 새로운 물결이 되고 있다. 진하게 추출한 에스프레소를 작은 잔에 마시는 바(bar) 형태의 커피숍이다. 사진 조원진

25mL, 작은 잔에 담긴 진한 커피의 향


이탈리아어로 ‘빠른’이라는 의미를 지닌 에스프레소(Espresso)는 곱게 갈아 압축한 커피 원두 가루에 약 88~93도 사이의 뜨거운 물을 고압으로 통과시켜 뽑아내는 커피다.
이탈리아 정통 레시피에 따르면 약 7g의 커피로 25mL 이내의 커피를 뽑는다고 한다. ‘데미타세’라는 조그만 잔에 담아 마시며, 씁쓸하게 느껴질 정도로 진하면서도 고소한 맛이 특징이다.
이탈리아 정통 레시피의 에스프레소는 7g의 원두에 88도~93도의 뜨거운 물로 30초 이내에 뽑은 약 25mL 이내의 커피를 의미한다. 사진 조원진


최근 이 에스프레소를 단일 메뉴로 내는 에스프레소 바가 인기다. 에스프레소를 기본으로, 크림이나 카카오 분말, 우유, 생크림 등을 조금씩 더해 변형한 마끼아또, 콘 파나 등의 메뉴 정도를 간소하게 낸다.

여느 카페에선 흔한 아메리카노나 라떼가 없는 경우도 많다. 물이나 우유를 타지 않은 원액 그대로의 에스프레소라니. 너무 쓰지 않을까 싶지만, 설탕 한 스푼이 의외의 마력을 발휘한다. 커피의 고소한 풍미를 방해하지 않을 정도의 달콤함이 입맛을 다시게 만든다.

에스프레소는 양이 적은 대신 한 잔에 1500~2000원 정도다. 이탈리아 사람들이 수시로 즐기는 1유로짜리 에스프레소와 비슷하다. 덕분에 두 잔은 기본, 한 번에 서너 잔까지 마시는 경우도 많다. 서너잔을 마셔도 카페에 머무르는 시간은 길어야 15~20분 정도다. 이야기를 나누기보다는 커피 맛 자체를 즐기기 위해 들르는 카페인 셈이다.

한 모금에 털어 넣을 수 있는 작은 잔에 제공되는 만큼 한 사람이 한 번에 두 세잔씩 마시는 경우가 많다. 덕분에 에스프레소 바에는 수많은 작은 잔이 쌓여있는 풍경을 쉽게 볼 수 있다. 사진 조원진

두 잔은 기본, 석 잔은 선택


이런 에스프레소 바 유행을 이끈 곳은 서울 중구 약수역 인근의 ‘리사르 커피’다. 최근 청담동에 분점을 낼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테이블 하나 없이, 최대 다섯 명 정도 들어갈 수 있는 바 하나만 있는 이곳의 손님들은 대부분 두 세 잔씩 에스프레소를 시켜 놓고 커피를 음미한다. 다 마신 커피잔을 쌓아 인증샷을 찍는 사람들도 많다.
에스프레소 바의 인기를 견인한 '리사르 커피'의 에스프레소(오른쪽)와 카카오 토핑이 더해진 스트라파짜토(왼쪽). 유지연 기자

서울 종로구 안국역 인근의 ‘세컨드 커피’ 역시 에스프레소 마니아들이 즐겨 찾는 맛집이다. 세 가지 방식으로 볶아낸 원두가 준비돼 있으며 에스프레소뿐만 아니라 아메리카노와 라떼도 취급한다. 바 형태와 테이블이 섞여 있는 이곳은 에스프레소 바를 처음 찾는 이들도 무리 없이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서울 안국역 인근 '세컨드 커피'의 에스프레소 메뉴들. 중배전부터 강배전까지 세 종류의 원두가 준비되어 있어 취향에 맞는 에스프레소를 즐길 수 있다. 유지연 기자

이 밖에도 서울 홍대·성수·서촌 등 트렌드 발신지로 불리는 지역을 중심으로 에스프레소 바가 줄지어 생겨나고 있다. ‘오우야’ 등 에스프레소 바 체인점도 등장했다. 인스타그램 등 SNS에는 에스프레소 바 해시태그(#)의 게시물이 2만개 이상 올라와 있다.
에스프레소 바 해시태그(#)를 단 인스타그램 게시물들. 사진 인스타그램 캡처

SPC그룹의 커피 전문점 파스쿠찌도 최근 양재 사옥에 ‘에스프레소 바’를 냈다. 커피 체인점 최초의 시도다. 정통 이탈리아식 커피를 추구하는 만큼 ‘기본’으로 돌아가 보자는 취지를 담았다. 에스프레소 싱글샷 한 잔과 에스프레소를 바탕으로 한 응용 메뉴 한 잔을 세트로 구성해 제공한다.

커피 좀 아는 사람들만 간다? “새로운 흐름으로 자리 잡을 것”


업계에선 에스프레소 바 열풍이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전망한다. 한동안 커피 업계에 불었던 스페셜티 커피 흐름이 더는 새롭지 않을 즈음 등장한 새로운 콘텐트이기 때문이다.

커피 본연의 매력을 살리는 형태라는 점에서 고무적 현상으로 보기도 한다. 커피 전문지 ‘블랙워터이슈’의 노재승 대표는 “국내 커피 문화가 어느 정도 성숙했기 때문에 커피의 본류에 가까운 에스프레소 바가 인기를 끌 수 있었다”며 “커피에 워낙 익숙해진 덕에 쓰고 진해 마니아가 아니면 접근하기 어려웠던 에스프레소까지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파스쿠찌가 양재 사옥 1층에 낸 에스프레소 바 시그니처 매장. 사진 SPC

스페셜티 커피가 흔해졌을 정도로 상향 평준화된 국내 커피 전문점의 원두 품질도 에스프레소 바 인기의 한 이유다. 조원진 커피 칼럼니스트는 “최근 국내에서 인기를 끄는 에스프레소 바들의 특징은 좋은 원두에 섬세한 기술을 더해 만든 최상급 에스프레소를 제공한다는 것”이라며 “이들이 내는 에스프레소의 맛 자체가 대중에게 다가갈 정도로 설득력이 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쉽게 말해 맛있어서 인기를 끈다는 얘기다.

커피숍에 오래 머물기 어려웠던 코로나19 시기와도 잘 맞물렸다. 그동안 제3의 공간으로 기능했던 커피숍에서 오래 앉아 머물기보다, 맛있는 커피를 빠르게 맛보고 떠나는 에스프레소 바가 매력적일 수 있다.

오래 머무르기 위한 카페가 아니라 커피 본연의 맛을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서 에스프레소 바가 커피 업계 새로운 흐름으로 자리잡을 전망이다. 사진 조원진


전문가들은 에스프레소 바의 인기가 반짝 유행으로 끝나지 않을 것 같다는 데 대체로 동의한다. 다양한 형태의 커피가 받아들여질 수 있는 충분히 성숙한 국내 커피 시장에서 커피 맛으로 승부를 보는 에스프레소 바의 인기는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전망이다.

유지연 기자 yoo.jiyo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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