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서 코로나 생물학전"..中당국 가려운데 긁어주는 '자간오'
“유럽연합(EU)은 미국의 개 목줄에 채워졌다.”
“미국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늘고 있는 이유는 미국인들이 생물학전으로 서로 죽이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애국주의 블로거 구옌무찬(孤烟暮蝉)이 자신의 웨이보(중국 소셜미디어)에 최근 게재한 글의 내용이다. 본명이 ‘슈창’인 그는 640만 팔로어를 거느린 파워 인플루언서로, 웨이보와 트위터 등에 매일 수십개의 시사문제 관련 동영상을 게재한 뒤 신랄하고 자의적인 논평을 첨가한다. 논평의 골자는 ‘중국 찬양’과 ‘서구에 대한 무차별적 힐난’이다.
친중국·반외세로 똘똘…호전적인 '인터넷 홍위병'
구옌무찬처럼 애국심과 국수주의로 똘똘뭉친 소셜미디어 게시물을 쏟아내는 젊은이를 뜻하는 ‘자간오(自干五)’에 대해 21일(현지시간) 영국 BBC 방송이 보도했다. BBC는 “자간오의 급진적이고 치우친 목소리는 종종 국영 언론에 소개돼 더 큰 이목을 끌고, 일부 자간오는 국가의 행사에 초청받거나 지방정부의 명예 칭호를 얻으며 중국 젊은이들 사이에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구옌무찬은 광둥성 정부로부터 “중국의 목소리를 정확히 대변한다”며 인터넷 홍보대사로 임명됐다.
자간오는 맹목적으로 국가에 충성하며 외국을 배척하는 중국의 극우 청년집단을 일컫는 여러 용어 중 하나다. ‘인터넷 홍위병’으로 불리는 분노청년(憤怒靑年·분청)·소분홍(小粉紅·당과 국가·지도자를 사랑한다는 뜻) 등 비슷한 의미지만, 자간오는 ‘중국 정부 관리와 가족이 중심’이라는 게 차이점이다. 또 ‘스스로 원해서 중국 공산당과 정부를 위해 일한다’는 의미도 있다. 정부를 찬양하는 글을 한편 올릴 때마다 5마오(약 90원)씩 받는 어용 인터넷 평론가인 ‘우마오(五毛)’와도 다르다.
자간오는 가학적인 글과 동영상을 통해 서구 국가와 언론 매체를 비판한다. 또 페미니즘, 인권, 다문화주의, 민주주의 등은 “중국 사회를 부패시킨다”며 무차별 공격한다. 심지어 “어린이들이 오전에 우유를 한잔씩 마시는 것은 성장과 건강에 좋다”는 상식적인 주장마저 “중국 전통 아침 식사와 가치를 무시하는 거냐”며 “서양과 서양인이 그렇게 좋으냐”는 집중 포화의 대상이 된다.
최근 이들의 주요 공격 대상은 작가 팡팡(方方)이다. 그는 소셜미디어에 지난해 1월부터 코로나19 대유행으로 두달 넘게 봉쇄된 중국 우한의 실상을 낱낱이 밝힌 ‘우한일기’를 게재했다. 자간우는 “팡팡이 반중 세력에게 가장 좋은 무기를 제공했다”면서 “조국의 등을 가장 깊게 찌른 배신자”라고 확대해석하며 매도했다.
BBC "중국 정부와 자간오는 공생관계"
BBC는 애국주의에 기반한 이들의 과도한 공격성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중국과 서방 간 긴장이 고조된 결과물로 보고 있지만, 이는 절반만 맞다”고 분석했다. 이어 “자간오의 목소리가 소셜미디어에서 급속도로 커진 것은 시진핑 중국 주석의 강력한 중국 정체성 홍보 의도와 맞아떨어진다”고 강조했다. 중국 정부는 비용을 지불하지 않아도 국가의 목소리를 홍보하고 지지하는 자간오의 게시물이 퍼져나갈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주고, 자간우는 팔로어가 늘면서 광고와 유료 콘텐트를 통해 상당한 수익을 얻는 구조가 만들어지면서 국가와 자간오 사이에 일종의 공생관계가 맺어진 결과라고 설명했다.
자간오의 성장 배경에도 주목했다. 톈안먼 사태 직후인 1990년대부터 중국 공산당이 애국주의 교육을 강화했는데, 자간오는 이같은 주입식 애국 교육을 받고 자란 세대다. 특히 중국이 외세에 당한 수모를 중심으로 ‘피학과 수치의 역사’를 집중적으로 가르쳤다. 네덜란드 출신의 중국 소셜미디어 분석가 마냐 코에체는 “애국심과 자부심, 그리고 국가 굴욕의 역사를 교육받은 젊은이들의 심리상태는 친중국·반외세가 폭발적으로 혼합된 상태”라고 설명했다. 또 코에체는 “사실 자간오의 글에 담긴 감수성은 패스트푸드와 다를 바 없다”며 “한입 먹고, 나누고, 잊어버리면 그만”이라고 평가했다.
국제사회 중국 비호감도 상승 요인…경고 목소리도
외부에 대해 무분별하게 호전적인 자간오의 태도는 중국의 전랑(늑대전사) 외교와 맞물려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비호감도를 높이는 요소가 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해 퓨리서치센터가 14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한국과 호주·영국·미국 등 9개국에서 중국에 대한 부정평가가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고, 대다수 나라에서 4명 중 3명 이상이 중국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중국 내에서도 지나친 애국주의와 공격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없지 않다. 위안난성 베이징대 국제문제연구소 부소장은 지난해 말 왕이 외교부장이 참석한 토론회에서 “중국은 개방 확대를 지속하고 주요 국가와의 관계를 적극적이고 신중하게 다루며 국내 포퓰리즘의 상승을 막아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최근 중국 내에서도 젊은이들의 애국주의 사상을 강화함과 동시에 자체 경고를 내놓으며 수위 조절에 나서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 지난달 29일 중국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은 공식 계정을 통해 ‘사람을 끌어모으려는 목적의 애국 발언과 조작은 안된다’는 입장을 내놨다. 공청단은 “최근 동영상 플랫폼에서 애국 관련 얘기로 국민의 애국심을 소비하는 일이 벌어지는데, 이는 부끄러운 일이며 애국심에 대한 모독”이라고 비판했다.
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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