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 게임'은 드라마 밖 현실.. CCTV 감시 당하는 노동자들

최재필 입력 2021. 10. 23. 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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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불 5년간 148만명.. 외국인노동자 산재 매년 수천명
오징어게임 제3화 '우산을 쓴 남자'편에서 상급자 일꾼이 일과를 마치고 개인 숙소에서 휴식을 취하는 일꾼을 CCTV로 실시간 감시하고 있다. 넷플릭스 화면 캡처


‘오징어 게임’이 한국 드라마 최초로 넷플릭스 190개국에서 흥행 1위에 오르면서 드라마가 그리는 국내 현실과 그 함의에 대한 외신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드라마의 큰 줄기인 게임을 둘러싼 설정은 다소 현실성이 떨어질 수 있지만 화면 위에 언뜻언뜻 비치는 장면은 드라마 밖 한국사회의 현실과 무관치 않다. 이 중 국내 노동 상황의 관점에서 오징어 게임 속 장면을 짚어봤다.

“밀린 월급이랑 잘린 손가락 치료비 주세요”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서 외국인 노동자 알리가 자신이 일했던 업체 사장을 찾아가 밀린 임금 등을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넷플릭스 화면 캡처

오징어 게임 제2화 ‘지옥’편에서는 제조업 공장에서 일하는 외국인노동자 알리가 사장을 찾아가 밀린 월급을 달라며 호소하는 장면이 나온다. 사장은 “돈이 없어서 못 준다”며 알리를 문전박대하는데, 실제 알리처럼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해 정부 기관에 도움을 요청한 노동자는 지난 5년간 100만명을 크게 웃돈다.

22일 국민일보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야당 간사를 맡고 있는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실과 고용노동부 및 근로복지공단에 신고된 임금체불 현황을 분석한 결과, 2017년부터 지난 8월까지 노동자 148만5679명이 체불 피해를 본 것으로 나타났다. 공단에 신고된 체불 사업장은 58만6513곳, 신고 건수는 96만7367건에 달한다. 전체 체불액은 7조2604억원인데, 이 중 임금 체불이 3조8793억원, 퇴직금 체불이 2조9098억원, 기타 4713억원이다.

또 드라마에서 알리는 사장에게 밀린 월급을 요구하면서 “일하다가 손가락이 잘렸지만, 치료도 못 받고 병원비도 못 받았다”며 억울함을 호소한다. 자리를 피하려던 사장은 알리와 몸싸움을 하면서 “어딜 만져 XXX야”라며 욕설을 내뱉고 뺨을 세차게 내리친다.

알리처럼 산재를 당한 외국인노동자는 매년 수천명에 달한다. 국내에서 합법적으로 일하는 등록외국인 산재 현황을 보면 2017년부터 지난 7월까지 3만3003건이 신청됐고 이 중 3만1760건(96%)이 승인됐다. 불법체류 등 미등록 노동자가 신청한 2053건도 1976건(96%) 승인됐다. 올해 들어서는 4800여건의 외국인노동자가 산재를 신청했다. 2017년부터 작년 6월까지 산재로 목숨을 잃은 외국인노동자는 569명에 이른다.


알리가 당한 욕설·폭행 같은 직장 내 괴롭힘은 지난 14일부터 최대 1000만원의 과태료 처분 조항이 신설됐다. 사업주와 배우자, 4촌 이내 친인척도 처벌 대상이다.

대한항공 오너 일가의 갑질 파문, 양진호 한국미래기술회장의 직원 폭행 영상, 간호사들의 ‘태움’ 문화 등에 이어 최근에는 네이버·엔씨소프트 등 정보기술(IT) 업계에서도 연이어 괴롭힘 사건이 터지고 있다. 고용부는 이달 중 300명 이상 IT 기업을 대상으로 정기근로감독을 실시해 노동관계법 위반 행위를 솎아낼 방침이다.

다만 2017년부터 지난 9월까지 고용부에 접수된 직장 내 폭행 신고 2734건 중 사법처리는 절반에도 못 미치는 1046건에 불과했다. 근로감독을 통해 직장 내 폭행 사건을 적발하는 건수도 저조하다. 고용부가 2017년 이후 근로감독에서 적발한 폭행 건은 총 9건이다. 2017년과 2018년에는 각각 3건이었는데 2019년부터 올해까진 1건에 불과했다.

CCTV로 감시당하는 노동자들

오징어 게임 제3화 ‘우산을 쓴 남자’ 편에서는 일과를 마치고 개인 숙소에서 휴식을 취하는 게임 속 일꾼(진행요원)들을 상급자가 CCTV로 감시하는 장면이 나온다. 언뜻 보면 드라마에서나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해 지나칠 수도 있는 장면이지만 실제 기업에서 CCTV로 노동자를 감시하는 행위는 비일비재하다. 지난해 말 종업원을 폭행해 숨지게 한 응급환자 이송업체 신세계911 사업주 김모씨는 고용부 특별감독에서 CCTV로 직원들을 실시간 감시한 후 업무를 지시한 사실이 드러나 충격을 줬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는 지난해 1~6월까지 접수된 이메일 제보 1588건 중 CCTV 감시·부당지시와 관련된 제보가 181건(11.4%)에 달한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상당수 직원이 회사 내에서 감시당하고 있다는 의미다. CCTV를 통한 직장 내 감시는 불법 행위다. 공개된 장소에 CCTV를 설치하는 경우는 범죄·화재 예방, 교통단속 및 교통정보 수집·분석 등에 한정된다. 공개되지 않은 장소에 CCTV를 설치하더라도 찍히는 사람에게 ‘설치 동의’를 받지 않으면 처벌받을 수 있다.

드라마 ‘오징어 게임’ 속 게임을 진행하는 일꾼들의 숙소 벽에 붙어 있는 업무 수칙 일부. 넷플릭스 화면 캡처


드라마는 일꾼의 숙소 벽에 붙은 일종의 규칙을 강조해 보여준다. 규칙에는 ‘허가 없이는 상호 간 대화를 하지 않는다’ ‘허가 없이는 방을 나가지 않는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교도소에서나 적용할 법한 규칙들이 실제 기업의 ‘취업규칙’에 담겨 있던 사례도 있다.

최근 ‘직원 트럭 시위’로 논란이 된 스타벅스코리아는 취업규칙에 ‘소지품 검사를 할 수 있고 이를 거부하면 회사 출입을 금지·퇴장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아 질타를 받았다. 또 서울대는 지난 8월 청소노동자 사망 사고가 나기 1년 전 ‘직장 내 괴롭힘 방지 조항’을 취업규칙에 반영하라는 고용노동청 시정지시를 무시하기도 했다.

워라밸, 누군가에겐 ‘그림의 떡’

드라마에 나오는 일꾼들의 출퇴근 시간도 눈에 띄는 부분이다. 일꾼들은 게임 참가자들이 아침 식사를 할 때 출근해 취침 전까지 근무한다. ‘나인투식스(오전 9시 출근, 오후 6시 퇴근)’가 아니라고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주52시간제도 위반했을 가능성이 크다. 주52시간제는 주40시간 노동에 연장근로 12시간까지만 허용하는 제도다. 2018년 7월 제도 시행 후 2286개 사업장이 위반했고 이 중 370곳이 사법처리됐다.

위반 사업주는 법에 따라 2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형을 받는다. 중소 제조업 65% 정도는 주52시간제 적용이 어렵다고 호소하는 상황이어서 추가 대책을 마련해야 할 필요성도 커지고 있다.

세종=최재필 기자 jpcho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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