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있는 '어린 왕자'를 찾아서

이지현 입력 2021. 10. 22.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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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글방 소글소글] 잃어버린 꿈을 찾는 글쓰기
픽사베이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는 어른과 아이들이 함께 읽는 아름다운 소설입니다. 심리학자 마리 루이제 폰 프란츠는 소설 속 어린 왕자가 생텍쥐페리의 마음속에 있는 내면 아이(inner child)를 형상화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내면 아이는 심리학에서 말하는, 상처받아 성장하지 못한 자아가 아니라 세상 풍파에 상처받기 이전의 본성, 동심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프란츠에 따르면 어린 왕자가 살던 ‘소행성’은 ‘유년의 공간’을 의미합니다. 이 작은 별에 피어 있는 ‘장미’는 ‘어머니’의 이미지이고 ‘활화산 두 개’는 ‘어머니의 가슴’을 표현한 것입니다. 따라서 어린 왕자의 여행은 어머니 즉, 사랑하는 존재로부터 떠나는 것이고 이 떠남을 통해 하나의 독립적인 존재로 성장한 후 다시 사랑하는 사람과 성숙한 관계를 맺기 위해 별로 귀환한다는 해석입니다. 성인 자아가 내면 아이를 돌봐 줄 때 ‘영원한 소년 원형상’이 지닌 창조성이 발현된다는 것이 프란츠의 관점입니다.

또 다른 관점에서 ‘어린 왕자’는 보아뱀을 삼킨 코끼리 그림을 마음의 눈으로 보는 법을 잃어버린 어른들에게 내면의 아이(동심)를 찾아주는 이야기입니다. 어느 사막 한가운데에 불시착한 비행 조종사가 어린 왕자를 만나 나눈 대화를 성인이 된 ‘자아’와 어린 시절의 ‘자아’ 간 대화로 재해석하면 예상치 못한 치유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어린 왕자는 조종사에게 밑도 끝도 없이 양 한 마리만 그려달라고 합니다. 어린 왕자는 조종사가 그린 보아뱀을 모자라고 하지 않고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이라고 말해 성인 자아의 잃어버린 꿈, 동심을 환기해줍니다. 또 어린 왕자가 여섯 개의 소행성을 방문하면서 만난 왕, 허영쟁이, 술꾼, 사업가, 점등인, 지리학자의 별은 아이의 눈으로 바라보는 어른들의 모습이기도 하지만 우리의 자아가 가지고 있는 여섯 가지 측면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어린 왕자를 따라 여행하며 자기 안에 있는 왕의 모습에서부터 지리학자의 모습에 이르기까지 살펴보면서 성숙한 존재로 변화해 갈 수 있습니다.

소설의 가장 아름다운 대목은 잠든 어린 왕자를 품에 안고 사막을 걸어가는 조종사의 모습입니다. 이는 내면 아이와 성인 아이가 하나가 돼 성장하는 모습을 상징합니다. 조종사(성인 자아)는 어린 왕자(내면 아이)가 바람이 한 번만 불어도 꺼져버릴 수 있다고 여기며 안아줍니다. 오래전 꿈을 알아봐 주는 자아를 발견한 것입니다.

“어린 왕자가 잠이 들어서, 나는 그를 품에 안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마음마저 따스해졌다. 부서지기 쉬운 보물을 안고 가는 것만 같았다. 나는 달빛이 비치는 어린 왕자의 창백한 이마와 감은 눈, 바람에 흔들리는 머리카락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눈에 보이는 건 껍질일 뿐이야, 가장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는 거야.’ 나는 어린 왕자가 더더욱 깨지기 쉬운 존재라는 생각을 했다. 이 등불을 보호해주어야 한다. 바람이 한 번만 불어도 꺼져버릴 수 있다. 그렇게 걸어간 끝에 동이 틀 무렵, 나는 우물을 발견했다.”(‘어린 왕자’ 중)

이제 상상해 보십시오. 인생을 돌아보면서 눈이 부시게 찬란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가장 기억에 남은 여행이 언제였고 살아오면서 가장 잘한 선택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 생각 끝에 상처받아 웅크린 채 울고 있는 어린 자아가 아니라 두려움에도 굴복하지 않고 타인을 사랑하는 나, 꿈을 이루지 못한다 해도 절대 실망하지 않고 전진하는 나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어린 왕자가 사는 별의 이름은 ‘소행성 B-612’입니다. 소행성엔 세 개의 화산구와 양 한 마리가 들어갈 만한 종이상자, 그리고 가시 네 개 달린 장미꽃 한 송이가 있습니다. 해 질 녘이면 어린 왕자가 앉아서 노을을 바라보던 작은 의자도 있습니다. 가끔 바오바브나무 씨앗이 바람에 날리면 어린 왕자는 거대한 바오바브 뿌리로 작은 별이 망가질까 봐 근심하며 나무의 싹을 제거하러 다니지요.

여러분의 마음에도 지금, 작은 별이 하나 떠돌고 있습니다. 오래도록 그 별이 있다는 것도 까맣게 잊고 있었지만, 나만의 소행성이 있습니다. 그 소행성의 이름을 한번 지어보세요. 왜 그런 이름을 붙였는지, 소행성엔 무엇이 있는지 생각해보십시오.

아래 질문에 답을 쓰면서 아득하게 느껴지는 어린 시절의 나를 소환해 보세요. 그리고 그 시절의 나와 대화를 나누는 글을 써보세요.

1. 어린 시절 좋아했던 놀이는 무엇이었습니까.
2. 어린 시절 좋아했던 장소는 어디였습니까.
3. 어린 시절 가장 좋아했던 동화는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4. 어린 시절 별명은 무엇이었나요.
5. 어린 시절 꿈은 무엇이었나요. 어린 시절 부모님은 내게 어떤 기대를 하셨나요.
6. 내 마음의 소행성 이름을 지어보세요. 왜 그런 이름을 붙였는지 이유를 짧게 써보십시오.
7. 내 마음의 소행성에 있는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존재들은 무엇인가요.
8. 내 마음의 소행성에 있는 나를 위협하는 존재들은 무엇인가요.

이지현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jeeh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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