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세대가 만든 열풍..K, 세상에서 가장 뜨거운 알파벳

2021. 10. 22.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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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Z까지. 26개 알파벳 중 최근 가장 핫한 건 바로 ‘K’다. 이걸 붙인 한국의 콘텐츠에 전 세계가 열광하고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세대가 만들어 낸 ‘K 열풍’에 대해 들여다 봤다.

BTS와 콜드플에이가 협업한 앨범 ‘My Universe’ 커버 photoⓒJames Marcus Haney x Heo Jae Young

▶한류에서 시작한 ‘K’ 돌풍의 위력

지금 이 순간. 가장 핫한 알파벳 하나를 고르라면 단연코 ‘K’가 아닐까 싶다. K-팝, K-드라마, K-무비 등 우리가 문화라 일컫는 모든 것의 범주 앞에 붙는 명징한 수식어 말이다. 지금 전 세계는 이 모든 걸 통칭하는 ‘K-콘텐츠’에 열광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살짝 볼을 꼬집어 보기도 했다.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주 멀게는 ‘겨울연가’, ‘대장금’ 등에서 시작된 동아시아 시장에서의, 그러니까 그때만 하더라도 ‘한류’라는 용어로 통칭되던, 한국 드라마 열풍이 존재했다. 아시아를 넘어 남미와 유럽을 강타하던 아이돌 뮤직의 해외 진출이 본격화되면서 ‘K-팝’이라 불리게 되었고, 다양한 콘텐츠에 K라는 아이콘 같은 표기가 매겨지기 시작했다. 그때만 하더라도 지금과 같은 현실을 마주하게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단지 우리네 문화가 해외에서 인기를 얻는다는 것 자체가 마냥 신기한 구경거리 같던 시기였다.

이제 세상이 완전히 달라졌다. 원더걸스, 싸이 같은 선구자적 아티스트의 행보가 있었음에도, 그때와 지금의 형국은 아주 다르다. 그 달라짐의 중심에는 방탄소년단, 아니 이제 BTS로 더 널리 통용되는 아티스트가 있다. 한국에서 음악을 열심히 했을 뿐인데 자연스럽게 그들을 지지하는 팬덤이 확장되었다. 설왕설래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단순히 아미라 불리는 팬덤의 확장 덕이기에 그리 오래 존속되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도 있었다. 하지만 오판이었다. 팬덤에 의존한 아이돌의 인기를 넘어 BTS는 엄연히 아티스트로 자리매김했다. ‘Dynamite’의 일회적 빌보드 싱글 차트 1위뿐이었다면, 그랬을 수도 있다. BTS의 다이너마이트 같은 에너지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싱글을 발표할 때마다 그들은 금세 1위로 올라섰다. 무려 5곡의 빌보드 핫100 차트 1위곡을 가진, 북미와 유럽의 그 어떤 뮤지션보다도 더 큰 업적을 세운 한국의 아티스트가 되었다.

최근 BTS는 유명 록 밴드 콜드플레이의 ‘My Universe’라는 곡에 참여했다. 아니 그들이 참여해 줬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사실 콜드플레이는 전 세계의 음악 애호가들이 좋아하는 ‘역대급’ 밴드다. 하지만 그들조차도 지금껏 빌보드 1위 곡은 단 한 곡밖에 없었다. 그것도 아주 오래 전 발표한 앨범 수록곡 ‘Viva La Vida’다. 그런 그들이 BTS와 협업하여 내놓은 신곡은 발표와 동시에 빌보드 핫100 차트에 1위로 ‘핫 샷’ 데뷔를 했다. 결론적으로 말해 콜드플레이는 K-팝 덕분에 자신들의 두 번째 싱글 차트 1위곡을 보유하게 된 셈이다. 물론 BTS는 이번 곡으로 총 6번째 1위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솔직히 말해 콜드플레이의 크리스 마틴이 BTS에게 넙죽 절을 해도 모자랄 판이다. 거꾸로 말하자면 콜드플레이가 굉장히 영리한 비즈니스를 했다고도 볼 수 있다. 과거였다면 동아시아의 아이돌을 거들떠보지도 않았겠지만, 지금 세상은 문화의 지역적 경계가 완전히 허물어졌고, 또 그것을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걸 빠르게 깨닫고 실행에 옮긴 실례가 바로 콜드플레이의 이번 신곡이기 때문이다.

전 세계 넷플릭스 팬들을 열광케 한 ‘킹덤 아신전’의 촬영 현장, 영화 ‘승리호’

▶K, 미디어 플랫폼을 타고 세계로

음악 분야에서 K-팝의 에너지를 K-인디라는 표기로 이어 받아온 이들도 있었다. 산업적으로 그리 비중이 크진 않지만,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며 해외 시장으로의 활로를 모색하는 인디 밴드들에 대한 이야기다. ‘이디오테잎’이라는 일렉트로닉 밴드가 있었고, ‘세이수미’라는 서프 록 밴드도 있었다. 국악을 근간으로 록 뮤직을 선보이는 ‘잠비나이’라는 밴드도 있었다. 신스 팝 장르의 ‘아도이’도 있었다. 이들 역시 힘겨운 해외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무던히도 애써 왔다. K-팝의 영향력 아래 한국에는 이런 음악들도 있다는 걸 알리기 위해 국가적 차원의 일부 지원 정책도 마련되었었다. 그렇다면 음악을 떠나 영화 산업에서의 ‘K‘는 어떻게 움직였을까? 한국 영화는 오래 전부터 유수의 해외 영화제에서 좋은 평가를 받으며 소소하게나마 해외 시장에서 성과를 거두고 있었다. 박찬욱 감독이 ‘올드보이’로 칸국제영화제 감독상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한국영화는 북미 및 유럽 시장에서 마니아를 양산해 내는 계기를 마련했다. 그리고 결국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으로 아카데미 주요 부문 트로피를 거머쥐며 한국 영화의 위상은 BTS의 그것만큼 향상되었다.

웹 드라마 ‘D.P’. 촬영 현장, 타임스퀘어 광장 전광판을 장식한 ‘오징어 게임’ 광고
이와 함께 기술적 진보에 따른 미디어 향유 플랫폼이 급속도로 변화한 것 역시 한국 콘텐츠의 영향력을 확장하는 데 큰 보탬이 되었다. 음악적으로는 스트리밍 플랫폼에 의해 굳이 피지컬 앨범을 손에 쥐지 않아도 그 어떤 나라에서든 한국 음악에 접근하는 것이 용이해졌다. 영화나 드라마의 경우는 극장과 TV를 넘어 OTT 플랫폼이 상용화되며 더욱 폭넓은 수용자와 만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조선의 ‘갓’ 열풍을 일으킨 호러 시리즈 ‘킹덤’이 넷플릭스를 통해 큰 인기를 얻었다. 한국이 장르물에 한국적인 것을 녹여 내어 잘 만든다는 소문이 금세 전 세계에 퍼지게 된 계기를 마련한 작품이 바로 ‘킹덤’이었다. 많은 국가에서 이 시리즈는 스트리밍 순위에서 상위에 랭크되며 K-시리즈(또는 드라마)의 무한한 가능성을 열었다. 봉준호 감독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말했듯 언어가 달라 사용되는 자막은 ‘불과’ 1인치의 장벽밖에 되지 않았다. 과거 ‘영어권 관객이 자막 읽는 걸 싫어한다’는 말은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의 옛이야기에 불과하게 되었다.

BTS가 빌보드 차트를 ‘가요 톱 10’처럼 들락거리고, ‘기생충’이 전 세계 영화 시장에 폭풍을 일으켰고, ‘킹덤’과 ’스위트홈’ 같은 장르물이 글로벌에 상용화된 지금, 또 하나의 콘텐츠가 빅뱅을 일으켰다. ‘오징어 게임’이 주인공이다. 넷플릭스가 서비스하고 있는 83개국 전체에서 한 번씩 인기 순위 1위를 차지하면서 K-시리즈에 대한 관심도는 한층 더 폭넓어졌다. 사실 ‘오징어 게임’은 한국 시청자로부터 되려 호불호를 불러일으켰다. 기존 유명한 작품들의 짜집기라는 식의 비판이 공개와 동시에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연, 지금 세상의 미디어 콘텐츠 중에 어느 하나 겹치지 않는 세상 유일무이한 결과물이 과연 있기는 할까? ‘오징어 게임’의 전 세계적 폭발은 이 의문을 어떻게 타개하는가에 따른 결과라고 생각한다. 유사한 것을 어떤 소재로 어떻게 변주하느냐가 그 콘텐츠의 승패를 가리기 때문이다.

영화 ‘기생충’의 뼈대를 이루는 이야기는 세상에 하나뿐일까? 결코 아니다. 수십 년 전 알랭 들롱이 주연을 맡은 영화 ‘태양은 가득히’, 이후 리메이크 된 ‘리플리’ 같은 계급의 전복이라는 소재는 언제나 존재해 왔다. 거기에 국가적, 시대적, 환경적 콘텍스트를 어떤 방식으로 근사하게 녹이느냐에 따라 작품은 완전히 독립적이고 독창적인 피조물로 다시금 탄생한다. 그간 해외에서 많은 주목을 받고 대중적 사랑을 받은 K-시리즈와 무비는 유사 텍스트에 지극히 ‘한국적’인, 그러니까 ‘K’로 대변되는 콘텍스트를 녹였다는 차별성을 지닌다. ‘오징어 게임’ 역시 많은 평자들이 이야기하듯, 수많은 데스 게임 장르물의 골조에 과거 한국 아이들의 놀이를 소재로 사용했다는 점, 그리고 봉준호 감독이 지속적으로 이야기해 온 한국 사회의 계층적인 구조가 여기에도 어김없이 녹아 있다는 점에서 좋은 평가를 얻었다.

웹 드라마 ‘오징어 게임’

▶K 붐을 추동하는 ‘한국적인 것’

‘오징어 게임’의 전 세계적 흥행과 인기 요인은 무엇일까? 분명 어떤 수용 주체로서의 세대가 완전히 바뀌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통칭 MZ세대라 구분되는 시대의 주축 세대가 견인하는 문화 소비의 힘에 관한 이야기다. 먼저 새로운 세대는 텍스트라 일컬어지는 글자 또는 문자보다는 이미지 또는 영상 텍스트로 소통한다. 유튜브가 글로벌 커뮤니케이션 플랫폼으로 자리하게 된 것도 여기에서 기인한다. 그래서 MZ세대는 굳이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그 또래 연령층의 트렌드로 읽을 수 있다. 이 세대는 취향이라는 걸 존중한다. 그래서 거대한 영미 팝 시장에서 굳이 한국 음악을 듣는 것 자체에 편견을 갖지 않는다. 오히려 쿨하다고 느끼기까지 한다.

두 번째는 이 세대가 국적 불문하고 스마트 기기를 가까이 두고 성장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들은 오프라인보다 온라인에서 펼쳐지는 세계관에 더 집중한다. K-팝 스타들이 각각의 유니버스를 구축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마치 마블코믹스가 자신들의 MCU로 전 세계를 점령했듯, 취향에 맞는 각각의 세계관에 스스로를 동일화한다. 그래서 BTS의 성장 일기 같은 영상 텍스트가 아미를 확장하는 데 큰 몫을 했다는 걸 쉽게 이해할 수 있다. OTT 플랫폼들 역시 온라인에서 쉽게 콘텐츠에 접근하고 소비할 수 있다는 지점에서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영상을 중심으로 소통하고, 동일시할 수 있는 세계관에 몰두하는 새로운 세대에게 ‘K’는 또 다른 유니버스로 다가가고 있다. 그게 현재 K-팝, K-무비, K-시리즈로 대변되는 전 세계적 K 붐의 주요 원인이라는 생각이다.

마지막으로 힙hip과 바이브vibe라는 용어가 트렌드 지표가 되면서부터, K-콘텐츠는 그것의 중심이 되었다. 앞서 말한 BTS의 히트 싱글 ‘Butter’가 세계에서 가장 힙한 바이브가 꿈틀거리는 도시 뉴욕 중심에서 울려 퍼진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넷플릭스로부터 보도자료 이메일을 하나 받았다. ‘오징어 게임’의 광고물이 그 힙한 바이브의 도시 뉴욕 맨하탄 타임스퀘어 전광판을 큼직하게 차지한 사진 한 장이다. 전 세계의 MZ는 이미 국가 간의 경계를 떨쳐 버린 지 오래다. 그들은 더 힙한 바이브를 표출하는 어떤 콘텐츠들을 찾아 순례하고 있다. 그 순례길에서 포착된 게 바로 동북아시아의 한국이라는 곳에서 뿜어져 나오는 바이브였던 셈이다. 그런데 말이다. 이걸 힙하게 뿜어내는 한국의 문화 콘텐츠가 전략적으로 해외를 노려서라기보다는, 역으로 새로운 세대에 의해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는 긍정적 유니버스가 구축되었기 때문임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된다.

물론 ‘라떼는~’이란 표현으로 지칭되는 구세대들이 힙한 바이브를 찾아 헤매지 않았던 건 결코 아니다. 대신 라떼 세대의 새로운 문화 탐색은 한국이 아닌 해외의 것을 가져옴으로써, 그것이 쿨한 컬처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하게 됐다는 차이를 가진다. 사실 필자만 하더라도 가요는 등한시하고 팝을 들었다. 신파와 조폭으로 가득한 한국 영화보다는 할리우드 키드로 살거나, 유럽 아트 필름을 보는 게 힙스터스러운 라이프 스타일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앞서 K-콘텐츠의 위상을 설명했듯, 영화, 음악, 패션 등의 모든 하위 범주의 판도가 완전히 역전되었다. 북미, 유럽, 일본에 의한 주도가 아닌 한국이라 불리는 우리네 거주지 문화가 되려 힙한 바이브를 표출하는 삶의 방식으로 바뀌어 버린 것이다. 그래서 지금의 세대는 우리의 콘텐츠에 꽤나 자긍심을 지닌다. 그렇게 그들은 한국적인 것에서 힙한 바이브가 생산될 수 있음을 인지하고 지속적으로 탐색한다.

이러한 사유 체계의 변화는 K-콘텐츠의 힘을 더욱 강력하게 만들 것이라 예상된다. 과거 정부 주도 차원에서 한국의 전통적인 것을 홍보하기 위해 숱한 애를 썼던 기억이 난다. 김치, 비빔밥, 불고기, 한복 등으로 이루어진 콘텐츠를 한국의 상징으로 알리기 위해 노력했던 것 말이다. 이 노고를 굳이 헛된 것으로 치부할 필요는 없다. 이것이 어떤 바탕이 되었음을 부정할 수는 없기에 더욱 그렇다. 하지만 현재 문화 트렌드는 구세대 힙스터들이 그리 달갑지 않게 바라보던 한국 콘텐츠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 K-팝이 빌보드 차트를 뒤흔들고 난 후 해외 뮤지션들이 자신의 앨범을 제일 먼저 홍보하고 싶은 곳으로 한국을 꼽는다고 한다. 글로벌 음반 회사 임원의 말이다. 애플 TV의 경우는 한국 영화 감독 김지운에게 한국 웹툰 원작의 시리즈 ‘닥터 브레인’의 연출을 의뢰했다. 한국 콘텐츠가 세계적 영향력을 지녔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왕좌의 게임’으로 유명한 제작사 HBO는 박찬욱에게 시리즈를 연출해 달라고 부탁했다. 봉준호에게는 할리우드 제작사의 시나리오들이 시시각각 배달된다. 할리우드 영화들이 한국 배우를 캐스팅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우리는 지금 굉장히 이상한 시대에 살아가고 있다. 예전에는 ‘K‘라는 수식어가 붙는 문화적 표기에 대해 반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너무도 국가적 홍보 차원의 어떤 행위라고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전 세계에서 ‘K‘라는 수식어를 사용한다. 새로운 세대들에 의해 창조되고 소비되는 한국적인 콘텐츠는 꽤 오래도록 지속 가능성을 보일 것 같다. 그들이 역사적으로 관습화된 기존의 콘텐츠 구조에 한국적인 어떤 것을 잘 버무리는 한은 말이다.

[글 이주영(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사진 넷플릭스, 워너뮤직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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