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 한사랑산악회 배 집사

2021. 10. 22.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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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세대에게 '한사랑산악회'가 인기다.

배 집사 간증이 호감인 건 이들이 '배용길 사장'을 잘 알기 때문이다.

'평일 배 사장'과 괴리 없는 '주일 배 집사'여서 날 선 거부감이 들지 않는다.

그래서 '아재 개신교인'으로서 이중 장벽을 지닌 배 집사를 향한 젊은 세대의 호의는 신선하고 또 함축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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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규 서울여대 언론영상학부 교수


젊은 세대에게 ‘한사랑산악회’가 인기다. 줄기차게 총천연색 등산복만 입고 다니는 아재들을 패러디하는 유튜브 콘텐츠다. 중년 남자 넷이 등산 가고 백숙 먹는 일상을 높은 싱크로율로 모사하는 개그맨들의 연기가 포인트다. 고집 세고 감각도 뒤처진 아재들을 대놓고 웃음거리로 삼지만 대상화와 조롱은 아니다. 중년을 향한 애틋함도 느껴진다.

한 달여 전 일요일 오전 11시 영상 하나가 올라왔다. 제목은 ‘배 집사 간증’. 산악회원 배용길 사장이 교회 강단에서 인생과 신앙을 이야기한다. 종종 각 회원의 에피소드로 ‘한사랑산악회 세계관’을 확장해온 터라 뜬금없진 않았지만 캐릭터의 종교를 다룬 점과 온라인 종교 시대에 주일예배 시간까지 맞춘 센스에 팬들은 감탄했다. 사용하는 언어, 교단 심벌, “아멘” 추임새까지 13분 영상에 담긴 기막힌 고증으로, 댓글에는 부모님이 이거 어느 교회냐고 물었다는 무용담이 이어졌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댓글에서 사뭇 진지함이 느껴진다. 자기 종교를 밝힌 이도 많은데 개신교인에게선 반가움이, 타종교와 비종교인에게선 호기심이 읽힌다. 젊은 세대가 종교를, 그것도 개신교를 이야기하는 여느 인터넷 공간과는 분위기가 다르다. 개그와 현실 사이, 희화화와 진지한 승인 사이 느슨한 경계를 약속으로 제작자와 소비자가 함께하는 놀이임을 감안해도, 젊은 세대에게 일상화된 개신교 비판 정서를 생각하면 확실히 이례적이다. 교리에 대한 긍정은 아니어도 최소한 자기들이 아끼는 세계관을 해치지 않는다는 반응이다.

큰 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에서 젊은층 표심과 성향 탐색이 한창이다. 청년들의 종교성 역시 종교와 학계의 오랜 논의 주제다. 물론 코미디를 다큐로 받는 몰지각은 피해야겠지만 어쩌면 이 영상은 젊은 세대 종교성의 단면을 이해하는 데 좋은 재료일지 모른다.

젊은 세대의 종교성을 제도종교에서만 찾는 건 무의미하다. 올해 한국갤럽 조사에 따르면 종교가 없다는 20대가 78%에 이른다. 전 연령대 60%와 큰 차이다. 하지만 이것으로 젊은이들이 덜 종교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유튜브를 비롯해 ‘종교적인 것’과 관련한 수많은 상징과 이야기를 쉽게 접하는 디지털 환경에서, 제도종교 소속만으로 미디어 세대의 종교를 설명하는 건 한참 잘못됐다. 위계에 기초한 일방적 가르침을 본능적으로 싫어하는 세대에게 기존 종교의 문법과 관리 기제는 시효를 다했음을 인정해야 이들의 종교성이 보이기 시작한다.

젊은이들이 종교 메시지를 호의적으로 받아들이는 조건도 엿보인다. 배 집사 간증이 호감인 건 이들이 ‘배용길 사장’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는 회원 가운데 가장 온화하고, 갈등이 생기면 중재에 앞장선다. 이민 경험과 영어 실력에 ‘자뻑’이 심하지만 밉지 않다. 그의 간증은 일곱 번의 결혼과 여러 사업에 실패한 인생의 교훈을 자기 내면 성찰에서 찾는다. 신의 힘으로 부와 명예를 획득했다는 성공 스토리가 아니다. ‘평일 배 사장’과 괴리 없는 ‘주일 배 집사’여서 날 선 거부감이 들지 않는다.

무엇보다 탁월한 건 주제 선택이다. 인생 여정을 정리하며 배 집사는 특유의 억양으로 “라브 와너나다(love one another)!”를 외친다. 뻔하지만 “커러나 휀데믹” 시국에 이웃 사랑을 꺼내든 건 시대의 본질과 결핍을 읽어낸 뛰어난 감각이다. 갈등과 싸움이 난무하는 시대에 미래세대가 바라는 종교의 몫은 사랑의 주체이지 결코 혐오가 아님을 확인케 한다.

한국사회에서 아재와 개신교는 비슷한 처지다. 권력이 있지만 호감은 떨어지고, 주류지만 왕따 분위기다. 그래서 ‘아재 개신교인’으로서 이중 장벽을 지닌 배 집사를 향한 젊은 세대의 호의는 신선하고 또 함축적이다. 그런데 혹여 이 글 역시 어느 아재의 감 떨어진 ‘오바’라면 부디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 주시길….

박진규 서울여대 언론영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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