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예수전.. 영적 위기에 빠진 '잃어버린 나' 찾아보자

2021. 10. 22.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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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교 교수로 사역하면서 멘토로 모신 분이 철마 정경옥(1903~1945) 교수입니다.

오래전에 돌아가셨지만 만나고 싶으면 언제든 글을 통해 '영적으로' 만날 수 있는 분입니다.

정 교수는 1903년 전남 진도에서 태어나 서울 경성고등보통학교 재학 중 3·1독립만세운동에 가담하고 옥고를 치렀습니다.

그렇게 '잘 나가던' 정 교수가 1937년 봄, 갑자기 교수직을 사임하고 진도로 내려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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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책] 그는 이렇게 살았다(정경옥 지음/삼원서원)


신학교 교수로 사역하면서 멘토로 모신 분이 철마 정경옥(1903~1945) 교수입니다. 오래전에 돌아가셨지만 만나고 싶으면 언제든 글을 통해 ‘영적으로’ 만날 수 있는 분입니다. 정 교수는 1903년 전남 진도에서 태어나 서울 경성고등보통학교 재학 중 3·1독립만세운동에 가담하고 옥고를 치렀습니다. 옥중에서 개종한 그는 1928년 협성신학교(현 감리교신학대)를 졸업한 후 미국에 유학, 3년 만에 학위를 받고 돌아와 모교에서 조직신학을 강의했습니다. 정 교수는 해박한 지식에 호소력 있는 강의로 학생들의 인기를 독점했습니다.

그렇게 ‘잘 나가던’ 정 교수가 1937년 봄, 갑자기 교수직을 사임하고 진도로 내려갔습니다. 정 교수는 낙향 직후 “해마다 같은 노트에 같은 방법으로 기계를 틀어놓은 것 같은 강의를 반복하는 동안에 해마다 말은 자라나 생명은 죽어서 스스로 독서도 하지 않고 연구도 끊이고 생활에 반성이 없으며 창작력이 진하였다… 나의 영은 나날이 황폐의 여정을 밟고 있었다. 기도를 하여도 마음속에서 솟아 나오는 기도가 아니었고 노래(찬송)를 불러도 혼이 들어있는 노래가 아니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영적 위기’가 사직 이유였습니다.

낙향한 정 교수는 기도와 성경 읽기, 묵상을 하면서 ‘잃어버린 나’를 찾았습니다. 그리고 1년 만에 감격이 되살아났습니다. 영성이 회복된 정 교수는 1938년 봄 평양의 광성고보 부흥회 강사로 초청을 받았습니다. 그는 “그는 이렇게 살았다”는 주제로 ‘구유의 그리스도’로 시작해 ‘십자가의 그리스도’까지 일곱 번에 걸쳐 예수 이야기만 했습니다. 정 교수 가슴에 있던 ‘예수 감동’이 학생들에게 그대로 전달되었습니다. 그때 평양에서 보육원을 하던 정지강 목사가 부흥회에 참석했다가 은혜를 받고 원고를 받아 1938년 7월 ‘그는 이렇게 살았다’는 제목으로 출판했습니다. ‘한국판 예수전’이라 할 수 있는 이 책은 1980년대까지 계속 간행되었고 2009년 삼원서원의 김영명 목사가 현대어로 쉽게 풀어 인쇄했습니다. 80년 전 글인데도 감동과 도전은 여전합니다. 오늘 아침에 읽은 대목입니다.

“오늘날 비상한 시기를 당한 우리는 주무시는 예수를 깨워볼 생각이 없는가. 우리 사회는 예수를 배에 같이 태우기는 하였으나 그가 잠들어 있는 것을 유의하려고 하지 아니한다. 우리 교회는 예수를 모시기는 하였으나 예수를 깨워보려고 하지 아니한다.”

이덕주 감리교신학대 한국교회사 은퇴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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