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상의 시시각각] 이재명의 '국힘 때문에'는 통할까

이현상 2021. 10. 22.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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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공영개발 저지 일리 없었나
LH 개발 이 지사가 반대한 적도
군색한 근거로 상대편을 악마화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인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20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경기도청에서 열린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의 경기도청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뉴스 1]

두 차례 열린 경기도 국정감사에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이 이재명 지사의 "국민의힘 때문에"였다. 토건 유착 정치 세력의 방해로 100% 공영개발 대신 민관 합작이라는 차선책을 택했는데, 여기서 문제가 생겼다는 것이다. 상대를 통째로 악마화하는 스토리 라인이지만 허점투성이다.

이 지사는 성남시 대장동의 순수 공영개발 무산을 당시 한나라당이 장악한 시의회의 반대 탓으로 돌렸다. '천추의 한'이라는 표현까지 썼다. 그러나 대장동에서 6㎞가량 떨어진 판교 주변 고등동을 보면 결이 다른 이야기가 나온다. 이재명 시장이 처음 당선된 2010년 고등동에서는 LH(한국토지주택공사)의 보금자리주택 사업이 추진되고 있었다. 이 시장은 취임하자마자 국토해양부에 지구 지정 철회를 요구했다. 성남시가 직접 개발하겠다면서다. 요청은 거절됐다. 하지만 시장의 독단 행동에 한나라당 시의원들이 강력한 불만을 제기했다. 기관 간 갈등이 빌미가 돼 LH가 성남 수정·중원지역 재개발 사업에서 철수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재개발 사업 재개를 위해 LH와 다시 협의할 것을 시에 요구했다.

이런 정황으로 봤을 때, 당시 이 시장의 대장동 개발 계획에 야당 시의원들이 반대한 것은 공영개발이어서가 아니라 '성남시 주도 개발'이어서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당시 성남 지역 분위기는 부동산 경기 침체로 개발 사업이 자꾸 미뤄지면서 주민 불만이 팽배한 상태였다. 만일 LH가 대장동 개발을 계속했다면 시의원들도 막을 명분이 없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LH 출범식에서 "이제 민간과 경쟁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 것은 사실이다. 이 말을 토건세력 비호를 위한 포석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기발하지만 빈약한 음모론일 뿐이다. 이 지사 말을 그대로 빌리자면 "화약을 발명한 노벨이 9·11테러의 설계자"라고 우기는 격이다. MB의 발언은 민간이 할 수 없는 보금자리주택이나 4대 강 같은 공공사업에 더 치중하라는 취지였다.

물론 '국힘 세력'이 빌미를 제공한 측면은 있다. 신영수 전 한나라당 의원은 2009년 국정감사에서 LH의 대장동 사업에 부정적 의견을 피력했다. 얼마 뒤 동생이 지역 개발업자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LH가 철수한 대장동에서 민간 개발업자들이 시의원을 상대로 집요한 로비를 펼친 정황도 포착된다. 보수 정치가 엄중하게 반성해야 할 그림자다. 하지만 이 때문에 대장동 공영개발 시도가 무산됐다는 주장은 무리다. 당시 구조조정에 여념이 없던 LH는 대장동뿐 아니라 전국 138곳 사업장에서 손을 뗐다.

당시 성남시 야당이 시 주도 개발을 반대한 이유가 마냥 불합리했다고도 보기 힘들다. 부동산 경기는 2010~2011년 바닥을 기고 있었다. 더구나 이 시장은 취임 직후 중앙정부에 진 빚을 갚을 수 없다며 '모라토리엄'(지급유예)을 선언한 상태였다. 1조원가량의 지방채를 발행해야 하는 위험한 사업에 대해 시의회 여당 쪽에서도 우려가 나왔다.

이렇다 할 증거도 없이 상대를 악마화해 몰아가는 전략은 전형적 포퓰리스트 정치다. 곤궁한 처지에서 벗어나기 위한 궁여지책임은 이해하지만, 이런 전략이 아직도 먹힌다면 21세기 대한민국 정치의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음모론이라면 정반대의 스토리 라인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 시장은 취임 후 줄곧 성남시 도시개발공사 설립을 밀어붙였다. 3년 가까이 공전하는 안은 2013년 2월 갑자기 시의회를 통과했다. 의장을 포함한 한나라당 의원 3명이 돌아섰기 때문이다. 이들은 이후 모두 민주당으로 당적을 바꿨다. 문제가 된 시회의 의장은 이 시장 재선을 위한 선대위원장까지 맡았고, 지금은 화천대유 부회장으로 있다. 이렇게 만든 도개공은 유동규씨가 합류하며 대장동 게임의 판을 깔아줬다. 도지사 선거를 앞둔 이 시장은 여기서 나온 돈을 시민에게 현금으로 풀 생각을 했다. 이 정도면 성남 도개공 설립이 그의 정치를 위한 '빅 픽처'라는 스토리도 가능하지 않겠는가.

이현상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현상 중앙일보 칼럼니스트<leeh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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