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기획 혁신창업의 길] 오늘은 꽃무늬 원피스 입을까? AI가 찾아드려요
R&D 패러독스 극복하자 ⑨ 전재영 옴니어스 대표
그랬더니 제니의 옷과 비슷한 베이지색 시스루 풀오버 터틀넥 티셔츠(비치는 소재로 만든 소매가 달린 목이 긴 티셔츠·see through pullover turtleneck t-shirt)와 와이드 데님 팬츠(면직물 소재의 폭이 넓은 바지·wide denim pants)를 찾을 수 있었다. 인공지능(AI)이 추천한 상·하의는 제니가 입고 있는 옷과 상당히 비슷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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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션에 이미지 인식기술 첫 도입
의류 20만장 데이터 하루에 분류
상품·크기·색상·소재·문양 등 구분
고객이 원하는 스타일 추천해줘
뷰티·홈데코 등 활용분야도 넓어
」
“블랙핑크 제니가 입은 옷 찾아줘”
요즘 10~20대가 주로 사용하는 검색 방법이다. 이 쇼핑몰에서 ‘이미지 검색’이 가능해진 배경엔 AI 전문기업 옴니어스의 기술이 있다. 패션 검색 트렌드를 바꾸고 있는 이 AI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 전기·전자공학과 뇌역공학연구실에서 태동했다.
전재영(36) 옴니어스 공동창업자 겸 대표는 9년 전 딥러닝(deep learning·심층기계학습)을 연구했다. 2014년 구글 AI의 이미지 검색 기술이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동안 80%를 밑돌던 AI의 인지 정확도가 이즈음 인간(94.9%)을 넘어섰다. 연구실에서 이를 목격한 전 대표는 딥러닝 기반 이미지 검색 기술이 일상을 바꿀 수 있다고 확신했다.
최근엔 아마존의 AI 플랫폼 알렉사나 애플의 음성인식 AI 시리처럼 AI는 다양한 산업 분야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하지만 당시엔 달랐다. 전 대표는 “알파고가 이세돌 기사와 대국했던 2016년 이전엔 딥러닝이 생소한 개념이었다”고 설명했다.
AI가 특정 이미지를 제대로 구분하려면 일단 수많은 데이터를 활용해 정확히 어떤 이미지인지부터 학습해야 한다. AI가 학습할 수 있도록 데이터를 정제하는 데 상당한 비용을 투자해야 한다. 그가 몸담았던 KAIST 연구실은 SK텔레콤·LG디스플레이·아프리카TV 등과 다양한 공동 프로젝트를 진행했지만, 이들마저 막대한 시간과 비용을 들여 AI 학습용 데이터를 가공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
전 대표는 특정 분야에서 AI를 전문가 수준으로 끌어올리면 산업적으로도 성공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함께 공부하던 박준철·최형원·장윤훈 옴니어스 공동창업자와 함께 2015년 KAIST 교내 창업 오디션 프로그램(‘E5카이스트’)에 참여한다. 그들은 딥러닝 기술을 활용해 이미지 검색을 제공하는 AI를 만들자는 아이디어를 제시해 우승했고, 창업으로 이어졌다.
“처음 오디션에 나갈 때만 해도 눈앞의 창업보다 아이디어의 가능성을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오디션 우승팀이 법인을 설립해야 창업자금(1500만원)을 지원한다는 규정이 있었어요. 말 그대로 덜컥 창업하고 말았지요.”
KAIST 오디션 우승하며 공동 창업
창업 초기엔 이미지 검색을 원하는 소비자가 서비스 타깃이었다. 소비자가 옴니어스의 애플리케이션에 접속해 사진을 올리면, 이와 유사한 이미지를 검색해주는 방식이다.
패션 분야를 주목한 건 충분히 비즈니스 기회가 있다고 판단해서다. 특히 온라인 패션몰에 집중했다. 전략 컨설팅 기업인 맥킨지에 따르면 2019년 전 세계 패션시장 규모는 약 3000조원인데, 이중 온라인몰(약 611조원)이 20%를 차지한다. 미국에서만 최근 8년간 연평균 15% 증가했다.
하지만 온라인에서 패션 상품을 검색하려면 키워드를 중심으로 하는 수밖에 없었다. 전 대표는 “이런 상황에서 전공을 활용하면 기회가 있다고 믿었다. 패션은 AI 기술 접목이 더딘 분야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옴니어스의 서비스는 좀처럼 입소문이 나지 않았다. 결국 연구개발(R&D) 자금 유치를 계기로 비즈니스 모델을 전환했다. 이미지 인식 기술을 활용하면 혜택을 누릴 수 있는 패션 기업에 AI 검색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이다.
통상 온라인 패션몰에서 검색 서비스는 대부분 수작업에 의존한다. 가령 상품 관리자가 상품 유형에 ‘원피스’를 입력한 뒤, 세부사항이나 제품명에 ‘꽃무늬’를 기재해둬야 소비자들이 ‘꽃무늬 원피스’를 찾을 수 있다.
의류·신발 등 패션 상품의 특성 때문이다. 똑같은 원피스라고 해도 소재·크기는 물론 목·소매 등 아주 작은 디자인 하나가 소비자의 호불호를 결정한다. 게다가 패션 용어는 전문가가 아닌 이상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예컨대 ‘플라워 벨트를 매치한 로맨틱한 레이스와 프릴 디테일의 시스루 원피스’ 같은 용어가 흔히 쓰인다. 패션 상품을 키워드로 검색하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뜻이다.
롯데온·현대백·LF몰 등에 공급
옴니어스의 AI는 이러한 900개 이상의 비정형 패션 이미지 속성을 자동으로 분류한다. 셔츠·치마 등 기본적인 형태 구분은 물론이고, 길이·색상·소재·스타일·프린팅 등 패션 전문가가 식별할 수 있는 자세한 정보를 구분할 수 있다.
전 대표는 “AI는 이미지 20만장에 담긴 패션 데이터를 하루 만에 분류한다”며 “패션 전문가보다 100배 빠르고, 20% 정확하게 자동으로 제품의 특성을 분류해 제품 태그(Tag·정보를 표시하기 위해서 부착하는 도구)를 입력한다”고 설명했다.
옴니어스의 AI는 롯데온·현대백화점·아모레퍼시픽·이랜드·GS숍·LF 등에 공급 중이다. 예컨대 LF몰에서 ‘꽃무늬 원피스’를 검색하면 9개의 상품이 나온다. 흥미로운 대목은 9개의 상품 중 ‘꽃무늬’라는 단어가 정확히 상품명에 들어간 건 4개뿐이라는 점이다. 4개는 ‘꽃패턴’ 혹은 ‘벚꽃패턴’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나머지 1개는 ‘잔꽃프린트’라는 단어를 상품명에 사용한다.
이처럼 제품명에 ‘꽃무늬’라는 단어가 없어도 소비자가 ‘꽃무늬 원피스’를 검색하면 실제로 꽃무늬가 인쇄된 제품을 볼 수 있다. 옴니어스의 AI가 상품 이미지를 인식해서 검색 결과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유리 서울대 의류학과 교수는 “옴니어스는 국내 스타트업 중 거의 최초로 패션 산업에 AI를 접목한 기업”이라며 “컴퓨터 비전의 기술적 정확성도 우수하지만, 특히 패션 디자이너·상품기획자 입장에서 필요한 패션 정보가 무엇인지 이해하고 굉장히 체계적으로 접근했다는 데 강점이 있다”고 평가했다.
옴니어스의 AI가 할 수 있는 일은 또 있다. 소비자가 검색한 이미지와 유사한 상품·스타일을 추천하는 기술이다. 소비자가 원하는 패션 아이템을 촬영해서 업로드하면, 옴니어스의 AI가 이미지 서치 기능을 기반으로 사진과 유사하거나 동일한 상품을 찾아준다.
이미지 속 패션 아이템과 어울리는 스타일의 상품을 추천하기도 한다. 예컨대 소비자가 특정 티셔츠 이미지를 검색했다면 이와 어울리는 바지를 AI가 추천하는 식이다.
신진우 KAIST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옴니어스 AI의 이미지 인식은 패션에 특화해 있지만, 다른 분야에 얼마든지 적용 가능한 확장성 있는 기술”이라며 “AI가 어떤 분야를 학습하느냐에 따라 이커머스 상품 검색이나 뷰티·홈데코 분야 등 다양한 분야에 적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SNS로 매일 2만 명 데이터 수집
최신 패션 트렌드도 분석한다. 인플루언서 2만여 명이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 올린 패션 데이터를 매일 수집해 이들의 영향력을 평가하고, 인플루언서가 착용한 의상이 어떤 스타일인지 정리한다. 예를 들어 옷 가장자리나 솔기 부분에 레이스나 천을 덧대는 디자인(러플 디테일·ruffle detail)이 유행한다고 하자. 옴니어스 AI는 소셜미디어(SNS)에서 러플 주름이 달린 옷을 입는 인플루언스의 포스팅을 확인해 어떤 패션 상품과 함께 코디했는지 확인한다.
이주열 LG CNS D&A연구소장은 “AI의 이미지 판독 정확도는 딥러닝 기술의 발전 덕분에 지난해 98.7%까지 상승하며 인간 수준(96.4%)을 뛰어넘었다”며 “이처럼 우수한 AI의 이미지 인식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다양하게 찾을 수 있다”고 기대했다.
문희철 기자 report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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