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궤변으로 청탁금지법 허문 전현희, 권익위원장 자격 없다

입력 2021. 10. 22. 00:09 수정 2021. 10. 2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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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한 사람끼리는 무료로 변론할 수 있다”


청탁금지법 주무부처 기관장이 법 무력화


“지인이나 친구 등 아주 가까운 사람에게는 무료로 변론할 수도 있다.” 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이 지난 20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귀를 의심케 하는 발언을 했다. 국민권익위원회는 부정청탁·금품수수 금지법(일명 김영란법)의 주무부처다. 그 누구보다 청탁금지법을 엄격하게 지키고 준수해야 할 국민권익위원회의 기관장이 법을 뿌리째 뒤흔드는 궤변을 대놓고 말한 셈이다.

공직자에 대한 청탁은 대개 ‘친분’이 구실이다. 혈연·학연·지연을 매개로 청탁이 기승을 부리는 현실 때문에 민간인까지 적용되는 등 위헌적 요소가 상당함에도 청탁금지법은 국회 문턱을 넘었다. 이로 인해 학생이 스승에게 캔커피 하나를 선물해도 청탁금지법 위반으로 처벌되는 상황이다. 그런데 2018~2020년 선거법 위반 혐의로 재판받을 당시 전직 대법관 2명과 헌법재판관 등이 포함된 호화 변호인단을 선임하고도 2억5000여만원만 냈다는 이재명 경기지사에게 전 위원장은 공개적으로 면죄부를 줬다. 이 지사와 비슷한 규모의 변호인단을 꾸린 효성의 조현준 회장은 400억원을 냈다는 소식을 접한 국민으로선 전혀 납득할 수 없는 얘기다.

청탁금지법은 금품 형태의 뇌물은 물론 무형의 경제적 이익도 받아선 안 될 대상으로 못 박고 있다. 무료나 저가 변론이 무형의 경제적 이익임은 삼척동자도 안다. 친한 사이끼리 이런 이익을 주고받는 게 허용된다면, 한 다리 건너면 누구나 ‘지인’ ‘친구’가 될 수 있는 대한민국에서 청탁금지법 위반으로 처벌될 공직자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도 전 위원장이 거침없이 이 지사에게 ‘무죄’를 선언한 이유는 그가 더불어민주당의 대선후보란 점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란 의혹이 꼬리를 물고 있다. 사실이라면 전 위원장은 정치적 중립을 엄수하며 국민의 권익만을 수호해야 할 국민권익위원장의 의무를 내팽개쳤다는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전 위원장의 발언에 비난이 빗발치자 권익위는 “동창·친목회 등 장기·지속적인 친분 관계라면 금품 수수가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이 또한 궤변이다. 친분이 장기적이고 지속적인지 누가 어떤 기준으로 결정할 수 있나.

민주당 재선 의원 출신인 전 위원장은 지난 6월 민주당이 소속 의원들의 부동산 전수조사를 요청했을 때 직무 관련성을 이유로 직무 회피를 신청했다. 정의당 등 5개 군소 야당에도 정치적 중립을 이유로 회피 조치를 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서만 “야당은 직무 회피 대상이 아니다”며 조사에 참여할 뜻을 비쳐 “이중 잣대”란 비난을 들었다. 그랬던 그가 이젠 국정감사장에서 여당 대선후보의 변호사비 대납 논란에 면죄부를 주는 지경에 이르렀다. 전 위원장은 발언을 철회하고, 사과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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