챔스 결승 이끈 포항 '넘버3' 골키퍼

박린 2021. 10. 22.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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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과 준결승 승부차기 끝 승리
주전들 부상 부진으로 기회 잡아
"갈비뼈 아파 주사 맞고 뛰었다"
포항 32억원 확보, 알힐랄과 결승
지난 20일 울산과 AFC 챔피언스리그 4강전에서 몸을 날려 공을 막는 이준. [사진 포항 스틸러스]

“불투이스(1m92㎝) 덩치가 어마어마해서 살짝 졸았거든요. 파워 슛을 쏠 것 같아서 저도 자신감을 갖고 떴죠. 공이 허공으로 날아가는데 제가 막은 것처럼 짜릿했어요.”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결승으로 이끈 포항 스틸러스 골키퍼 이준(24)과 21일 전화 인터뷰를 했다. 포항은 지난 20일 전주에서 열린 4강전에서 울산 현대를 승부차기 끝에 꺾었다. 이준은 승부차기 1번 키커 불투이스의 실축을 유도해 5-4 승리를 이끌었다. 그는 후반 7분 상대 크로스를 제대로 걷어내지 못해 선제골을 내줬지만, 후반 17분 윤일록의 골키퍼 일대일 상황을 잘 막아내기도 했다. 경기에 앞서 이준은 영상을 돌려보며 이동경의 세트피스 낙하지점까지 파악할 만큼 울산을 분석했다.

극적인 승부가 끝나자 이준은 무릎을 꿇고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눈물을 흘렸다. 김기동 포항 감독은 “부상이 있었는데 참아줘서 기특하다”고 했다. 이준은 “나고야(일본)와 8강전에서 동료와 세게 부딪혔다. 갈비뼈에는 이상 없었지만, 진통제를 먹었고, 주사도 맞았다. 경기에 몰입하다 보니 아픔도 못 느꼈다”고 했다. 이준은 지난 17일 나고야와 8강전에서 수퍼세이브를 펼쳐 3-0 승리를 이끌었다.

이준은 불과 한 달 전까지 소속팀 경기를 TV로 지켜봤던 ‘넘버3’ 골키퍼였다. 지난달 15일 세레소 오사카(일본)와 16강전 원정 엔트리에는 골키퍼 강현무와 조성훈만 포함됐다. 이준은 “부산 본가에서 부모님과 경기를 함께 봤다. 죄송스러웠다. 부모님도 제가 힘든 걸 아니까 서로 말없이 TV만 봤다. 원정 경기를 따라가지 못할 땐 버스에서 폰으로 본다. 백업 골키퍼는 참 서럽고, 괴롭다”고 했다.

키(1m88㎝)가 큰 데도 날렵한 이준은 연세대 시절 까무잡잡한 피부 때문에 ‘흑표범’이라 불렸다. 프로 3년 차 이준의 연봉은 중소기업 초봉 수준이다. 이준은 “연봉은 3년째 똑같다. 내가 한 게 없으니…. 그래도 기회는 한 번은 올 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지난달 포항 주전 골키퍼 강현무가 부상으로 시즌 아웃됐다. 넘버2 골키퍼 조성훈마저 부진하자, 이준에게 기회가 왔다. 하지만 프로 데뷔전은 잔인했다. 이준은 지난달 29일 강원FC전 0-0이던 후반 추가시간 ‘알까기 실점’을 했다. 느린 중거리슛이 물에 젖은 잔디에서 불규칙 바운드를 만든 것이다. 이준은 “누가 봐도 내 실수다. 오히려 좋은 약이 됐다”고 했다. 이후 이준은 나고야와 울산을 막아냈다.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결승행을 이끈 뒤 포항 팬들에게 박수를 보내는 이준. [사진 포항 스틸러스]


포항의 모기업(포스코)은 매년 지원을 줄이고 있다. 이 때문에 올 시즌 송민규, 일류첸코(이상 전북), 팔로세비치(서울) 등 핵심 선수들이 떠났다. 이 빠진 포항은 ‘잇몸 축구’ ‘임플란트 축구’를 하고 있다.

이준은 “포항에는 임상협, 신광훈 형 등 좋은 선수들이 많이 남아있다”며 “울산과 4강전 빌드업 때 스리백이 공을 돌리고, 사이드 윙백 강상우 형과 크베시치가 한 칸씩 올라갔다. 울산의 압박이 잘 안 되니 바코가 동료에게 화를 내더라. 김기동 감독님이 준비한 전술이 잘 먹혀서 선수들도 놀랐다”고 했다.

포항은 다음 달 23일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알 힐랄(사우디)과 결승전을 치른다. 포항은 준우승팀 상금과 출전수당을 포함해 32억원을 확보했다. 우승상금은 47억원이다. 이준은 “알 힐랄에 사우디 국가대표가 6명이 있다. 유럽파 공격수(스완지시티 출신 고미스)도 있다고 한다”며 “(준결승 상대) 울산 선수들도 절반 가까이가 국가대표였다. 포항과 알 힐랄이 챔피언스리그에서 3번씩 우승했는데, 포항을 최다 우승팀으로 만들겠다”고 했다. 사우디 무더위에 대해 이준은 “대구 인근 창녕에서 중고교를 나왔다. 6년간 살인 더위에 단련됐다. 더위에 지지 않는다. 포항도 지지 않는다”고 자신했다.

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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