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유동규 '배임' 빼고 기소했다.."이재명 일병 구하기"
성남시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로비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수천억원대 배임 등의 혐의로 지난 3일 구속했던 유동규(52·구속)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에 대해 배임을 빼고 뇌물 혐의로만 21일 구속기소했다. 유 전 본부장은 서울중앙지검이 지난달 29일 수사에 착수한 지 22일 만에 처음으로 재판에 넘긴 사례지만, 수천억원대 특혜 의혹의 핵심인 배임 혐의를 삭제해 ‘문워크 수사(뒷걸음질 수사)’란 비판이 나오고 있다.
재판 중이라도 배임 혐의를 입증해 추가 기소하는 데 실패할 경우 민간사업자가 챙긴 수천억원대 이익을 범죄 수익으로 환수하는 건 불가능해진다. 유 전 본부장 기소 혐의에서 배임 혐의를 제외한 건 결국 ‘윗선’으로 의심을 받는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이재명 경기도지사를 무혐의 처분하기 위한 수순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구속영장에 넣은 수천억 배임, 김만배 5억 빼고…뇌물 3억만 기소
서울중앙지검 전담수사팀(팀장 김태훈 4차장검사)은 21일 오후 9시 23분 유 전 본부장을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및 형법상 부정처사후수뢰(약속)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했다고 밝혔다.
유 전 본부장은 우선 2013년 성남시설관리공단 기획관리본부장으로 근무할 당시 대장동 개발업체로부터 뇌물 3억 5200만원을 수수한 혐의를 받는다. 유 전 본부장이 당시 개인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대장동 개발과 함께 위례신도시 개발에도 참여했던 남욱(48) 변호사와 정영학(52) 회계사, 위례자산관리 대주주 정재창(52)씨한테서 받았다는 돈에 대해 뇌물수수 혐의를 적용한 것이다.
검찰은 또 유 전 본부장이 2014~2015년쯤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관리본부장으로 일하면서 화천대유자산관리를 대장동 민간사업자(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하고, 사업협약 및 주주협약 체결 과정에서 유리하게 편의를 봐준 뒤 2020~2021년경 “그 대가로 700억원(세금 등 공제 후 428억원)을 받겠다”라고 약속한 것으로 판단했다.
수사팀은 지난 3일 유 전 본부장을 구속하면서 적용했던 수천억원대 배임 혐의는 제외했다. 검찰 관계자는 “배임 혐의 등의 경우 공범 관계 및 구체적 행위분담 등을 명확히 한 후 처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검찰은 또 구속영장에 포함한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56)씨로부터 올해 1월 뇌물 5억원을 수수했다”라는 혐의도 공소장에선 제외했다. 검찰은 지난 14일 김씨에 대한 구속 심사에서 당초 유 전 본부장 영장에 기재한 ‘현금 1억+수표 4억원’을 ‘현금 5억원’으로 정정했다가 “구속 필요성에 대한 소명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기각된 바 있다.
수사팀은 앞서 20~21일 이틀 연속 유 전 본부장과 김만배씨, 남욱 변호사, 정영학 회계사 등 대장동 사업 핵심 4인방을 동시에 소환 조사했다. 하지만 대장동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혐의인 배임과 8억원 뇌물수수 혐의 중 5억원을 빼고 기소하면서 17일간 추가 수사를 통해 여죄를 밝히긴커녕 뒷걸음질만 쳤다는 비난을 피하기 힘들게 됐다.
순천지청장 출신의 김종민 변호사는 “유동규를 기소하면서 배임 혐의를 뺀 것은 공소권 남용 수준”이라며 “‘이재명 일병 구하기’에 검찰이 총대를 메고 배임 혐의 압박으로부터 벗어나게 하겠다는 의도”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성남 대장동 개발 비리의 배임 혐의는 명백하다. 최종결정권자 이재명과 유동규 등 하수인들이 서로 짜고 지분에 따른 성남시 몫 개발이익을 고의로 포기해 성남시가 손해 보게 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수사팀 외부의 한 검찰 간부도 “법원이 유동규 구속영장을 발부하면서 혐의가 일부 소명됐다고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중한 배임 혐의를 정작 기소하면서 뺐다”며 “구속 때 적용한 혐의를 기소도 못 한 특별수사는 보지도 듣지도 못했으며 수사팀은 책임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른 수사팀 밖의 검찰 간부는 하지만 “배임 혐의를 넣으면 이재명 지사를 향해 수사가 진행된다는 뜻인데 현재로썬 그 부분을 구성할 만큼 수사가 이뤄지지 않은 것”이라며 “성남시 압수수색을 시작한 단계여서 불가피한 측면도 있고, 나중에 추가 또는 분리 기소도 가능하다”라고 말했다.
수사 착수 22일만 성남시장실 압수수색…‘윗선 수사’ 회피
검찰은 이날 수사 착수 22일 만에야 성남시청 시장실과 비서실을 압수수색하기도 했다. 지난달 26일 김오수 검찰총장이 이정수 서울중앙지검장에게 “성역 없이 성남시청 등을 압수수색하라”라고 지시한 날부터는 25일 만이다.
법조계에선 “수사 시작 시점에 성남시장실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하고 점차 배임 혐의를 다진 뒤 유 전 본부장 기소 등으로 이어져야 했지만, 순서가 뒤바뀌었다”라는 지적이 나온다.
그간 수사팀은 성남시청 압수수색을 의식적으로 피하면서 “여당 대선 후보인 이 지사의 눈치를 본다”는 의심을 샀다. 지난달 29일 화천대유와 성남도시개발공사 등을 전방위 압수수색하면서 성남시청을 빼놓은 게 발단이었다.
수사팀이 이달 15일 뒤늦게 성남시청에 진입했지만, 여전히 시장실과 비서실 등 핵심 부서를 제외했다. 정보통신과 전산 서버 등을 추가로 압수수색하면서도 이재명 지사와 핵심 측근 정진상 전 성남시 정책비서관의 e메일을 제외해 또 다른 논란을 불렀다. 검찰은 시장실을 압수수색한 이날도 이 지사와 정 전 비서관의 e메일은 대상에서 제외했다고 한다.
성남시청 관계자는 “시장실과 비서실은 PC 등 집기가 교체된 상태라 의미 있는 자료가 남아 있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태훈 수사력’ 도마에…박범계·與, 곽상도 구속에만 관심
이런 상황을 초래한 수사팀장인 김태훈 4차장검사의 수사력과 리더십도 도마 위에 올랐다. 한 검찰 간부는 “김태훈 4차장과 휘하 부장검사가 특별수사 경험이 부족한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정수 서울중앙지검장-김태훈 4차장검사-유경필 경제범죄형사부장 등 수사 지휘 라인에 수사 경험이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청와대와 박범계 법무부 장관을 포함한 여권이 대장동 특혜 의혹 규명보다는 무소속 곽상도 의원을 뇌물 혐의로 구속하는 데만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이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법무부 종합 국정감사에서 김남국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야권인) 곽 의원을 구속해야 하지 않냐”고 묻자 박 장관은 “대장동 설계 수사는 이뤄지고 있지만, 로비 의혹에 대한 돈 흐름 관련 수사가 지지부진한 게 아니냐는 생각은 갖고 있다”라고 답했다.
검찰은 이날 곽 의원의 아들을 처음으로 소환 조사하기도 했다. 화천대유 대주주 김씨가 곽 의원 아들의 퇴직금 등의 명목으로 50억원을 건넨 게 곽 의원에 대한 뇌물이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김민중·정유진·최모란 기자 kim.minjo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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