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SLBM 도발이냐' 묻자.."우리게 더 좋다" 정의용 동문서답

정진우 입력 2021. 10. 21. 18:35 수정 2021. 10. 22. 0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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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21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종합 국정감사에서 북한의 SLBM 발사와 관련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지난 19일 이뤄진 북한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발사를 끝내 ‘전략적 도발’로 규정하지 않았다.

정 장관은 21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종합 국정감사에 출석해 ‘북한의 SLBM 발사는 전략적 도발이냐’는 이태규 국민의당 의원 질의에 즉답을 피하면서 “최근 북한의 단거리 미사일 발사는 우리 군이 충분히 방어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사실상 북한의 SLBM은 전략적 도발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답변이었다.


北 SLBM 입장 묻자 "韓 SLBM이 월등" 동문서답


이태규 국민의당 의원은 북한의 SLBM 발사를 전략적 도발로 규정하지 않는 정의용 장관에게
이에 이 의원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응수단을 가진 것과 문제제기를 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이라며 정 장관에게 재차 북한의 SLBM 발사에 대한 입장을 물었다. 하지만 정 장관은 “(전략적 도발은) 한반도 안보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을 의미한다”며 “지난달 우리 정부가 발사에 성공한 SLBM이 북한이 최근에 발사한 SLBM보다 월등히 기능이 우수하다”고 동문서답했다.

북한의 SLBM에 대한 입장은 이날 국정감사에 출석한 서욱 국방부 장관 역시 마찬가지였다. 서 장관은 도발을 “(우리) 영공과 영토, 영해 등 국민에게 피해를 끼치는 것”이라며 북한의 SLBM에 대해선 “이번 건은 도발이 아닌 위협”이라고 말했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북한의 SLBM 발사에 대해 “북한이 핵실험이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는 하지 않고 있다. 결정적 파국으로 가지 않겠다는 의미이면서 여전히 대화의 조건을 탐색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한 통일부 고위 당국자의 전날 발언을 두고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과 설전을 벌였다.

태 의원이 이를 두고 “우리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데 ‘파국으로 가지 않고 대화 조건을 탐색하는 것’이란 통일부의 평가가 적절하냐”고 묻자 이 장관은 “그런 평가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태 의원이 “유엔 안보리 회의가 소집됐는데, 통일부가 이런 입장이라면 유엔에서 지금 괜한 소동을 피우는 거란 뜻이냐”고 다시 묻자 “북한이 ICBM과 핵실험을 하지 않는 것은 결정적 파국으로까지 가지 않으려는 것이고, 그 속에는 대화를 탐색하는 의도도 있는 것 아니냐는 취지일 뿐”이라고 맞섰다.

하지만 이는 북한의 SLBM 도발을 엄중하게 보기보다는 핵ㆍICBM 실험을 하지 않은 것을 평가하는 데 더 중점을 두는 것처럼 들릴 여지가 있다.


김여정 "우몽" 지적 후 사라진 '도발'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은 지난 15일 문재인 대통령이 국내 첫 SLBM 발사 시험을 참관한 자리에서
한국 정부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위반에 해당하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도발’로 규정하지 않는 것을 두고 다시 '김여정 하명' 논란이 이는 분위기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은 지난달 15일 문재인 대통령이 우리 군의 SLBM 발사시험을 참관한 뒤 "우리의 미사일 전력은 북한의 도발을 억지하기에 충분하다"고 한 걸 문제삼았다. 그는 ‘도발’이라는 단어를 “기자들 따위나 쓰는 것”이라며 문 대통령에 대해 “한 국가의 대통령으로서는 우몽하기 짝이 없는 발언”이라고 비판했다.

직후인 지난달 28일 북한이 극초음속미사일로 추정되는 발사체를 쐈을 때 정부는 '도발'이란 단어를 쓰지 않았다. 김여정이 설정한 '금기어'였기 때문이라는 비판이 야권에서 제기된 이유다.

실제 지난 20일 국회 외통위의 외교부 국정감사에선 북한의 SLBM 발사에 대한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차원의 공식 입장에 ‘도발’이라는 표현이 없는 것과 관련 국민의힘 의원들을 중심으로 “한국 정부가 북한의 가스라이팅 전략에 말려들었다”(조태용 의원), “김정은 남매가 도발이란 단어를 싫어해서 도발이라고 규정짓지 못한다”(태영호 의원) 등의 비판이 이어졌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한국 정부가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를 도발로 규정하지 않고 '유감'이나 '위협' 등 가치중립적인 용어만 사용한다면 이는 곧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인정한다는 의미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北 논리 그대로 수용하는 격"


북한이 지난 19일 시험 발사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연합뉴스]
더구나 SLBM 발사를 ‘도발’로 규정하지 못하는 것은 정부가 이를 전략 도발이 아니라 자위권이라 주장하는 북한 입장에 동조하는 것처럼 보일 여지가 있다는 지적이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21일 조선중앙통신 기자와의 문답을 통해 “SLBM 시험발사는 미국을 의식하거나 겨냥한 것이 아니고 순수 국가방위를 위해 이미 전부터 계획된 사업이다. 미국과 남조선은 우리의 주적대상에서 배제됐다”고 정당성을 주장했다. 최근 계속되는 이중기준 철회도 재차 요구했다.

이와 관련 차두현 아산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외교부 장관이 명백한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인 탄도미사일 발사에 대해 ‘도발’이라고 정의하지 못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며 “특히 김여정 부부장이 문 대통령의 ‘도발’ 표현을 비판한 이후 실제 정부가 이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무기 개발이 자위적 측면이란 북한 논리를 그대로 수용하는 격”이라고 말했다.


4년 연속 북한인권결의안 불참 기류


한편 정 장관은 이날 국감에서 올해도 북한의 인권 상황을 규탄하는 유엔인권이사회(UNHRC) 북한인권결의안에 공동제안국으로 참여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우회적으로 밝혔다. 정 장관의 이같은 입장은 ‘최근 유럽연합(EU)이 북한인권 결의안 초안을 작성할 공동제안국과 첫 회의를 했는데, 한국이 공동제안국으로 참여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냐’는 지성호 국민의힘 의원 질의에 답변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정 장관은 공동제안국 참여 여부를 묻는 질의에 “검토해나가겠다”는 답변을 반복했다. 지 의원이 재차 입장을 묻자 “검토해나가겠다. 어떻게 더 답변을 하냐”며 “북한인권결의안에 대한 정부 입장은 사실상 상당 부분 정립돼 있다”고 말했다. 한국이 최근 3년 연속 ‘한반도 상황’을 이유로 결의안 공동제안국에 참여하지 않은 점을 고려하면 정 장관이 강조한 ‘정립된 정부의 입장’은 공동제안국 불참을 의미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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