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페이 시대에.."밥값 金으로 내라" 100년전 돌아간 이나라

고석현 2021. 10. 21.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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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수엘라 투메레모의 한 약국에서 손님이 결제를 하기 위해 '볼리바르' 지폐에 싸여있던 금을 내고 있다. [블룸버그통신 캡처]

"뭐든 금으로 살 수 있어요. 전 세계 다른 나라에선 이미 1세기 전부터 더이상 금을 교환수단으로 사용하지 않지만, 베네수엘라에선 요즘 다시 떠오르고 있습니다."
베네수엘라 남동부 마을 투메레모에 사는 호르헤 페냐(20)는 이발소에서 머리를 깎고 아주 작은 금조각 3개를 이발사에게 건넸다. 5달러(약 5800원)쯤 하는 금 8분의 1g이 그의 이발 가격이다. 삼성페이·카카오페이 등 휴대폰 기반의 간편한 결제수단이 있는 한국으로선 이해가 되지 않는 풍경일 수밖에 없다.

20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은 다양한 간편 지급시스템이 활성화한 21세기에 베네수엘라에선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금이 지불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나라는 수년째 경제 위기가 계속되고 있는데, 한때 연 100만% 단위까지 치솟았던 인플레이션도 이어지고 있다.

이 나라 화폐 단위는 '볼리바르'인데 자고 나면 가치가 뚝뚝 떨어지는 탓에 화폐에 대한 신뢰도 함께 떨어졌고, 사람들은 안정적인 화폐에 의존하기 시작했다. 수도 카라카스 등에선 미국 달러가 그 역할을 한다고 최근 AP통신은 전했다. 베네수엘라 전체 거래의 60% 이상이 달러로 이뤄진다고. 브라질과 맞닿은 지역에선 브라질 돈인 '헤알', 콜롬비아 접경 지역에선 '페소'가 '볼리바르'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베네수엘라 화폐인 볼리바르는 가치가 크게 하락했다. AP=연합뉴스


눈에 띄는 건 금 매장지역인 이 나라 남동부에선 금이 화폐가 됐다는 점이다. 볼리바르는 미덥지 않고, 외화는 구하는 게 쉽지 않으며 인터넷 사정이 좋지 않아 디지털 거래도 여의치 않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그나마 가장 구하기 쉬운 금을 잘게 조각내 가지고 다닌다. 통신은 그야말로 '휴짓조각'이 된 볼리바르 지폐에 금가루를 싸서 다니기도 한다고 보도했다.

상점엔 물건 등의 가격이 금으로 표시돼있다. 호텔 1박엔 금 0.5g, 중국음식점 2인 점심 가격은 금 0.25g이다. 수퍼마켓의 탄산음료의 가격도 금으로 적혀있다. 상점에 금 무게를 재는 작은 저울이 있지만, 이미 가게 주인과 소비자들 모두 금 지불에 익숙해져 눈대중만으로도 그 양을 가늠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

투메레로에서 작은 호텔을 운영하는 오마르는 "숙박비를 금으로 받고 직원들 월급도 금으로 준다"며 "투숙객 3분의 2가 숙박비를 금으로 지불하고, 금이 없으면 달러나 다른 외화도 받는다"고 밝혔다. 간혹 '볼리바르'를 내는 손님이 있는데, 내키진 않지만 거부하는 건 불법이기 때문에 가치가 떨어지기 전에 재빨리 써버린다고 한다.

이 나라 경제학자 루이스 비센테 레온은 "사람들은 더는 볼리바르를 신뢰하지 않는다"며 "볼리바르는 부의 저장 수단으로서나 회계, 교환수단으로서 더는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고석현 기자 ko.suk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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