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세기 미투 운동, 남편도 믿지 않은 진실

장혜령 입력 2021. 10. 21.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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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영화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

[장혜령 기자]

  
 영화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 포스터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는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라쇼몽>을 연상케 한다. 하나의 사건을 세 사람의 입장에서 들어보면서 조금씩 다르게 기억했던 진실을 마주한다. 에릭 재거의 소설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를 기반으로 세 각본가가 한 챕터씩 맡았다.

1장 '장', 2장 '자크', 3장 '마르그리트'의 관점을 통해 미묘하게 달라지고 왜곡된 진실에 다가간다. 조각난 기억을 바탕으로 드러난 허물은 마지막 3장에 이르러 맞춰진다. 두 남성의 헛발질에 걸려든 한 여성의 고군분투는 현대에도 적용되고 있는 부당함과 진실 오용의 모순과 교차된다.

절친한 친구가 등지게 된 이유
  
 영화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 스틸커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14세기 프랑스 악덕 영주 피에르(벤 에플렉)와 사이가 좋지 못한 장(맷 데이먼)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성주 자리를 물려받지 못한다. 이유는 영주가 성주 자리를 마음대로 자크(아담 드라이버)에게 주었기 때문이다. 피에르가 대놓고 자크를 총애하자 두 사람은 절친한 친구였지만 라이벌이 되어 서로를 위협한다.

한편, 장은 첫 번째 결혼에서 후사를 얻지 못했다. 두 번째 결혼은 철저한 정략결혼으로 진행되었다. 카루주 가문의 이름을 두고 지참금으로 비옥한 땅을 가지고 온 마르그리트(조디 코머)를 환영하게 된다. 하지만 그 땅을 영주에게 헌납할 수밖에 없었던 장인의 뜻에 분노하며 영주를 고발한다.

이 때문에 더욱 영주의 눈 밖에 난 고지식한 장은 시간이 흘러 노모와 아내 부양의 의무를 지고 전쟁에 참여하게 된다. 이후 오랜 전쟁 끝에 금의환향한 장은 쉴 틈도 없이 채무 관계로 잠시 집을 비운다. 하지만 그 사이 마르그리트에게 첫눈에 반한 자크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녀를 가지기 위해 계획했다. 집에 아무도 없는 틈을 타 마르그리트를 범하며 용서받을 수 없는 짓을 벌이게 된다.

그저 억울함을 풀고 진실을 말하고자 했던 마르그리트는 수치심을 억누르며 자크를 처벌해 달라고 황제에게 부탁한다. 결국 이 사건은 집안싸움에서 가문의 명분을 지켜야 하는 사안으로 발전하고 재판이 열린다. 재판에서 마르그리트는 2차 가해를 당한다. 여러 사람이 모인 법정에서 당시 상황을 진술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가운데 트라우마가 생긴다. 하지만 법을 집행하는 남성들은 여성의 모멸감은 알 바가 아니다. 입에 담지도 못할 인신공격으로 마르그리트를 억누른다.

하지만 진실을 밝히고자 했던 마르그리트는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 남편마저 믿지 않으려 했던 사건은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혼자만의 싸움이 된다. 결국 재판은 결투로 이어진다. 장이 이겨야만 마르그리트도 생존할 수 있다. 만약 그가 죽는다면 거짓말 한 죄로 산 채로 불에 타는 형벌을 받아야 한다. 이 싸움에서 진실은 애초부터 필요없었다. 오직 싸워서 이기는 자만이 정의로 추앙받는다. 이 야만적이고 극악무도한 게임에서 누가 승자가 될 것인가. 영화는 152분간 긴장감을 유지한 채 마지막 20분을 위해 치닫는다.

숨겨야만 했던 현실, 드러날 수 밖에 없는 진실
 
 
 영화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영화는 스펙터클한 역사 드라마의 장인 리들리 스콧의 연출로 탄생했다. 이미 <글래디에이터>, <킹덤 오브 헤븐>을 연출한 바 있는 거장답게 철저한 시대고증과 장엄한 영상미, 섬세한 심리 묘사를 갖추었다. 또한 30년 지기 우정을 과시하고 있는 맷 데이먼과, 벤 애플렉의 만남으로 화제가 되었다. 두 사람은 <굿 윌 헌팅> 이후 24년 만에 공동 각본과 출연해 시너지를 극대화했다.

그밖에 주목받고 있는 아담 드라이버와 조디 코머의 연기력도 영화에 풍미를 더했다. 감독들이 가장 일하고 싶은 1순위인 아담 드라이버와 영국 드라마 <킬링 이브>로 차세대 주역으로 떠오른 조디 코머의 연기 대결이 숨 막힌다. 거대한 힘에 맞선 연약한 개인의 외침은 84세 거장의 손길과 베테랑 배우진의 호연으로 새롭게 탄생했다. 

모두가 등 돌리고 남편조차 믿어주지 않지만 위험을 무릅쓰고 목소리를 냈던 마르그리트 실화를 모티브로 했다. 비단 중세 프랑스에서 일어났던 일이 아니라 전 세계에 걸친 슬픈 이야기임을 잊지 말 것을 당부한다. 수많은 남성의 목소리 속 마르그리트의 발언권은 사실상 없었다고 봐야 맞다. 하지만 죽음도 불사한 한 여인의 용기로 세상은 조금씩 나아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주머니 속에 잘 감춘 진실이란 언젠가 드러나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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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브런치와 키노라이츠 매거진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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