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이 말고 정호연은 어떤 사람?
오늘은 모델이 아닌 배우 정호연으로 만났네요.
한 작품에 참여한 배우로서 인터뷰를 한다는 건 정말 다른 느낌이네요. 패션업계분들이 굉장히 많은 응원을 보내주셔서 너무 감사할 뿐이에요. 든든한 지원군 같아요!
이제 〈오징어 게임〉은 넷플릭스 사상 최대 히트작이 됐죠. 이렇게까지 흥행할 줄 알았나요?
기대했지만 이 정도 성과는 상상도 못 했어요. 지금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대비가 안 돼 ‘어버버’했죠. 이제야 믿기 어려운, 인생에 단 한 번 올까 말까 한 순간이 나한테 왔구나 하고 조금씩 실감하며 중심을 잡아가는 중이에요. 저는 정말 천운아인 게, 팀이 너무 좋았어요. 첫 연기였지만 절 외부인 대하듯 하지 않고 ‘새벽’ 자체로 있게 해주셨죠.
정호연에 대한 반응이 유독 뜨거워요. 이렇게 사랑받는 까닭은 뭘까요?
〈오징어 게임〉으로 저를 처음 본 분들은 제 성격이 새벽이랑 닮았을 거라 생각하시더라고요. 많은 분이 저라는 사람을 몰랐던 거죠. 홍보 콘텐츠를 보니 정말 반전이었나 봐요. 그 또한 운이 좋았어요. 새벽이로서 인사드리는 좋은 계기가 됐으니까요.
이 배역을 어떻게 따냈는지 궁금합니다. 오디션에선 어떤 대사를 어떻게 연기했나요?
동생과 함께 있는 신, 브로커와 있는 신, 후반부에 ‘기훈’과 붙는 신 3개가 오디션 스크립트였어요. 세 장면으로 새벽이를 이해해야 했죠. 당시 뉴욕에 있었는데 잠도 안 자고 밥도 안 먹고 그냥 들입다 팠어요. 더 빨리 받아들이고 체화시켜야 했죠. 영상을 보신 감독님이 만나자고 하셔서 바로 날아왔는데, 오는 동안 대본 2개가 더 추가돼 잠을 못 잤어요. 오디션장에 간 날 다크서클이 턱밑까지 내려온 덕에 더 새벽이와 가까운 모습이 됐죠.
황동혁 감독이 호연 씨를 뽑은 이유를 말해줬나요?
단지 “너는 너만 할 수 있는 눈빛이 있다”라고 하셨어요. 저만 할 수 있는 감정 표현, 표정이 있다면서요. 백 마디 말보다 심장을 뚫는 듯한 한순간이 더 힘 있게 다가올 때가 있잖아요. 말 없는 새벽이를 표현하는 덴 그게 필요했던 것 같아요.
새벽은 인간의 선의를 믿지 않았지만 게임을 진행하며 조금씩 믿게 됐어요. 가족과 생이별한 그는 어둡고 날 서 있지만 누구보다 선한 동기로 움직이는 캐릭터였죠. 이 인물에 어떻게 접근했나요?
새벽이는 어린 나이에 경험하지 않아도 될 일들을 겪으며 순탄치 않은 삶을 살았잖아요. 그의 방어기제는 사회가 만들어낸 어두운 모습이에요. 환경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을 뿐, 실은 내면이 따뜻한 친구라고 생각했어요. 게임이 거듭되고 극한에 몰릴수록 내면 깊은 곳에 있던 인간성이 점차 드러나는 점을 염두에 뒀죠. 자신의 이익이 아닌 가족을 위해 게임에 참여했지만, 그럼에도 잃지 말아야 할 인간성은 무엇인가 고민했을 거예요. 그 역시 누군가의 희생으로 올라왔지만 결국엔 인간으로 있기를 택하죠. 당신은 어떤가요? 저는 이전에는 인간의 선의를 믿지 않았던 거 같아요. 어릴 때부터 사회생활을 시작해 철이 빨리 들었고, 좋은 일만큼 안 좋은 일도 많이 겪으면서 순수함을 잃었죠. 해외 활동을 하던 중 어느 순간 의문이 들었어요. ‘내가 이렇게 사는 것이 맞나? 진짜 나라는 사람은 누군가?’ 그때부터 책이든 영화든 손에 잡히는 대로 봤어요. 그러면서 인간을 탐구하는 연기에 관심을 가지게 됐죠. 처음 만난 캐릭터가 새벽이잖아요. 새벽이를 공부하면서 배웠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인간답게 살아야 한다’는 걸. 연기란 게 그런 것 같아요. 캐릭터를 통해 삶을 배우기도 하고, 답을 찾기도 하고, 다음 캐릭터를 만나면 또 다른 생각을 할 수 있게 될 것 같아 설레요.
감정 연기가 좋았어요. 눈빛만으로 울컥 올라오는 날것의 감정이 그대로 느껴졌죠. 6화 ‘깐부’에서 ‘지영’과의 신이 특히 좋았는데, 비하인드 영상을 보니 촬영을 마치고도 지영에게 기대 한참 울다 감정을 추스르더군요. 강새벽과 정호연이 분리되지 않는 얼굴이었어요.
배우로서 이런 신을 찍을 수 있다는 게 무척 행복했어요. 새벽과 지영은 자신의 이익을 따지지 않고 ‘이것이 우리의 마지막이라면’이라는 생각으로 시간을 보냈죠. 겪지 말아야 할 일을 겪은 두 여자가 마지막 기로에서 둘의 에너지와 감정이 쌓여 터져 나왔던 것 같아요. 현장에서 동갑내기인 이유미 배우와 친하게 지내기도 했고요. 어린 나이에 일을 시작한 사람들의 공감대가 있었고, 작품 밖에서도 같이 카페에 가고 매운 떡볶이를 먹으러 가기도 하면서 영화 얘기와 인생 얘길 했어요. 유미와 쌓은 시간 때문에 저희의 ‘케미’가 살 수 있었죠.
클로이 자오부터 루카 구아다니노, 켄 로치, 촬영 감독 로저 디킨스까지 여러 영화 스틸을 인스타그램에 올리더군요. 주로 어떤 영화를 찾아보나요?
넷플릭스는 제 베스트 프렌드예요.(웃음) 인간 이야기를 하는 작품을 좋아해요. 좀 빤한 취향이지만 폴 토머스 앤더슨, 드니 빌뇌브, 고레에다 히로카즈, 왕가위, 쿠엔틴 타란티노 등등. 한 작품을 봤을 때 연출이 좋으면 감독을, 촬영이 좋으면 촬영 감독을, 연기가 좋으면 배우를 쭉 파는데, 패션계에서 일한 경험 때문인지 시네마토그래피를 신경 쓰게 되더라고요. 영화 〈마스터〉의 한 신을 정지해놓고 보면, 사진이라고 생각해도 엄청난 힘이 느껴져요. 아직 못 본 영화가 너무 많아 행복해요.
모델로 활동해 카메라에 어떻게 비칠지 알기 때문에 유리한 점도 있었나요?
반대예요. 오히려 모델 할 때의 습관을 다 버리려고 했어요. 모델로 카메라에 어떻게 보여야 하는지 잘 알기 때문에, 새벽이로 살아가는 데 있어 방해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죠. 카메라와 호흡을 맞추려고 많이 노력했어요.
익숙한 세계를 떠나 신인으로 낯선 세계에서 시작하는 건 어떤 일이었어요?
모델로서 경험을 쌓을수록 뭐가 좋고 나쁜 건지 잘 보이고, 사람들이 나를 믿어주는 게 좋았어요. 하지만 저는 새로운 낯선 환경에 경험이 없는 미숙한 사람으로서 존재한다는 것 또한 굉장히 매력적인 일 같아요. 모든 게 새롭고 받아들이는 속도도 빨라지고, 어떤 일도 관성적으로 생각하지 않게 되죠.
정호연이 생각하는 정호연은 어떤 사람인가요?
계속 변화하는 사람. 〈도전! 수퍼모델 코리아〉에 나왔던 어린 시절, 저는 독하고 경쟁심도 많았어요. 무조건 성공해야 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산 시절도 있었죠. 하지만 경쟁만이 무언가를 창출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고 협력을 배우며 협조적인 사람이 되기도 했고, 모든 게 쌓여 저라는 사람이 됐어요. 그래서 제게 “시크해”, “러블리해”라고 하는 말들은 다 맞으면서도 다 틀린 말 같아요. 전부 저를 다르게 보거든요. 그래서 재미있어요. 제 한계에 스스로를 가두지 않고 남들이 보는 모습에 절 믿고 맡겨보는 것도 좋겠죠.
인스타그램 팔로어 수가 2천만에 육박했어요. 다양한 분야의 셀렙이 호연 씨를 팔로하기 시작했는데, 기분이 어떤가요?
가수 위켄드가 새벽과 지영이 함께 있는 장면을 스토리에 올려 제가 리포스트했는데, 그걸 위켄드가 또 리포스트했더라고요!(웃음) 저도 신기하답니다, 여러분! 개인적으론 젠데이아 콜먼이 가장 신기해요. 너무 좋아하는 배우거든요. 제가 좋아하고 존경하는 많은 분이 〈오징어 게임〉을 봤다는 게 놀라울 뿐이에요. 저희 세대가 누리는 가장 큰 즐거움 중 하나가 이렇게 SNS를 통해 전 세계를 연결할 수 있다는 점인 것 같아요. 시기적으로도 참 잘 나온 콘텐츠예요.
앞으로는 어떤 이야기를 해보고 싶나요?
어떤 이야기가 됐든 사람 사는 이야기였으면 좋겠어요. 판타지도 좋고, 다큐멘터리에 가까울 정도로 리얼한 것도 좋아요. 다양한 사람의 표정을 지어보고 싶어요. 모델로 여러 국가에서 일해봤기 때문에 해외 진출도 하고 싶고요.
같이해보고 싶은 감독은?
음… 고레에다, 폴 토머스 앤더슨, 타란티노, 봉준호 감독 그리고 짐 자무시의 〈데드 돈 다이〉 같은 블랙코미디도 너무 해보고 싶어요! 많아서 다 얘기 못 하지만 뒤에 etc를 꼭 붙여주세요.(웃음) 당신은 무엇을 믿나요? 반성. 실수를 인정하고, 실수로부터 일어날 수 있는 자세. 저는 그게 반성이라고 생각해요.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하지만 그다음의 행동이 중요하죠. 결국은 반성이라는 과정이 삶을, 나라는 사람을 만드니까요.
만일 오징어 게임 명함을 받는다면, 참여할 의사가 있나요?
지금 정호연에게는 너무너무 좋은 일이 많이 일어나고 있어서, 조금 더 즐기고 나중에 한번 생각해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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