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금융권 가고, 사업자대출 받고..폭발력 커진 자영업자 대출

안효성 2021. 10. 20.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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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에서 10년 넘게 식당을 운영해 온 김모(49)씨는 지난 7월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저축은행과 캐피탈사 등 제2금융권에서 1500만원을 빌렸다. 지난해 시중은행에서 5000만원 대출을 받은 뒤 시중은행 대출은 어려웠다. 김씨는 “여기저기서 대출을 받다 보니 신용점수가 떨어져서 이젠 갈 곳이 없다는 생각마저 든다”고 말했다.

올해 8월 말 기준 자영업자들이 전 금융권에서 받은 사업자 대출은 610조원으로 집계됐다. 시중은행 대출창구.뉴스1

830조원이 넘는 자영업자 부채의 폭발력이 커지고 있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시중은행에서 대출 한도를 다 채운 자영업자들이 금리가 높은 제2금융권으로 빠르게 내몰리고 있다. 증가세도 잡히지 않고 있다. 금융당국이 가계부채 규제를 강화했지만, 자영업자들이 기업대출인 개인사업자 대출로 몰린 탓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말 기준 자영업자 대출은 개인사업자 대출(541조원)과 가계대출(290조8000억원) 등 총 831조8000억원이다. 지난 1년 동안 18.8%(131조8000억) 불었다.

자영업자 대출 중 최근에는 가파르게 늘어나는 건 개인사업자 대출이다. 시중은행의 개인사업자 대출은 올해 6월 이후 매달 2009년 관련 통계 작성 이후 같은 달 기준 최대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6월(3조2000억원), 7월(4조2000억원), 8월(3조4000억원), 9월(3조5000억원) 4개월간 14조3000억원 증가했다.

개인사업자 기업 대출 추이.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개인사업자 대출이 늘어나는 건 은행권만이 아니다.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실이 나이스평가정보에서 받은 지난 8월 말 기준 전 금융권의 자영업자 개인사업자 대출액은 610조9902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말과 비교하면 9.7%(54조1314억) 불었다. 지난 6월 말(595조5857억)보다 15조4045억원 늘었다. 두 달 만에 올해 상반기 증가액(38조7269억원)의 40%가량을 채웠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최근에는 가계대출 문턱이 갑자기 높아지다 보니 신용대출 등을 통해 자금을 조달했던 자영업자들도 사업자 대출의 문을 다시 두드린다"며 "대출이 쉬운 곳으로 자금 수요가 몰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가계대출 규제로 인한 풍선효과 속 개인사업자 대출이 자영업자에게는 대출 우회로가 되는 셈이다.

업권별 개인사업자 대출 증가율.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불어난 대출액에 대출의 질까지 나빠지며 자영업자 빚의 폭발력은 강화되고 있다.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은 제2금융권의 자영업자 대출이 늘어난 데다 다중채무자도 급증하고 있어서다.

시중은행의 자영업자 개인사업자 대출은 1년 전보다 6.9%(27조7204억원) 증가했다. 같은 기간 제2금융권의 개인사업자 대출은 16.8%(26조4109억원) 늘었다. 증가 속도로만 보면 은행의 3배에 육박한다. 업권별로는 상호금융(14.8%)과 카드사 등 여신전문회사(15.3%), 저축은행(22.8%), 대부업(16.5%) 등의 증가 폭이 컸다.

지난해에는 시중은행의 개인사업자 대출이 14.1%(49조2706억원) 늘어나는 동안, 제2금융권은 19.8%(26조563억원) 증가했다. 증가액으로만 따져도 제2금융권은 지난 8월에 이미 전년도 전체 증가분을 다 채웠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 교수는 “자영업자들은 자금이 꼭 필요한 이들인데 (대출) 총량규제를 하다 보면 결국 금리가 더 높은 제2금융권 등으로 몰려갈 수밖에 없다"며 "고금리에 여러 대출을 갖고 있는 만큼 부실화 가능성도 그만큼 크다"고 말했다.

실제로 3곳 이상의 금융기관에서 대출을 받은 다중채무자도 늘고 있다. 정의당 장혜영 의원실이 한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기준 자영업 다중채무자는 140만6000명으로, 대출 잔액은 589조9000억원을 기록했다. 1년 전보다 차주 수는 26.7%(29만7000명), 채무액은 23.7%(113조3000억원) 늘었다.

다중채무의 경우 대출 부실이 발생할 위험이 더 큰 데다, 다른 금융기관으로 위험이 전이될 가능성도 높다. 특히 소득이 일정한 급여생활자에 비해 자영업자 대출의 경우 부실 위험은 더 크다. 나이스평가정보가 지난 5월 펴낸 보고서에 따르면 신용대출을 가진 자영업자 다중채무자의 잠재부실률은 15.9%로, 임금근로자(5.7%)의 3배였다.

개인사업자 다중채무자 추이.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문제는 이자 상환 유예와 대출 만기 연장 등 각종 금융지원 조치가 종료되는 내년 3월 말 이후다. 금융 지원 속에 가려졌던 부실이 한 번에 터질 수 있다. 신용보증기금은 올해 대신 갚아줘야 할 빚을 1조1969억원으로 전망했는데, 내년에는 2조2852억원으로 1조원 이상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신보가 대신 갚은 빚은 19년(1조5703억원), 20년(1조3594억원) 등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가계대출은 증가 속도를 완만하게 하고 있지만, 개인사업자 대출은 손도 못 대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 교수는 "가계부채를 조이는 와중에, 자영업자 대출만 풀어줄 수는 없는 상황"이라며 "자영업자 부채 연착륙을 위해 부실 대출을 솎아내는 등 옥석을 가리고 체계적인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효성 기자 hyoza@joongang.co.kr, 윤상언 기자 youn.sang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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