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도 업체도 막지 못한 현장실습생 사망..'실습폐지론' 재점화

문현경 2021. 10. 20.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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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오후 전남 여수시 웅천동 이순신 마리나에 현장실습 도중 잠수를 하다 숨진 홍정운 군을 추모하는 리본이 바람에 날리고 있다. 여수 특성화고 3학년이던 홍 군은 지난 6일 요트 바닥에 붙은 따개비를 따러 잠수했다 참변을 당했다. 연합뉴스

여수해양과학고 3학년 고(故) 홍정운 군이 요트업체에서 현장실습을 하다 숨지게 된 데에는 학교 측의 부실한 준비와 운영도 배경이 됐던 것으로 나타났다. 시키면 안 되는 잠수 작업을 시킨 업체 측의 잘못이 직접적 원인이지만, 기본적인 매뉴얼도 지키지 않은 학교의 책임도 드러나면서 '현장실습 폐지' 주장까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교육부는 홍 군 사건과 관련해 전라남도교육청·여수고용노동지청과 함께 학교와 기업체를 상대로 조사한 결과를 20일 발표했다.


업체도, 학교도 지키지않은 실습 규정


학교는 현장실습 관련 규정을 어겼다. 현장실습 운영위원회를 외부위원 없이 구성했다. 직업계고 현장실습 운영 매뉴얼에 따르면 위원회에는 교사나 학교전담노무사 등 내부 구성원뿐 아니라 객관적 판단을 위해 학부모나 산업계 사람 등 외부 위원도 들어가야 한다.

현장실습 프로그램은 실습기업과 같이 개발하고 공유해야 하는데, 학교 단독으로 개발한 뒤 기업과 공유하지 않았다. 현장실습 관리시스템(HI-FIVE·특성화고 마이스터고 전용 포털)을 통해 학생이 실습일지를 올리도록 해야 하는데 학교는 실습 시작 일주일이 지나도록 기업 등록도 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현장실습표준협약서는 업체·학생·학교 측의 도장 혹은 서명이 있었지만, 내용이 군데군데 비어 있었다. 실습 초기 적응 기간을 며칠 몇 시간으로 할지, 수당을 얼마로 할 지 등이 공란으로 돼 있었다.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교육위원회의 전라남도교육청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장석웅 전남교육감이 여수 요트업체 현장실습 중 사망한 고(故) 홍정운 군의 현장학습 프로그램 구성 및 운영계획서 자료화면을 바라보고 있다.[국회사진기자단]


근무 시간도 지켜지지 않았다. '실습 시간은 1일 7시간, 1주일 35시간을 초과하지 못한다'고 돼 있으나 조사 결과 업체는 이를 지키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업체의 가장 큰 문제는 법령상 잠수가 불가하며 실습내용에도 없고 잠수 관련 자격·면허·경험이 없는 실습생에게 잠수 작업을 시킨 것이다. 직업교육훈련 촉진법·근로기준법 시행령·산업안전보건법에서 금하는 내용이다.


"이럴거면 폐지해야" 재점화된 '실습 폐지론'


학교도 업체도 학생의 안전을 책임지고 지키지 못할 거라면 현장실습을 폐지해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은 사고가 벌어진 여수 웅천 마리나 선착장에서 19일 기자회견을 갖고 "학생들의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면 현장실습을 폐지해야 한다"면서 "안전한 기업을 교사가 찾아다니며 현장실습을 부탁해야 하고 현장실습 업체의 관리 감독을 해야 하는 구조인데 이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현장실습폐지·직업계고 교육 정상화 추진위원회도 "근본적인 정책이 나올 때까지 실습을 중단해야 한다"고 본다.

문재인 정부는 4년 전 현장실습 폐지를 고려한 바 있다. 제주의 음료 공장에서 실습하던 특성화고교생이 제품 적재기에 몸이 끼는 사고로 목숨을 잃는 일이 벌어진 뒤였다. 교육부는 2017년 12월 '조기 취업 현장실습을 2018년부터 전면 폐지한다'고 했다가 두 달 뒤 '안전 등 일정기준을 충족하는 '선도기업'에서만 현장실습을 한다'고 방침을 바꿨다. 이어 2019년부터는 선도기업이 아닌 '참여기업'에서도 현장실습생을 받도록 해 사실상 예전으로 돌아갔다. 홍 군이 일한 업체는 5인 미만 사업장으로 '참여기업'에 해당한다.

11일 오후 전남 여수시 웅천동 웅천친수공원에서 요트 현장실습 도중 잠수를 하다 숨진 여수의 한 특성화고교 3년 홍정운 군의 추모문화제가 열려 한 학생이 촛불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다만 이번에는 이전과 같은 '실습 폐지'가 벌어질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은 15일 청와대 참모회의에서 "특성화고 현장실습은 취업을 위한 상당한 연결고리가 되는데, 한 번 사고가 나면 그때마다 폐지해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하고 실제 한동안 중단된 적도 있었다"면서 "그러나 사고가 난다고 폐지해 버리는 것은 올바른 해결방법이 아니다"고 했다. 교육부는 문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현장실습 폐지는 고려하고 있지 않다.


교육부 "실습 폐지는 안해…전수조사·신고센터 개설"


특성화고등학생권리연합회·전국특성화고노동조합도 실습 폐지보다는 제도 개선을 요구한다. 조합원이자 특성화고 3학년인 신은진씨는 지난 14일 추모제에서 "코로나19로 실습처가 턱없이 부족한데 제도 자체가 사라지면 취업은 더 어려워질 것"이라며 "제도 폐지는 대안이 될 수 없고 위험한 노동 현장, 관리 감독의 부재, 지켜지지 않는 매뉴얼이 문제의 본질"이라고 했다. 특성화고등학생권리연합회는 위험 직종은 5인 미만 사업장으로의 실습을 금지할 것, 정부가 양질의 실습처 확보해줄 것, 고용노동부가 현장실습 기업체에 대한 관리·감독 대책을 마련할 것 등을 요구한다.

교육부는 이번 사건에 대한 대책으로 직업계고 현장실습 전수조사와 현장실습 신고센터 개설을 내놨다. 매년 중앙단위 현장실습 지도·점검이 있었지만 일부만 대상이었다. 실습 중 부당대우에 대해 제보할 수 있는 창구는 시·도 교육청 소속 취업지원센터를 통해 마련한다. 교육부 관계자는 "전화 혹은 이메일로 제보할 수 있도록 시·도별 연락처를 학교를 통해 안내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문현경 기자 moon.h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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