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로부부' 사랑으로 위장된 폭력들
[이준목 기자]
채널A와 SKY에서 제작한 <다시 뜨거워지고 싶은 애로부부>는 재연 드라마와 토크쇼를 결합하여 다양한 부부들의 실제 결혼생활 사연을 듣고 고민 해결책을 찾아주는 부부 솔루션 프로그램이다. 전반부의 '애로드라마'가 시청자 사연들을 토대로 과거 KBS <사랑과 전쟁>을 연상시키는 재연드라마라면, '속터뷰'는 연예인에서 셀럽-일반인까지 실제 부부들이 출연하여 갈등하는 주제에 대한 속풀이 토크를 나누는 구성이다.
어느덧 방영 1년여를 넘긴 <애로부부>는 여전히 일부 선정적인 소재와 내용에 대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실제 사연과 결혼이야기가 주는 리얼리티 그리고 자극적인 사건만 보여주는 것을 넘어서 현실적인 해결책과 대안을 모색한다는 것이 공감대를 얻고 있는 비결로 꼽힌다.
부부 솔루션 프로그램이 흔히 그렇듯이 <애로부부>에는 수많은 분노유발 사연들이 대거 등장한다. 애로드라마에 역시 불륜이나 외도와 관련된 사연이 압도적으로 높다면, '속터뷰'에서는 부부간의 성생활, 스킨십, 건강, 육아, 시댁과의 관계 등 내밀하고 현실적인 주제들이 다루어진다. 서로에 대하여 누구보다 잘 알고 가까운 부부라는 사이임에도, 솔직하게 말하기 어려워서 속앓이를 하던 내용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는 시간이다.
특히 속터뷰라는 코너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순간은, 부부라는 이유 때문에 일상에서 무의식적으로 벌어지면서도 모르고 지나치기 쉬운 '폭력'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흔히 폭력이라고 하면 물리적인 면만을 생각하기 쉽지만, 부부 생활에서 더 자주 벌어지는 가해는 언어적-정신적 폭력이 더 심각하다. 배우자의 불륜, 도박, 폭행 등은 비록 자극적이지만 대개 한 쪽의 귀책 사유가 분명하기에 옳고 그름의 판단을 내리기 쉽다. 하지만 시청자들을 가장 답답하게 만드는 사연은 대개 무관심-무성의-공감 부재에서 나오는 이기적인 언행들이 대부분이다.
▲ <다시 뜨거워지고 싶은 애로부부>의 한 장면. |
ⓒ 채널A, SKY |
방송 초창기에 출연했던 조지환-박혜민 부부는 남편이 아내에게 32시간마다 과도한 부부관계를 강요하는 사연을 고백하며 한동안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김성규-허신애 부부는 반대로 아내가 부부관계를 요구했다가 남편에게 거부당한 데 이어 여성-종교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까지 들먹이는 남편의 언행에 큰 상처를 받았던 일화를 공개하기도 했다. 역대 출연한 많은 부부들이 무의식적으로 서로에 대한 배려가 없는 성희롱-성차별적인 언행들을 수시로 일삼는 모습은 시청자들에게도 충격을 주며 우리의 부부문화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또한 지난 11일 출연한 길해정과 박단비 부부는 '스킨십'에 대한 현실적인 입장차이로 많은 공감을 자아냈다. 부부관계와 스킨십에 있어서 적극적이고 로맨틱한 남편에 비하여, 아내는 흥미가 없었고 불편해했다. 그리고 이로 인하여 벌어지는 갈등을 모두 서로의 탓으로만 전가했다.
정신과 전문의인 MC 양재진은 "남편이 노력한다는 로맨틱한 분위기는 알고보면 모두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라고 지적하며 "내 방식대로만 하는 게 아니라, 상대방이 좋아하는 걸 하는 게 '노력'이라고 하는 것"이라고 일침을 놓았다. 아내에 대해서도 "상대의 기분이나 성향에 대한 배려없이 '한판 할래' 등의 과격하고 직설적인 말투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며, 서로를 이해하기보다 자신의 입장만 내세우기 급급한 부부의 모습을 꼬집었다.
심지어 18일 출연한 트로트 가수 황유찬과 아내 박혜진 부부의 이야기는 속터뷰의 역대급 '고구마' 사연으로 시청자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아내는 24시간 자신의 곁에 붙어서 떨어지지 않으려는 남편 때문에 외출도 자유시간도 없는 일상에 답답함을 호소했다.
남편은 하루에만 아내에게 전화를 수십통 걸며 일거수일투족을 확인하는가 하면, 밤에 술에 취하여 야식을 사와서 자고있는 아내를 깨워 같이 밤을 새우게 만들고, 육아와 관계없는 외출이나 여행 등을 일절 허용하지 않았다. 아내는 남편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집안 분위기가 안 좋아져서 아이들도 눈치를 본다고 고백했다.
그러면서도 남편은 "이게 나쁘다고 생각한 적이 없고, 아내를 사랑하기 위해 한 일"이라고 자신을 정당화하며 MC들을 경악하게 했다. 또한 남편은 자신이 공황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고백하며 "아내는 또 다른 나다. 뭘 해도 같이 있고 싶다. 아내가 없으면 무슨 일 있는 것 아닌가 싶고 걱정이 된다"며 아내에게 집착하는 모습을 보였다.
정작 아내는 심각한 스트레스 때문에 우울증이 우려되는 증상까지 보이고 있었다. 그동안 부부들의 다양한 고민을 상담해왔던 MC들도 이번에는 모두 웃음기를 잃고 분위기가 심각해졌다.
양재진은 정색하며 "남편은 본인이 자상하다고 착각하고 있는데 굉장히 '폭력적인 행동'이다. 정말 아내를 위한 행동인지 '나를 위한 행동'인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웃으면서 부드럽게 이야기하니까 헷갈릴 수 있지만 남편은 사실 '통제욕구'가 굉장히 강한 사람이다. 남편은 지금 본인이 견디지 못하는 불안감을 아내에게 쏟아내고 있는 것"이라고 일침을 놓으며 의심과 불안이 많은 남편의 강박적인 성향에 심각한 우려를 표시했다.
MC들은 만장일치로 아내의 손을 들어줬지만, 속터뷰 이후의 인터뷰에서도 아내는 달라진 게 없다고 고백했다. 남편은 육아를 핑계로 "아이가 크면 자유시간을 주겠다"고 답하며 아내를 여전히 자신의 소유물처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지 않아 시청자들의 분노를 자아냈다.
이런 사연들은 우리 현실에서 생각보다 더 가깝고 빈번하게 발생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다. 타인 대 타인간의 인간관계에서 벌어지는 문제들은 사태를 객관화하고 선을 긋는 게 쉽지만, 가족이자 부부라는 사이는 어쩌면 너무 가깝기에 더 배려가 부족하고 서로에게 치명상을 안기기도 쉽다.
남들이 보기에는 지극히 작은 성향의 차이일 수도 있고, 그저 사랑의 표현방식 혹은 배부른 고민처럼 가볍게 취급되는 문제들도, 정작 그로 인하여 피해를 입는 당사자들에게는 말 못할 상처와 고통을 안겨줄 수도 있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더 배려와 존중이 필요한 이유를 다시 한번 돌아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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