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종선의 배우발견⑧] 공들이면 빛이 난다, 준비된 배우들(갯마을 차차차)

홍종선 2021. 10. 20.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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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현장사진. 기분 좋아서 흥겨운 '차차차' 춤이라도 한 번~ ⓒ이하 tvN제공

사실 배우 김선호가 유입 창구였다,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연출 유제원, 극본 신하은)를 보기 시작한 건. 그동안 연기 잘한 드라마가 많았지만, 확고부동한 주연에 로맨스 장르이니 연출과 촬영, 각 분야의 스태프가 얼마나 멋지게 잡아줄지 기대했다. 확실하게 설렐 준비가 돼 있었다.


어라?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나는 홍 반장이 뽀얗게 잘생긴 건 사실인데, 김주혁 주연의 영화에 비해 홍 반장을 받쳐 주는 인물이 많다. 배우와 인물이 하나가 된, 탄탄한 연기력에 능청스럽기 그지없게 ‘공진 삘(feel, 느낌)’ 폴폴 내며 드라마에 생생한 공기를 채운 배우들. 그들이 너무 사랑스러워 자꾸만 드라마를 넷플릭스에서 클릭했다.


내 마음대로 ‘공진져스’라 부르는 배우들, 다른 작품에서 다시 만나게 될 터인데도 떠나보내기 아쉬운 건 그들이 탄생시킨 정감 깊고 따뜻한 인물들 때문이다. ‘캐릭터 탐구’ 코너로 소개해야 할지 ‘배우발견’으로 쓰는 게 맞는지 고심했는데, 같은 극본에 같은 인물이었어도 이 배우들이 생명력을 불어넣었기에 사랑하게 됐으므로 후자를 선택했다.


그가 알면 공진 전체가 안다. 조남숙 역의 배우 차청화 ⓒ

가장 눈길을 뺏긴 배우는 차청화다. 다양한 작품에서의 감초 역할 덕에 통통 튀는 공처럼 탄력성 좋고 어떤 모습도 소화 가능한 배우인 것은 익히 알려 왔지만, 동네방네 소문 퍼뜨리는 확성기이자 ‘공진의 EETV’ 조남숙이 결코 흉하게 보이지 않은 건 차청화 배우가 지닌 자체발광 매력 덕이다.


개성 넘치지만 어떤 작품, 어느 장면에도 녹아들 줄 알고 매 장면 표정과 몸짓, 의상과 헤어스타일에 과장이 있어도 작품에 해가 되기는커녕 보탬이 되는 배우. 톡 쏘는 와사비 같은 색과 맛 덕에 행복했다.


5통 통장 여화정 역의 배우 이봉련 ⓒ

마음을 홀딱 뺏긴 배우는 이봉련이다. 차청화 배우처럼 지난 2005년 데뷔했는데 연극계에서는 ‘햄릿’으로 백상예술대상에서 여자연기상을 바로 올해 받을 만큼 인정받고 있지만, 드라마와 영화에서는 지난 10년 이렇다 할 배역을 받지 못했다. 물론 주인공의 언니로 또 친구로, 퇴직한 회사 선배로 등장해 짧은 등장에도 ‘오, 내공 대단한데’라는 생각이 들게 잘했지만. 역으로 그 내공에 비해 맡겨지는 역이 작아 그의 연기를 더 보고 싶은 ‘갈증’이 일기도 했다.


드라마 ‘내일 그대와’(연출 유제원, 극본 허성혜)를 함께했던 유제원 감독이 이봉련을 믿고 공진마을 5통 통장, 속정 깊고 무게감 있으면서도 부끄럼 타는 여화정을 맡겼고 완벽하게 해냈다.


여화정이라는 이름을 기억하게 된 것에는 배우 이봉련이 통장으로서, 이준이(기은유 분) 엄마로서 잘한 것도 있지만 전 남편 장영국 역의 인교진 배우와 환상의 호흡을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현실 이혼 부부이자 소꿉친구의 애증을 두 배우가 담백하게 잘 보여줬다.


화정의 전 남편, 동장 장영국 역의 배우 인교진 ⓒ

가장 놀란 배우는 바로 그 인교진이다. 드라마를 보면서 ‘설마, 인교진?’, 눈을 의심하며 출연진 검색을 했을 정도다. 솔직히 배우 인교진에게 사과해야 할 만큼, 이렇게 연기를 잘하는지 몰랐다. 그저 반듯하게 잘생긴 연기자, 현실 ‘딸 바보’에 육아와 가사노동을 분담하는 좋은 남편으로만 여겼나 보다.


‘엄지척’을 하게 된 이유는 잘생긴 얼굴이 가려질 만큼 내려놓고 연기를 해서도 아니고, 아들 사랑은 가득한데 눈치는 부족한 인물로 매회 크고 작은 웃음을 줘서도 아니다. 코미디 연기를 하는 게 아니라 장영국 캐릭터를 정확히 인식하고 반 숟가락 모자란 듯 선량하고 우직한 공진의 사내를 표현했고, 그것이 자연스레 웃음을 주었다는 사실이다. 영민한 캐릭터 이해이고, ‘나는 정극 연기를 하는데 웃음이 만들어지는’ 보기 좋은 희극 연기를 우리에게 선물했다.


'공블리' 배우 공민정 ⓒ

가장 사랑스러운 배우는 공민정이다. 어른 나이에 아이 같은 미소를 지닌 그가 한없이 귀엽고, 개구쟁이 같은 솔직한 표정이 연기에 현실감을 부여한다. 연기가 아니라 그냥 내 친구랑 수다 떠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말할 줄 아는 재능, 카메라 앞에서 들키지 않고 예쁜 척할 줄 아는 센스가 좋다.


자신이 연기 잘하는 것도 알고 있음에 틀림이 없다. 까칠하고 도회적인 ‘치과’ 윤혜진(신민아 분)의 유일한 친구 표미선, ‘여신’이라 불리는 신민아에 조금도 기울지 않게 동등해 보여야 하는데 그것도 조연이면서 주연과 대등해 보여야 하는데 자신만만하다. 영화에서나 TV 드라마에서나 통하는 공민정의 딕션은 칭찬받아 마땅하다.

감리 씨♡ 배우 김영옥 ⓒ

존경심이 절로 이는 배우는 김영옥이다. 독립운동가의 후손으로 태극기 건곤감리에서 이름을 딴, 홍 반장이 ‘감리 씨’라 부르는 김감리 여사를 연기했는데 그냥 그 인물 같다. 반세기 뒤에 태어난 김선호와의 연기 호흡이 찰떡이고, 사라져가는 옛날 강원도 사투리 연기도 인상 깊다.


무엇보다 공진 최고의 어른으로서 극에 무게중심 역할을 톡톡히 했다. 욕쟁이 할머니 연기보다 좋고, 가수 임영웅이 좋아 진심 설레는 모습도 보기 좋지만 역시 배우일 때 카리스마 있다. 85세에도 변함없이 제 자리를 지킬 수 있다는 것, 다사다난 사건 사고가 잦은 후배들이 본받아야 할 덕목이다.


공진의 히어로 분들. 가족처럼 보이는 느낌이 드라마에 고스란히 담겼다 ⓒ

‘감칠맛’ 배우들을 빼놓을 수 없다. ‘가요톱10’ 2위를 자랑하는 가수이자 ‘한낮엔 커피, 달밤엔 맥주’ 카페 사장님으로 이주민이면서도 공진 사람처럼 보이는 ‘딸 바보’ 오춘재 역의 조한철, 홍 반장의 절친으로 가장 ‘공진스러운 사내’ 최금철 역의 ‘뽀글머리’ 윤석현, 마트 사장님이 이렇게 예뻐도 되나 싶은 미모의 임신부이자 멋진 출산 장면을 연기해낸 함윤경(금철 씨 아내) 역의 김주연, 인형이 마을을 거니는 것처럼 곱게 생겨서는 성소수자 문제를 화두에 올리는 중요한 역할을 한 유초희 역의 홍지희, 그리고 헐렁해 보여 웃는 일만 잘할 것 같아도 손만 대면 대박을 일구는 예능 PD이자 내 남자친구 내 사위 삼고 싶은 서글한 인상에 ‘꿀성대’를 지녀놓고도 사랑에 한 발 늦는 지성현 역의 이상이….


아! 오주리 역의 김민서, 최보라 역의 고도연, 장이준 역의 기은유, 공진마을에 눈 부신 햇살을 비춘 어린이 배우도 있다. 또 느릿하고 순수한 모습으로 미선의 마음을 뺏은 최은철 경장 역의 강형석, 성현에게 마음을 뺏겨 7년의 시간을 기다린 왕지원 작가 역의 박예영, 현실 ‘조연출’로 보이는 자연스러운 연기와 홍 반장와 반전 과거사를 지닌 김도하 역의 이석형… 얘기하자면 끝이 없게 제 몫을 톡톡히 해낸 공빈 어벤져스 배우들. 더 많은 사연을 나눌 캐릭터로 좋은 작품에서 다시 만나기를 기대하면서 한마디만 하고 싶다.


준비된 배우는 역시 기회가 오면 잡는다. 기회를 잡은 배우들이 숱한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 많은 배우에게 기회를 준 ‘갯마을 차차차’. 악당이 없어도 드라마가 잘될 수 있음을 알린 선례로 남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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