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주인공, 고향이 배경.. 9년에 걸쳐 완성한 영화
[김성호 기자]
▲ 사상 포스터 |
ⓒ (주)시네마달 |
누군가는 기록해야 하는 이야기가 있다. 시간이 흘러 기억하는 이들이 사라지면 누구도 지나간 역사를, 짓밟힌 이들의 사연을 떠올리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라진 기억은 소실된 역사가 되고 역사의 소실은 사회를 더 불행하게 만든다.
용산참사 현장엔 센트럴파크타워가 들어섰다. 청계천 복원사업으로 밀려난 이들이 자리 잡았던 동대문운동장 자리엔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가 세워진 지 오래다. 오늘날 센트럴파크타워와 DDP를 지나는 이들 중 누가 용산참사 희생자와 밀려난 상인들을 기억하는가. 아무리 많이 잡아도 열에 하나가 채 되지 않을 것이다. 소란한 보도가 지나간 자리에 역사는 과연 충실히 기록되었을까.
▲ 사상 스틸컷 |
ⓒ (주)시네마달 |
모래 위에 세워진 터전
여기 부산 사상공단 재개발지구의 이야기가 있다. 하천 퇴적지 모래 위에 세워진 사상지구는 1970년대 들어 대규모 공단이 들어서며 부산을 대표하는 공업지구로 거듭났다. 대도시에서 수요가 많은 주물업체가 입주공장의 다수를 이뤘다. 확고한 산업이 있으니 꾸준히 돈이 돌았고 상가와 입주단지도 형성됐다.
영화는 사상공단 개발 50여 년이 흐른 뒤 사상구와 인접한 북구 만덕지구의 재개발을 둘러싼 이야기를 담았다. 사상공단과 만덕지구 모두 재개발 조합이 원주민들에게 감정가를 제시하고 철거를 압박한다. 재개발지구 지정부터 감정가 지급까지 적법한 절차를 지켰기에 공권력은 철거민을 보호하지 않는다. 제시받은 금액이 시세보다 턱없이 낮다며 저항하는 이들은 건물 옥상에 망루를 설치해 투쟁에 나선다.
▲ 사상 스틸컷 |
ⓒ (주)시네마달 |
제 아버지를 주인공 삼아
주인공은 둘이다. 하나는 박배일 감독의 아버지 박성희씨다. 사상공단에서 30년 넘게 일한 공장 노동자, 그는 산업재해로 손가락까지 잃은 처지다. 가진 것도 배운 것도 없이 맨주먹으로 시작해 아들자식을 길러냈으니 그것을 성공으로 불러야 할까. 그와 가족이 오랫동안 살았을 작은 집도 곧 철거를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또 다른 주인공은 사상과 인접한 북구 만덕5지구 보상공동대책위 대표 최수영씨다. 망루를 지키며 공권력에 대항하는 최씨는 곁에서 지켜보기 위태로울 만큼 절박해 보인다. 깊은 우울과 외로움을 딛고 망루 위에 오른 그의 의지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조금씩 흩어지는 것만 같다.
▲ 사상 스틸컷 |
ⓒ (주)시네마달 |
9년 뒤 사상의 사람들은 어떻게 변했을까
9년을 건너 사상과 북구 만덕의 재개발이 어떤 결말을 맞이했는지는 그곳의 현재를 보면 누구나 쉽게 예상할 수 있다. 고층빌딩과 아파트가 들어선 도시, 그러나 그곳이 개발되기 전 살았던 사람들의 오늘은 어떠할까. 바로 이것이 영화와 영화를 보는 이들의 가장 큰 관심이 될 것이다.
다만 철거민의 현실에 비해 이들을 압박하는 자본의 얼굴을 가까이 다가가 촬영하지 않았다는 점이 아쉽다. 서병수 전 부산시장과 LH관계자의 짧은 출연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이들이 어떤 역할을 했으며 철거대상자들에게 어떤 보상이 주어졌는지를 관객에게도 가감 없이 내보였어야 했을 것이다.
그로부터 관객 스스로가 자신이 사는 세상의 자본이 인간을 어떻게 대우하는지를 정확히 판단할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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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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