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아! 오징어 게임

입력 2021. 10. 20. 00:52 수정 2021. 10. 20.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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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한국 웹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세계적 선풍이 뜨겁다. 지구촌 작은 마을의 어른과 아이들도 곳곳에서 동참한다. 21세기 한국문화의 한 개가가 아닐 수 없다.

최근들어 우리 문화의 세계 진출은 눈부신 단계를 넘어 어느덧 일상이 된듯하다. 놀랄만한 성취에도 전혀 놀라지 않는 매우 놀라운 상황이 우리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가수 방탄소년단(BTS)의 세계적 인기, 영화 ‘기생충’의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 윤여정 배우의 아카데미 조연상을 비롯해 K-pop과 한식과 드라마를 포함한 한류 열풍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다. 문화에 앞서 경제와 기술의 반도체·스마트폰·자동차·배터리·TV·가전·조선·철강·원전·석유화학 부문의 한국 기술과 제품들은 이미 세계시장을 장악하였거나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 모든 일들이 전후의 짧은 시간에 이루어진 것임을 고려한다면 하나의 기적적 성취임이 분명하다. 한국인들은 분명 땀의 응축과 폭발, 시간의 집중과 압축, 비동시적 꿈의 동시적 성취에서는 달인들이 아닌가 싶다.

「 ‘오징어 게임’ 성공과 내용 충격적
집단적 데스 게임은 한국적 실존
공정한 정치와 제도가 최고 해법
사람이 고귀한 보석 같은 나라로

그러나, 문제는 전체가 다가 아니라는 점이다. 개인을 보지 않으면 절대 안된다. ‘오징어 게임’도 성취를 가능하게 한 속살을 보면 얘기는 전혀 달라진다. 무릇 예술과 문화는 현실을 초월하기보다는 현실을 반영할 때 의미가 더 뚜렷하다. 그럴 때, ‘오징어 게임’의 성공을 담보한 그 내용-극의 구도·전개·반전·귀결을 포함하여-은 가히 충격적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건 데스 게임에 내몰릴 정도로, 아니 스스로 데스 게임을 선택할 정도로 극한 상황에 놓여있는 우리의 이 현실 말이다. 그리고 바로 한국의 실제 현실을 형상화한 그 내용 때문에 온 세계가 열광한다는 점이야말로 우리를 한없이 착잡하게 한다. 이 사회의 실제 단면을 그려낸 ‘기생충’도 ‘아수라’도 마찬가지다. 현실은 극보다 더욱 극적이다. 작품들 속의 사건과 장면과 게임들은 한국사회 현실의 가감 없는 표출이기 때문이다.

차라리 ‘오징어 게임’이라도 참여하고 싶었을 숱한 사람들의 최후 선택, 즉 한국사회의 세계 최장·최고·최악 수준의 자살율은 이제 더 이상 강조하기조차 무섭다. 같은 세계 최장·최저·최악 수준의 출산율은 또 어떤가.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0점(點) 대 출산율을 세계 최초로 실현한 데 이어 계속 지옥 아래로 행진 중이다.

쌍둥이 악의 금메달을 내려놓을 줄 모르는 이 나라는, 학교가, 마을이, 지방이 가파르게 소멸되어가고 있는데도 반성도 변화도 없다. 길은 전체 모든 이들 각각의 문제를 함께 해결하는 정치의 공정성에 있다. 개인들이 데스 게임을 선택하지 않고도 살만한, 공정한 나라가 먼저다. 인류의 한 선현은 “칼로 사람을 죽이는 것과 정치로 사람을 죽이는 것은 다른 점이 없다(殺人以刃與政, 有以異乎? 無以異也)”고 말한다. 민주화 이후 자살 집합통계가 한국전쟁시 전투사망자를 단연 압도한다는 점만 말하고자 한다. 그게 우리 민주주의의 한 모습이다.

청년·노인·약자들에게는 ‘오징어 게임’ 이전에 한국에서의 생존 자체가 데스 게임인지 모른다. 아직 젊은 20대들의 자산 격차는 상·하위 20%가 물경 35배에 달한다. 세월호 생명망실을 계기로 생명 존중을 약속했음에도 불구하고 해상사고 건수와 사망자수는 훨씬 늘었다.(박근혜 정부 4년 총 1823명, 연평균 456명. 문재인 정부 4년 총 2078명, 연평균 520명.) 후자는 세월호 사고가 없었음을 고려하면 이 폭증은 놀랍다.

정치가 공정하지 않으면 다른 건 공정할 수가 없다. 정치가 나라의 법과 규칙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민주공화국 개념과 제도를 만든 지혜들이 일치하여 강조한 점이다. 공정은 곧 비례를 말한다. 그럴 때 실제 득표=민의와 배치되는 권력독점과 승자독식에 비추어, 한국의 제왕적 대통령제와 대통령 선거는 절대 불공정에 근접하는, 선진 민주국가 중 최악의 불공정 사례에 속한다. 이 제도와 과정의 혁파없는 공정 담론은 만사가 허구다.

공정성을 위해 연동성과 다당제와 비례성을 높이겠다고 공언한 의회선거제도 개혁은 대통령 선거 만큼이나 불공정한 제도로 개악되었다. 민주국가 초유의 위성정당 설립을 포함하여 현재 제1당은 득표율과 의석율 격차에서 민주화 이후 압도적인 최악의 불공정을 기록한 결과다. 민의의 불공정한 왜곡으로 거대 양당의 의석 점유율 역시 민주화 이후 최대다.

한 사람 한 사람을 대표하는 선거와 정치의 지표들이 불공정 자체인데, 모든 사람을 위한 공정한 경쟁과 교육, 경제와 사회를 만들겠다고? 인류의 역사에 비추어 그건 절대로 불가능하다. ‘오징어 게임’이 보여준 참혹한 데스 게임을 종식시키려면 나라의 근본 틀을 먼저 바꾸어야한다.

‘오징어 게임2’는 ‘오징어 게임1’과는 정반대의 내용을 담을 수 있도록 해보자. 그리하여, 노벨문학상을 받은 펄 벅이 가장 사랑한 한국을 다룬 대작 『살아있는 갈대』에서 두 번이나 감동적으로 언급한, 한국을 ‘고귀한 사람들이 사는 보석같은 나라’ ‘지구상의 보물같은 나라’로 만들어보자. 사람이 고귀하지 않다면 나라는 결코 보석일 수가 없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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