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도 능멸했던 야쿠자, 지금은 손가락 9개로 우동 삶는다
일본 기타규슈(北九州)의 한 작은 상점가 뒷골목에 있는 작은 우동집 다루마야엔 특별한 사연이 있다. 13명이 겨우 앉을 수 있는 작은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서면 ”이럇샤이(어서옵쇼)“라고 우렁차게 외치는 주인장, 나카모토 다카시가 사연의 주인공.
무뚝뚝하지만 면을 반죽하고 삶아내는 그의 표정은 진지하다. 워싱턴포스트(WP)가 18일 보도한 기사의 동영상 속 그의 손가락은 모두 9개. 야쿠자로 활동하면서 새끼손가락 하나를 잃었기 때문이다. 만 55세인 나카모토가 손을 씻은, 그러니까 야쿠자 세계를 떠난 건 6년 전, 복역 후 출소한 해였다. 그는 WP에 “조직을 위해서라면 죽는 것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생각하며 수십년을 살아왔다”며 “평범한 사회에서 살아나가기로 결정한 뒤엔 마음의 기어를 완전히 바꿨다“고 말했다.
나카모토가 10대 시절부터 몸담았던 조직은 일본을 대표하는 야쿠자 중 하나인 구도카이(工藤會)였다. 구도카이는 기타규슈를 기반으로 한 일본을 대표하는 야쿠자 조직이지만, 최근 몇 년 사이 세가 급격히 줄었다. WP가 보도한 일본 정부 통계에 따르면 10년 전인 2011년 당시만 해도 야쿠자 조직원 숫자는 7만300명에 달했지만 2020년 같은 통계에선 2만5900명으로 36% 수준으로 줄었다. 일본 정부의 대대적인 야쿠자 단속이 한몫을 했다는 게 WP의 분석이다.
지난 8월 일본 재판부가 구도카이의 보스인 노무라 사토루(野村悟ㆍ74)에게 사형을 선고한 것이 대표적이다. NHK등 일본 매체들은 당시 “야쿠자 보스에게 사형이 선고된 것은 처음”이라고 보도했다. 노무라는 당시 재판정에서 “판사 양반, 당신 평생 후회할 거야”라며 난동을 부렸지만 소용 없었다.
야쿠자의 세가 약화하면서 전직 야쿠자들의 갱생을 돕는 컨설턴트까지 생겼다고 WP는 보도했다. 2011년 야쿠자 조직에서 탈퇴한 나카미조 모토히사가 대표적이다. 그 자신은 그의 집안이 하는 부동산 회사에 취직할 수 있었지만 전직 동료들은 그렇지 못한 걸 보고 도움을 주기로 마음 먹었다고 한다. 일본 정부는 전직 야쿠자에겐 5년 간 은행 계좌를 열거나 핸드폰을 개통하고 월세 계약을 하는 것 자체를 금지한다고 WP는 보도했다. 야쿠자 조직 입회 자체를 막기 위한 정책이지만 손을 씻으려는 마음을 먹은 이들에겐 갱생의 방해물이다. 경찰에 자수를 하고 손을 씻은 야쿠자 중 다른 직업을 얻고 살아가는 비율은 3%에 불과하다고 야쿠자 전문가인 히로스에 노보루(廣末登)는 WP에 말했다.
나카미조는 WP에 “남들은 ‘제로부터 다시 시작한다’고 하지만 우리는 ‘마이너스부터 다시 시작이다’라고 말해야 한다”고 전했다. 나카미조 역시 뾰족한 수는 없이, 딱한 사정의 전직 동료들에게 자신이 다니는 부동산 기업의 일자리를 주선하는 식으로 컨설팅 활동을 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기에 우동 가게 사장 나카모토가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그의 스토리는 일본에서 『야쿠자 간부를 그만두고 우동 가게를 시작했습니다』라는 제목의 책으로도 소개됐다. 책을 쓴 야쿠자 전문가인 히로스에는 WP에 “50대가 되어 손을 씻고 새출발하는 경우는 드물다”며 “야쿠자로서의 나카모토라는 정체성을 완전히 버리고 가난하지만 성실히 하루하루 살아가는 평범한 시민 나카모토로 다시 태어난 셈”이라고 말했다. 나카모토는 2018년엔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야쿠자라는 건 단순한 직업이 아니라 살아가는 하나의 방식이며, 나는 10대부터 야쿠자가 될 운명이라고 생각했다”라며 “하지만 복역하면서 내 삶의 의미를 곱씹었고, 늦었지만 새출발을 하기로 맘먹었다”고 말했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우선 상점가 주민들의 동의를 얻어야 했는데, 전직 야쿠자가 우동집을 하겠다는 걸 믿는 이는 없었다. 나카모토는 가디언에 “매일 묵묵히 상점가를 청소하고 동료 상인들에게 인사를 건넸다”며 “내가 먼저 마음을 열고 고개를 숙이니 몇 년이 지나서 그들도 마음을 열고 나를 받아주더라”고 말했다.
나카미조는 WP에 “야쿠자에 대한 사회적 이미지는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이들에게 갱생의 기회를 한 번이라도 사회가 줬으면 좋겠다”며 “갱생의 기회조차 없다면 이들은 결국 갈 곳을 잃고 더욱 나쁜 길로 빠져들 것”이라고 말했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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