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 인간 전성시대..'로지' 모델 수입 10억 돌파 광고계 블루칩 등극

박수호, 김기진 2021. 10. 19.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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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업계 대형 신인 등장’.

가상 인간(virtual human) 인플루언서 ‘로지’를 두고 하는 말이다. 올해 8월 로지는 신한라이프 광고 모델로 등장, 진짜 사람이 아닌 가상 인간 모델로 주목받으며 큰 화제를 모았다. 지금은 대형 광고주의 러브콜을 잇따라 받으며 모델 수입만 10억원을 넘길 정도로 인기다. 최근 로지는 골프 열풍에 발맞춰 슈페리어그룹이 MZ세대(1980~2000년대 초에 태어난 세대)를 겨냥해 만든 골프 브랜드 ‘마틴골프’의 새 모델로 발탁돼 눈길을 끌었다. 인스타그램 계정에 ‘마틴골프’ 옷을 입고 필드에 나간 이미지를 올렸는데 ‘좋아요’ 수만 1만2000개를 받으면서 관심을 모았다. 로지와 같은 가상 인간이 광고계는 물론 대기업 홍보대사, 쇼호스트 등으로 속속 등장하면서 관심이 폭발하고 있다.

신한라이프 광고에 모델로 등장한 ‘로지(일러스트 속 모델)’가 대박을 터뜨리며 가상 인간 시장에 관심이 집중된다. 사진은 김주하 MBN 앵커(사진 왼쪽)와 MBN이 활용 중인 김주하 AI 앵커(사진 오른쪽). <MBN 제공>, 펄스나인이 선보인 가상 인간 걸그룹 ‘이터니티’. <넵튠 제공>

▶가상 인간 인기 왜?

▷실감 나는 외모에 소통도 활발

국내 시장에서 가상 인간은 사실 새로운 트렌드는 아니다. 1998년 등장했던 가상 인간 ‘아담’은 히트곡 ‘제네시스(genesis)’로 인기몰이를 하면서 광고 모델로도 활동했다. 다만 2집 발표 후 활동이 뜸해지다 홀연히 사라졌다. 이후 한동안 가상 인간은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다 20여년 만에 다시 불고 있는 가상 인간 바람은 이전과는 양상이 좀 다르다. 실감 나는 외모를 갖추고 대중과 적극 소통하며 다양한 분야에서 종횡무진 모습을 드러낸다. 로지처럼 일부 가상 인간은 ‘일회성’ 인기를 넘어 ‘롱런’ 조짐을 보이고 있다.

장성철 성신여대 생활문화소비자학과 교수는 “1990년대 말 아담이 활동할 때는 3D 기술이 발달하지 못해 현실성이 떨어져 보인다는 평이 많았다. 게다가 팬들과 소통도 더뎠다. 지금 양상은 다르다. IT 기술 발전으로 영상 속에서만큼은 실제 인간 모델과 이질감이 크지 않을 정도로 실감 나게 활동하고 있다. 또 연설, 쇼핑, 일상생활 등 다양한 활동을 보여주며 실생활 속 주변인과 같은 친숙한 이미지를 주기 때문에 계속 주목받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엔터, 광고업계에서는 가상 인간 인플루언서의 등장이 반갑다. 무엇보다 사생활 문제가 거의 없고 늙지 않고 체력적인 한계도 없다. 하루에도 동시에 서너 곳에서 광고, TV 촬영 스케줄을 진행할 수 있어 효율성, 생산성 면에서도 좋다. 아이돌이나 배우 양성을 위해 들여야 할 시간과 비용을 아낄 수 있다는 점도 장점으로 꼽힌다. 사이버 가수 아담을 만든 회사에서 홍보팀장으로 근무했던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소비 시장 주축으로 떠오른 MZ세대는 IT 활용도가 높고 가상 공간에 익숙해 가상 인간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인다. 기업 입장에서는 스캔들로부터 자유롭고 모델, 가수, 배우 등 다양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어 매력적인 선택지”라고 설명했다.

▶해외에서는 이미 대세

▷릴 미켈라 인스타 폴로어 300만명

가상 인간은 해외에서는 이미 대세로 자리 잡았다. 릴 미켈라는 시장을 선도하는 대표 가상 인플루언서다.

릴 미켈라는 현존하는 가상 인간 중 가장 높은 몸값을 자랑하는 모델이자 뮤지션이다. 19세로 미국 LA에 거주하는 것으로 설정돼 있는 그는 컴퓨터가 구현한 완벽한 외모와는 거리가 멀다. 주근깨 가득한, 주변에서도 볼 법한 외모다. 그래서 팬들이 오히려 더 친근감을 느낀다는 후문이다. BMW 미니 전기차 모델로 나서는가 하면 다양한 신곡을 선보이는 등 전천후 스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올해 10월 기준 인스타그램 300만여 폴로어를 자랑하는 메가 인플루언서다. 지난해 기준 미켈라가 올린 수입은 광고 포함 약 13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삼성전자가 2019년 릴 미켈라를 마케팅 모델로 기용하기도 했다.

영국 가상 모델 ‘슈두’도 빼놓을 수 없다. 2018년 프랑스 패션 브랜드 발망(Balmain)의 가을 컬렉션에서 모델로 등장하면서 주류 모델로 자리매김했다.

아시아에서는 일본 ‘이마’가 지난해 뜨기 시작했다. 이케아가 도쿄 매장을 내면서 메인 모델이 됐고 이케아 하라주쿠 매장에서 3일 동안 먹고 자며 요가하고 청소하는 일상 영상이 유튜브에 공개돼 큰 호응을 얻기도 했다. 지난해 이마의 몸값(광고 수입 포함)은 7억원을 넘긴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에서는 ‘화즈빙’이 인기다. 칭화대 컴퓨터학과와 베이징즈위안인공지능연구원(BAAI), AI 기업 즈푸와 샤오빙이 공동으로 작업해 만들었다. 6월 칭화대에 입학한 새내기라는 콘셉트를 내세웠다. 화즈빙이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동영상은 한때 틱톡 인기 순위 1위에 올랐을 정도로 이슈가 됐다.

딥스튜디오가 제작한 가상 아이돌 연습생 정세진(좌). 스마일게이트가 디지털 연예인으로 육성 중인 한유아(우). <넵튠, 스마일게이트 제공>

▶국내에서도 각광받기 시작

▷로지뿐 아니다…루이, 김래아 맹활약

국내에서도 가상 인간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추세다. 콘텐츠·엔터, 게임, 언론 등 다양한 업계에서 가상 인간이 등장하고 있다.

콘텐츠·엔터업계에서는 뉴미디어 콘텐츠 제작사 디오비스튜디오가 눈에 띈다. 지난해 10월 버추얼 휴먼 ‘루이’를 선보였다. 루이는 한국새생명복지재단 홍보대사, 한국관광공사 글로벌 SNS 기자단 명예홍보대사로 임명됐는가 하면 가구 브랜드 생활지음 모델로도 발탁됐다. CJ온스타일이 보유한 패션 자체 브랜드(PB) 더엣지와 컬래버레이션 동영상을 만들기도 했다. CJ ENM 역시 최근 3D 콘텐츠 제작 스튜디오 에이펀인터렉티브와 전략적 사업 제휴를 맺고 디지털 가상 인간을 개발해 글로벌 시장에 내놓겠다고 선언했다.

게임업계에서는 스마일게이트, 카카오게임즈 자회사 넵튠이 가상 인간에 관심을 보인다. 스마일게이트는 자사 가상현실(VR) 게임 ‘포커스 온 유’ 주인공 한유아를 디지털 연예인으로 육성한다. 스마일게이트 측은 “연기, 음반 발매 등 다양한 활동을 계획하고 있다. 유명 브랜드와 컬래버레이션도 추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넵튠은 지난해 11월 버추얼 휴먼 개발사 온마인드를 자회사로 편입했다. 온마인드는 유니티 엔진으로 제작한 디지털 휴먼 ‘수아’를 보유했다. 유니티코리아 홍보대사로 활동한 이력이 있다.

넵튠은 올해 8월에는 케이팝 디지털 아이돌을 키우는 AI 기업 딥스튜디오와 펄스나인 지분을 사들였다. 딥스튜디오는 가상 인간 정세진을 연습생으로 뒀다. 아직 본격 데뷔하지는 못했다. 펄스나인은 ‘이터니티’라는 디지털 케이팝 걸그룹을 만들었다. 지난 3월 이터니티는 펄스나인 유튜브 채널에 노래 ‘아임리얼(I'm Real)’ 뮤직비디오를 공개하며 활동을 시작했다. 8월 말에는 신곡 ‘노필터’ 뮤직비디오를 선보였다. 10월 13일 기준 조회 수 150만회를 넘어서며 인기몰이에 한창이다.

넷마블 역시 가상 인간 시장에 발을 들이기 위해 채비에 나섰다. 넷마블 개발 자회사 넷마블에프앤씨가 8월 말 자회사 ‘메타버스엔터테인먼트’를 설립했다. 버추얼 아이돌 매니지먼트, VR 플랫폼 개발 사업 등을 추진한다.

IT업계에서는 LG전자가 ‘CES 2021’에서 가상 모델 ‘김래아’를 내놨다. ‘미래에서 온 아이’라는 뜻을 담은 이름이다. 김래아는 전시회에서 LG전자 제품을 유창한 영어로 소개했다.

유통업계에서는 롯데홈쇼핑 전속 가상 인간 ‘루시’가 눈에 띈다. 루시는 롯데홈쇼핑이 e커머스 스타트업 스타일셀러와 손잡고 주얼리 전문 브랜드 OST의 100면 커팅 시뮬렛 다이아몬드 목걸이 3종을 판매할 때 직접 모델로 나섰다. 루시의 인스타그램 폴로어 수는 2만명을 훌쩍 넘기며 유통업계 새로운 판매 채널이자 모델 활용 사례로 회자되고 있다.

언론 분야에서는 MBN이 돋보인다. MBN은 지난해 9월 김주하 앵커를 본떠 만든 AI 앵커를 온라인 뉴스에 활용하기 시작했다. 이후 지난해 11월에는 방송에도 도입했다. 국내 언론업계 최초 AI 앵커로 MBN과 AI 전문업체 딥브레인AI(옛 머니브레인)가 함께 개발했다.

AI 앵커를 활용하면 방송에 투입되는 시간과 인력을 최소화할 수 있다. 재난 사태 등 긴급 상황에서 신속하게 뉴스를 보도할 수 있고 24시간 공백 없는 진행이 가능하다는 것도 장점이다. MBN 외에는 여수MBC가 10월 5일부터 뉴스, 날씨 보도에 가상 인간을 도입했다.

▶가상 인간 안착할까

▷메타버스와 동반 성장 기대

업계 안팎에서는 가상 인간 시장이 당분간 성장세를 이어갈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본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2020년 인간 인플루언서 시장 규모가 7조6000억원, 가상 인간은 2조4000억원 규모였다. 2025년이 되면 가상 인간이 14조원을 기록하며 실제 인간 인플루언서(13조원)를 추월할 것으로 예상된다. 아직까지는 광고나 뮤직비디오를 비롯해 길이가 짧은 콘텐츠에 주로 활용되지만 앞으로는 드라마나 영화 등 긴 콘텐츠에도 등장할 가능성이 크다. 상담이나 강연 등 마케팅·엔터 이외 분야에서도 활약하며 영역을 넓혀갈 것으로 보인다. 일례로 신한은행은 최근 AI 가상 인간 전문기업 마인즈랩과 손잡고 AI 은행원 서비스를 일부 매장에서 제공하기 시작했다.

김상균 강원대 산업공학과(책 ‘메타버스’ 저자) 교수는 “과거에 비해 가상 인간 제작 비용이 저렴해졌고 소통에도 무리가 없는 수준에 도달했다. 활용 가능한 분야는 무궁무진하다. 메타버스 시장이 성장하면서 가상 인간 수요가 함께 늘어날 가능성도 크다”는 의견을 전했다.

하지만 가상 인간 시장이 뜬다 해서 나오는 족족 성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한국에 연예인 수가 수만 명이지만 실제 왕성한 활동을 하는 스타는 소수에 불과한 것처럼 이 시장 역시 초반 선점 효과를 누가 누리느냐가 관전 포인트다.

전문가들은 이를 위해서는 몇 가지 이상의 조건을 충족시켜야 그나마 명맥 유지라도 할 수 있다고 분석한다.

무엇보다 실감 나는 영상과 이미지 기술을 구현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과거 가상 인간 ‘아담’이 서서히 인기를 얻으면서 협찬, 협업 요청이 빗발쳤다. 그런데 한 TV 광고 영상 이미지를 만드는 데만 당시 3개월 이상 소요됐다. 그러다 보니 빠른 시장 대응이 안 됐고 결과적으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데 그쳤다는 게 업계 평가다.

따라서 최근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가상 인간 프로젝트도 얼마나 진정성 있게 세계관을 갖추고 기술적으로 시장 대응을 할 수 있는 조직을 보유하고 있는지가 성공의 열쇠라 할 수 있다.

더불어 ‘소통 능력’도 중요한 포인트다.

가상 인간 ‘로지’ 소속사인 싸이더스스튜디오엑스 백승엽 대표는 “인간 인플루언서 중에서도 폴로어 수는 많지만 ‘좋아요’나 댓글 수가 적은 스타도 적잖다. 이들이 입거나 소비하는 상품의 판매 추이를 분석해보면 소통을 잘하는 인플루언서의 영향력이 월등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생명체이자 인격체로서 소통하는 모습을 유지해야 성공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서는 단순히 상품 광고 외에 다양한 기획, 콘텐츠를 선보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분석이다.

‘지금 팔리는 것들의 비밀’의 저자 최명화 블러썸미 대표(서강대 교수)는 “기업의 마스코트나 대표 로봇 정도로는 안 된다. 진정성 있는 소통, 정보성 있는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제공할 수 있어야 생명력이 있다. 모든 이에게 맞춤 반응, 답변을 해줄 수 있는 개인화 AI 기술을 구축한 가상 인간이 결국 시장 주도권을 갖추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윤리적인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방지 방안, 대처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는 정덕현 평론가 의견도 일리 있다. 가상 인간이 인종, 성별 차별적인 표현을 쓰거나 보이스피싱처럼 범법 행위에 악용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않다.

[박수호 기자, 김기진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30호 (2021.10.20~2021.10 [.2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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