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해도 제재 유지" 바이든에 '제재 위반' SLBM 쏜 김정은

강태화 입력 2021. 10. 19. 17:55 수정 2021. 10. 20. 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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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오후 서울역 대합실에 설치된 모니터에서 북한의 단거리 탄도미사일 발사 관련 뉴스가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한ㆍ미가 북한과 ‘외교의 시간’을 앞당기기 위해 여념이 없는 가운데 북한이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로 추정되는 미사일을 발사했다. ‘대화에 열려 있지만, 제재는 유지한다’는 조 바이든 대통령을 향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대화의 여지를 없애진 않겠지만, 우리 시간표대로 무기 개발은 계속한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나 다름없다.

19일 합동참모본부에 따르면 북한은 이날 오전 10시 17분쯤 함경남도 신포 동쪽 해상에서 동해 상으로 SLBM으로 추정되는 미상의 단거리 탄도미사일 1발을 발사했다. 최대 고도는 60㎞, 비행거리는 590㎞ 수준이라고 한다.


서울-워싱턴 연쇄 북핵 협의중 도발


이날 북한의 도발은 의도적으로 서울과 워싱턴에서 한ㆍ미ㆍ일 고위 당국자 간 북핵 협의가 연쇄적으로 이뤄지는 시기를 택해 이뤄졌을 가능성이 있다.
한국을 찾은 애브릴 헤인스 미국 국가정보국장(DNI)이 18일 오후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나오고 있다(오른쪽 사진). 이날 점심시간 무렵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신라호텔로 들어가고 있다. 전날 한국에 도착한 헤인스 국장은 이날 한국과 일본의 정보수장을 비공개로 만나 대북 문제 등을 협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연합뉴스

18~19일 사이 서울에선 박지원 국정원장-애브릴 헤인스 미 국가정보국장(DNI)-다키자와 히로아키(瀧澤裕昭) 일본 내각 정보관 간에 3자 및 양자 협의가 이뤄졌다.
국정원은 19일 보도자료를 내고 “한ㆍ미ㆍ일 정보기관장들은 한반도 정세 및 현안 등 공통 관심 사안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소통했다. 대북 현안, 글로벌 공급망ㆍ기술 유출 등 경제 안보 이슈에 대해서 토론했으며, 앞으로도 정보협력을 더욱 강화해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워싱턴에서는 18~19일 노규덕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성 김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후나코시 다케히로(船越健裕)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장 간 북핵 수석대표 회동이 진행됐거나 진행될 예정이다.


'ICBM 기술' 누리호 발사 의식했나


또 19일에는 서울 국제 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ADEX 2021)가 개막했고, 21일엔 한국형 우주발사체 ‘누리호’ 발사가 예정돼 있다. 누리호가 본궤도에 올라 위성 모사체(더미) 분리 등에 성공할 경우 한국도 자력 발사 능력 보유국 반열에 오르게 된다.
순수 국산 기술로 만든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KSLV-Ⅱ) 발사를 이틀 앞둔 18일 대전 국립중앙과학관에 전시된 누리호 연소시험에 사용된 75t급 실물 엔진. 김성태 기자

이는 북한이 최근 문제 삼아 온 ‘이중기준’과 연결될 수 있는 문제다. 인공위성 발사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에는 사실상 같은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북한 역시 초기에 장거리 로켓을 시험 발사하면서 이를 위성으로 주장했다. 이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제재를 가하자 ‘우주 공간의 평화적 이용 권리’를 근거로 들며 반발했다.

시기뿐 아니라 북한이 도발 수단으로 SLBM을 택한 것도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국제사회의 추가 제재로 이어질 수 있는 장거리 미사일 발사나 핵실험까지는 가지 않으면서도 미국을 향해 무력을 과시할 수 있는 전략 도발 수단이어서다. 김 위원장은 올 1월 8차 노동당 대회에서 직접 핵잠수함 개발까지 언급했다.


제재 위반 SLBM으로 美 인내심 시험?


바이든 행정부 들어 북한은 단거리 탄도미사일, 장거리 순항미사일, 극초음속 미사일 등 다양한 미사일 도발을 감행했지만, SLBM 발사는 처음이다. 이는 탄도미사일 기술을 이용한 모든 발사를 금지한 안보리 결의를 정면으로 위반하는 것이기도 하다. 바이든 대통령이 인내할 수 있는 수준의 도발은 어디까지인지 한계선을 밀어보려는 게 김 위원장의 의도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여기엔 북한이 원하는 제재 문제에서 미국이 좀처럼 입장 변화를 보이지 않는 것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성 김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가 18일(현지시간) 워싱턴DC 미 국무부에서 노규덕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만난 뒤 청사 앞에서 기자들에게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스1

성 김 대표는 18일 오후(현지시간) 기자들과 만나 “우리는 계속해서 대화에 열려 있지만, 동시에 북한과 관련한 안보리 결의를 준수할 의무도 있다”고 말했다.
안보리 대북 결의는 제재를 의미한다. 북한과 대화하더라도 이게 곧 제재 완화를 뜻하지는 않는다는 의미다. 그는 종전선언에 대해서는 “논의를 진행했고, 앞으로도 논의할 것”이라는 원론적 입장을 표했다.


美 재무부 "제재, 안보이익 증진"


미국 재무부도 18일(현지시간) ‘2021 제재 검토 보고서’를 발표하며 북한 관련 내용을 포함했다.
윌리 아데예모 재무부 부장관은 성명을 통해 “제재는 국가 안보 이익을 증진하는 중요한 도구”라며 제재의 현대화 및 강화를 위한 동맹국과의 협력을 강조했다. 암호화폐 등으로 인해 달러화에 기반을 둔 미국 제재 체제에 생길 수 있는 약점을 해소하겠다는 취지다. 북한이 최근 집중하는 비트코인 해킹 등을 염두에 둔 것이다.

북한의 이번 미사일 도발에서 기술적 진전도 주목할 부분이다. 우선 사거리가 2015년 시험 발사한 SLBM 북극성-1형(1500㎞)과 2019년 시험 발사한 북극성-3형(2000㎞ 이상)보다 훨씬 짧다. 북한이 당 창건일(10월 10일)을 맞아 지난 11일 개최한 국방발전전람회 ‘자위-2021’에서 선보인 소형 SLBM일 가능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신범철 경제사회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은 “2000t 잠수함인 로미오급에 장착할 수 있는 소형 SLBM으로 추정된다. 이런 개량에 성공했다면 전술적으로 큰 기술 진전을 이룬 것”이라고 분석했다.


소형 SLBM '잠수함 발사' 성공했나


특히 합참이 발사 지점을 ‘신포 동쪽 해상’이라고 언급한 것으로 볼 때, 잠수함에서 첫 시험발사를 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북한은 북극성-1ㆍ3형 수중발사는 바지선에서 진행했다. 이번에는 수중 잠수함에서 발사했다면 SLBM 실전 배치에 한층 근접했다는 의미다.

박인휘 이화여대 국제학부 교수는 “북한의 이번 도발은 판을 엎지 않으면서도 대미 협상력을 극대화하고 실질적 이득도 챙기려는 다목적 포석으로, 이를 위한 최적의 타이밍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며 “북한은 다양한 카드를 갖고 있어야 미국을 상대할 때 유리하다는 계산을 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정부 안팎에서는 이를 대화의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는 징후로 읽는 분위기도 있다. 미국과의 협상에 나서기 전 ‘몸값’을 최대한 끌어올리기 위한 사전조치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성 김 대표가 “우리는 북한과의 외교를 추구할 것이며, 여기에는 북한과 긴장 감축을 위한 잠재적 논의를 고려하는 것도 포함된다”고 한 점도 눈길을 끈다. 긴장 감축 논의를 구체화하진 않았지만, 북한의 긴장 고조 행위 중단과 관련한 상응 조치도 포함될 수 있어서다.

신범철 센터장은 “북한이 이번 실험에 성공했다면 바이든 행정부에 ‘마음만 먹으면 ICBM 발사까지 갈 수 있다’는 엄포의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 될 수 있다”며 “북한은 대화 재개를 염두에 두더라도 그 전에 최대한 미국의 양보를 받아내기 위해 필요한 모든 군사적 실험을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NSC "깊은 우려" 제재 위반 명시 안해


정부는 북한의 발사에 우려를 표하면서도 종전선언 등 관여의 불씨를 꺼뜨리지 않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다.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이날 오전 열린 국가안보회의(NSC) 상임위원회 긴급회의 뒤 정부는 “상임위원들은 북한의 이번 발사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진전시키기 위해 최근 우리와 미ㆍ중ㆍ일ㆍ러 등 주요국 간 활발한 협의가 진행되는 가운데 이뤄진 데 대해 깊은 유감을 표명했다”고 밝혔다. 다만 ‘안보리 결의 위반’ 등을 명시하진 않았다.

통일부도 같은 입장을 확인하며 “북한이 조속히 대화에 나올 것”을 촉구했고, 외교부는 안보리 결의 위반이라는 지적에 “미국 등 주요 안보리 이사국들과 긴밀히 소통하겠다”고만 했다. 국정원은 3국 정보기관장 회동 관련 보도자료에서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관련해서도 정보를 공유하고 상황을 평가했다”고 했다.

정용수 기자 nkys@joongang.co.kr, 강태화 기자 thkang@joongang.co.kr, 박용한 기자 park.yonghan@joongang.co.kr,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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