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벽증 집사, 고양이와 4년을 지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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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유석 기자]
▲ 4년 전 구조했던 쿠키. 지금은 어엿한 가족이다. |
ⓒ 지유석 |
지금은 나나 아내가 퇴근해서 집에 오면 쪼르르 내려와 우리를 반긴다. 나와 아내는 쿠키의 재롱을 보며 하루의 피곤을 푼다.
쿠키를 처음 구조했던 장면은 언제 떠올려도 훈훈하다(관련 기사 : 작고 여린 생명, 기적처럼 찾아오다). 그런데 이런 사연은 워낙 흔해서 식상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고양이 아빠 노릇을 하고 있는 내가 중증 결벽증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질 것이라 생각한다.
이 녀석을 처음 구조할 때만 해도 이 녀석과 함께 살 것이란 상상은 하지 않았다. 바로 입양 보낼 생각이었으니까. 하지만 아내가 워낙 강하게 반대해 자의 반 타의 반 가족으로 맞아야 했다.
더 앞선 이야기를 해보자면 쿠키를 가족으로 맞이하기 전까지 난 반려동물을 키워본 적이 없다. 쿠키를 구조하던 무렵, 길고양이에 관심이 생겨 집 주위에 사는 길고양이 녀석들에게 밥을 챙겨주긴 했지만 말이다.
쿠키를 가족으로 맞아들이기 꺼렸던 이유, 그리고 반려동물을 키워본 적이 없었던 이유는 앞서 적었듯 결벽증 때문이었다.
난 강아지고 고양이고 털에 무척 민감한 편이다. 혹시라도 반려동물을 키우는 집에 초대를 받아 방문하기라도 한다면 귀가해서 그날 입은 옷들을 곧장 세탁기에 집어넣었다.
더구나 고양이는 털이 많이 날린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집 곳곳에 고양이 털이 날리는 장면은 생각만 해도 몸서리가 쳐졌다. 쿠키가 가족이 되기 전까지는 그랬다.
쿠키와 함께 살다 보니, 집 구석구석에 고양이털이 날리지 않은 곳이 없었다. 난 쿠키 입양 직후 수개월간 매일 같이 진공청소기로 집안 구석구석 묻은 털을 없애는 데 시간을 보냈다. 어쩌다 이 녀석이 실례(?)라도 하는 날이라면 그날 하루는 빨래하는 데 바쳤다.
이뿐만 아니다. 고양이 집사라면 '사막화'에 익숙하다. 고양이를 키우지 않는 독자들을 위해 설명을 덧붙이자면, 고양이의 배변 활동을 위해 집사는 모래로 채워진 화장실을 마련해줘야 한다. 고양이가 배변을 마치고 나오면 주변에 모레가 흩날리는 데 이걸 사막화라는 은어로 표현하는 것이다.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은 이렇게 화장실 주변의 모레를 깨끗하게 치우고, 화장실도 청결하게 유지하는 일이다.
▲ 쿠키는 여느 고양이가 그렇듯, 일과 대부분을 자면서 보낸다. |
ⓒ 지유석 |
무엇하나 쉽지 않은 일들이다. 그래서 한 번은 아내에게 "지금이나 이렇게 열심히 청소하지 늙고 힘 빠지면 어떻게 하냐"고 푸념한 적이 있었다. 그러다 아내에게 핀잔을 듣기는 했지만.
그런데 쿠키가 이런 아빠의 수고를 아나보다. 내가 청소할 때나 화장실 주변을 정리할 때 쿠키는 주변을 맴돌며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리고 일을 마치고 휴식을 취하고 있으면 쪼르르 달려와 재롱을 부린다. 화장실 모레를 매월 1회꼴로 교체해 주는데, 그때마다 쿠키는 작업(?)을 감시라도 하듯 주변을 예의주시한다. 참 보면 볼수록 신기한 일이다.
두 살 생일까지 우리 부부는 밤에 잘 때면 쿠키를 케이지에 가둬뒀다. 아내는 반대했다. 그러나 나의 특유의 결벽증이 발동해 혹시라도 밤에 잘 때 영역 표시(?)라도 하는 게 너무 싫고 두려웠다. 쿠키는 케이지에 들어갈 때마다 무척 싫어했다.
지금은 케이지에 가둬두지 않는다. 쿠키 녀석은 이후 집안 전체를 자기영역화 했다. 하지만 출입금지 구역이 하나 존재한다. 바로 내 공부방이다.
요사이는 집에서든 직장에서든 작업에 노트북은 필수일 것이다. 그런데 다른 집사들의 경우 노트북으로 작업할 때 고양이가 다가와도 별다른 제지를 하지 않는다고 들었다.
그러나 내 경우는 다르다. 노트북이나 다른 IT기기에 털 날리는 거 자체를 싫어한다. 그래서 공부나 작업을 위해 내 방에 들어가면 쿠키 들어오지 못하게 문을 걸어 잠근다. 외출할 때도 문단속은 필수다. 이쯤 되면 난 고양이 집사 중에서도 별종일 것이다.
그런데도 쿠키는 내 방에 들어오고 싶어 하나 보다. 내가 방에 들어갔다가 일을 마치고 나올 때면 늘 쿠키는 방문 앞에 망부석처럼 서 있거나 엎드려 있다. 마치 내가 나오기만 기다렸다는 듯이. 이런 모습을 볼 때면 미안하기만 하다. 아내도 어지간하면 쿠키를 내 방에 들이라고 압박한다.
어느덧 4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처음엔 어떻게 키워야 할지 몰라 실수가 많았다. 때론 참 모질게 굴기도 했다.
그런데도 쿠키는 집사를 잘 따라줬다. 요사이는 내가 집안 어디서든 "쿠키야, 이리 오너라" 하고 부르면 쪼르르 달려 내려온다. 참 신기한 게, 아내가 부르면 잘 오지 않는데 내가 부르면 곧장 달려온다. 그래서 아내가 가끔씩은 "왜 엄마가 부르면 안 오냐"며 쿠키에게 역정을 내기도 한다.
4년 전이나 지금이나 쿠키가 우리 가족이 된 건 기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쿠키 입장에서도 결벽증 심한 집사 만나 4년간 다른 고양이보다 힘든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쿠키야, 쿠키가 가족이 되어 늘 행복했고 아빠는 늘 쿠키를 사랑했단다. 아빠도 결벽증 좀 고치려고 노력해 볼게. 앞으로 계속해서 행복하게 지내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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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개인 브런치에 동시 송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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