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성차별 패치 떼다③] "문제적 성고정관념, 영유아 콘텐츠부터 바로잡아야"

박정선 2021. 10. 19.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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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평등 그림책 큐레이션 서비스 '우따따'
유지은 '딱따구리' 대표 인터뷰

“신데렐라, 부디 나의 신부가 돼 주세요!”

“결혼하기에는 제가 너무 어려요. 그러니 왕자님의 우주선 정비공이 돼 드릴게요!”


ⓒ여성가족부 유튜브

화려한 드레스 대신 우주복을 입고, 유리구두 대신 렌치를 든, 당차고 씩씩한 신데렐라. 우리가 흔히 읽고, 봐왔던 ‘신데렐라’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그림책 큐레이션 서비스 ‘우따따’에서 소개하는 데보라 언더우드의 ‘별나라의 신데렐라’(2015)는 기존의 명작 동화 ‘신데렐라’의 무대를 우주 공간으로 옮겨, 자신의 꿈을 이뤄내는 현대판 신데렐라 이야기를 그린다.


이 책은 신데렐라처럼 자신이 진정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그 꿈을 소중히 키워 나가는 법을 알려준다. 이전의 신데렐라를 여성주의적 관점으로 쓴 이 책에 대해 딱따구리 유지은 대표는 “‘우따따’의 방향성을 잘 보여주는 책들 중 하나”라고 소개했다.


“친구들과 소설 투자 모임을 하면서 사회의 다양한 사회 문제들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그러다 어린 친구들 사이에서 심각한 혐오 문화가 대두되고 있다는 기사를 보고 왜 이런 현상이 생겼는지 생각하게 됐고요. 문제는 어릴 때부터 접하는 미디어, 교과서, 책 등 수많은 콘텐츠들에 성차별 등 혐오적 표현이 있다는 걸 알게 됐죠. ‘미국엔 성평등 서점이 있다’는 후배의 말을 듣고 곧장 비행기를 탔어요.”


아이들이 성차별적 요소가 담긴 콘텐츠를 그대로 습득하며 성장한다면, 성인이 돼서도 성차별적인 고정관념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유 대표가 무작정 미국으로 향한 건, 영유아의 올바른 성평등 교육의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다만 초반 직접 원문을 가져와 출판하려는 생각이었지만, 경제적 여건이 맞지 않아 생각을 전환해 ‘큐레이션’ 서비스를 기획하게 됐다.


“2~3개월 동안 뉴욕과 여러 지역들을 돌아다녔어요. 처음엔 ‘성평등 서점’을 찾았는데 조금 지내다 보니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어요. 이미 대부분의 대형 서점에서도 여자들을 위한, 또 남자들을 위한 그림책이 있더라고요. 페미니즘적인 시각으로 배울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코너가 따로 있을 정도로, 그 부분에 있어선 (우리나라보다)훨씬 앞서 있는 거죠. 이 책들을 소개하고 싶은데 수입 출판을 하게 되면 판권을 구매하고, 번역하고, 인쇄까지 못해도 800~1000만원가량이 필요해요. 고민을 하다가 서점에서 큐레이션하는 것을 떠올려서 좋은 그림책을 큐레이션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죠. 처음엔 이미 국내에 들어왔지만 알려지지 않은 좋은 책을 소개했어요.”


ⓒ딱따구리 홈페이지

문예창작을 전공한 유 대표에게 책을 보고, 고르고, 추천하는 것은 익숙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영유아를 대상으로 한 사업의 무게는 가볍지만은 않았다. 영유아 시기에 접한 콘텐츠들이 성장하면서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유 대표가 이 사업을 시작한 것도 이런 고정관념이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고.


“큐레이션을 한다고 했을 땐 부담이 없었는데, 막상 하고 나니까 제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에 대해 책은 물론 놀이형 문제집을 만들어야겠다는 계획을 세우곤 고민이 많아졌어요. 책과 관련된 워크북을 직접 만드는데, 제대로 만들기 위해서는 공부가 필요한 거죠. 관련 경험이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기도 하고, 대학원도 다니고 있어요.”


유 대표는 성평등에 대한 ‘주입식’ 교육은 지양한다.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것도 아이들에게 ‘이건 옳은 거야’라고 유도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유 대표는 “다양한 것들을 보여주되, 그 안에서 아이들 스스로 옳은 것을 찾고 선택하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우따따’를 통해 어떤 책을 소개할지도 큰 고민이다.


“기존엔 우리가 생각하는 사회의 여성혐오적 포인트들, 문제적 상황들을 중심으로 책을 소개했는데 지금은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평등함’을 습득할 수 있도록 돕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어요. 사실 아무리 막아도 다양한 콘텐츠를 접할 통로는 많잖아요. 이제 막는다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시대는 아니에요. 문제적 콘텐츠를 보더라도, 그것이 왜 문제인지 생각할 수 있는 시각을 길러주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죠.”


‘우따따’의 서비스는 주로 젊은 층의 학부모들을 중심으로 구독층이 형성됐었는데, 최근엔 유치원, 어린이집 등 어린이들을 위한 교육기관에서도 구매가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또 유 대표는 교육자, 도서관 사서, 양육자 등을 대상으로 강연도 이어가고 있다. 지난 2019년 시작해 2년여의 시간동안 ‘우따따’가 급격히 성장할 수 있었던 건 구독자들로부터 받은 피드백 덕분이다.


“구독자들을 보면, 확실히 의식이 깨어난 것 같단 생각을 많이 해요. 저희 콘텐츠에 애정이 있는 고객들이 피드백을 많이 줬어요. 자신이 30년 전에 보고 자랐던 콘텐츠에 문제가 있다는 걸 인지했는데, 여전히 그 콘텐츠를 아이들도 보게 되는 것에 문제를 느낀 양육자들이 많아요. 그럼에도 어떤 콘텐츠를 보여줄지에 대해서는 쉽게 찾지 못하는데 그 역할을 대신 해주고 있는 셈이죠. 어린이들이 성고정관념을 갖는 건, 차별주의자라서가 아니라 살아오면서 접하는 콘텐츠 때문인 거죠. 경험이 적기 때문에 보여주기만 해도 세계가 넓어져요. 흡수도 빠르고요.”


유 대표는 큐레이션에 그치지 않고 워크북을 만들고, 양육자를 대상으로 하는 성평등 교육에 힘써왔던 것처럼 생활 속에서 아이들을 교육할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을 모색 중이다. 커뮤니티, 미디어 등을 통해 고민과 정보를 나누면서 여러 긍정적 효과를 이끌어내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아무래도 미디어로 확장되면서 문제들이 복잡해지곤 있는데. 어린이들이 접하는 콘텐츠를 어른이 만들다 보니, 어른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문제들을 아이들이 배우게 되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그걸 의식해서 만들어야 한다는 걸 제작사들이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미 출판계에는 성인지 감수성과 관련해 많은 변화가 일어났지만 미디어 분야는 아직도 갈 길이 멀죠. 이제 미디어를 통해 사회가 올바른 성평등 관념을 가질 수 있도록 꾸준히 나아갈 계획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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