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담긴 슬픔과 치유 그리고 경고.. '첫눈이 사라졌다'
[김준모 기자]
▲ <첫눈이 사라졌다> 포스터 |
ⓒ (주)다자인소프트 |
눈에는 이중적인 의미가 있다. 차갑고 시린 겨울과도 같은 고난과 시련을 의미하는가 하면 모든 아픔을 따뜻하게 감싸주는 위로의 의미가 되기도 한다. 안도현 시인의 '우리가 눈발이라면'이란 시에서는 함박눈을 가장 낮은 곳을 포근히 감싸주는 이불과도 같은 의미로 표현한다. <첫눈이 사라졌다>는 이런 이중적인 의미에 마술적 리얼리즘을 표현으로 삼으며 따뜻한 힐링을 선사하는 영화다.
출장마사지사인 제니아는 폴란드 바르샤바의 한 부유한 마을에 오게 된다. 간이침대를 지니고 다니며 좋은 체격으로 온몸을 주물러주는 그의 실체는 사실 최면술사다. 제니아는 몸과 함께 마음을 치유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 이 점은 부유함을 통해 행복을 얻은 것처럼 보이는 이들에게도 마음의 상처가 있다는 점을 비추며 이를 따뜻하게 안아주는 주인공을 통해 일련의 사건들이 진행되는 전형적인 전개에 변수를 만든다.
표면적으로 볼 때 작품의 이야기는 위선 그리고 치유를 보여준다. 제니아가 출장마사지를 다니는 마을 사람들은 부와 명예를 지니고 있다. 그들의 삶은 행복할 것만 같지만 그 이면에는 슬픔과 공포가 서려있다. 암에 걸린 남성과 공허한 마음을 지닌 여성, 남편을 잃고 외로움에 시달리는 부인, 마약을 제조해서 파는 아이 등등 정신적인 결여와 슬픔을 느낀다. 여기에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혐오와 불안 역시 마음속에 내재되어 있다.
▲ <첫눈이 사라졌다> 스틸컷 |
ⓒ (주)다자인소프트 |
그렇다면 작품은 보편적인 우울과 불안 그리고 고통의 치유를 말하고자 한 것일까. 영화는 특정한 시대적인 배경을 바탕으로 한다. 제니아는 우크라이나 출신의 이주노동자이다. 그는 어린 시절 체르노빌 사태를 경험했다. 작품이 말하는 눈은 낙진(落塵)이다. 때문에 어두운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 제니아의 아픈 과거는 마술적 리얼리즘의 표현 속에 히어로 영화의 성장담을 내포한 독특한 전개의 핵심이 된다.
특별한 능력을 지닌 히어로 영화 속 주인공들처럼 제니아 역시 남들과는 다른 최면이란 능력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여느 히어로 영화처럼 고난과 극복의 서사를 보여준다. 그가 지닌 최면능력의 핵심은 치유다. 어떤 아픔도 자신의 힘으로 치유할 수 있다 여겼던 제니아에게 체르노빌로 인한 어머니의 죽음은 좌절이자 슬픔이었다. 그는 고난과 역경을 이기고 다시 일어서는 영웅들처럼 혐오와 차별이 존재하는 마을을 향하고 이들을 치유한다.
▲ <첫눈이 사라졌다> 스틸컷 |
ⓒ (주)다자인소프트 |
작품의 눈은 양면성을 지닌다. 앞서 언급한 체르노빌의 낙진이 의미하는 어둠과 안도현 시인의 시처럼 시린 마음을 따뜻하게 덮어주는 빛이다. 눈을 어둠으로 바라본다면 첫눈이 사라졌다는 건 체르노빌과 같은 아픔은 제니아와 같은 따뜻함을 전하는 사람에 의해 끝날 것이며 차갑고 시린 겨울 이후 봄이 올 것이란 희망의 메시지를 내포한다. 허나 두 번째 의미로 해석할 시 경고의 의미를 담고 있다.
마을 사람들을 치유해 준 제니아는 다시 마을을 떠난다. 이는 표면적으로는 또 다른 마을에 치유를 내리기 위한 선택처럼 보이지만 제니아의 캐릭터를 생각해 볼 때 예수를 연상시킨다. 제니아는 일종의 구원자이다. 마구간에서 태어난 아기예수처럼 체르노빌에서 자란 제니아는 초능력을 통해 기적을 행한다. 예수는 지상에서 기적을 행한 뒤 자신의 피로 모든 인간들의 죄를 씻어주었으나 완전히 죄악을 사라지게 만든 건 아니다.
첫눈이 사라졌다는 건 체르노빌 때와 같은 아픔이 사라지고 행복이 올 것이란 의미도 있지만 결국 차별, 혐오, 공포와 같은 감정은 우리 스스로가 이겨내지 않으면 제목처럼 치유가 사라진 채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있을 것이란 경고의 의미를 보여준다. 직접적인 해석과 해설보다는 은유적인 전개와 마술적 리얼리즘의 표현을 택한 이 영화는 올해 가장 호기심을 자극하는 따뜻한 감성의 영화라 할 수 있다. 10월 20일 개봉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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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키노라이츠 매거진과 김준모 기자의 개인 블로그에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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