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사회에 스며든 교회, 마을 공동체 생활의 중심이 되다

장창일 2021. 10. 19.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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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목회' 통해 교회 성장 이끄는 김영철 월드비전교회 목사
김영철 월드비전교회 목사가 지난 13일 서울 관악구의 교회 본당에서 ‘푸르고 푸른 100년을 향하여’라는 표어를 가리키며 교회의 비전을 설명하고 있다.


서울 관악구 월드비전교회(김영철 목사)는 2019년 성탄절에 새 예배당에 입당했다. 지난 13일 교회에서 만난 김영철(60) 목사는 “입당 후 한 달쯤 지나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새 예배당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해 무척 아쉽다”면서 “어서 일상을 회복해 다시 동네 사랑방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월드비전교회는 주민들이 편히 찾던 사랑방 같은 공간이었다. 김 목사는 전임 안길중 원로목사가 하던 지역사회 봉사 사역의 바통을 이어받아 교회 문을 더 활짝 열었다. 연세대 신학과와 장로회신학대 신학대학원을 졸업한 김 목사는 서울 명성교회에서 부목사로 사역하다 2002년 월드비전교회에 부임했다.

주민들은 2011년 집중 호우 당시 수많은 이재민이 발생했을 때 교회가 했던 사역에 고마움을 전하고 있다고 한다. 그때만 해도 신림동은 도림천과 봉천천이 합류하는 지역으로, 비만 내리면 침수가 반복되던 곳이었다. 2011년에는 피해 규모가 컸다. 당시 교회는 민관군 수해대책본부가 됐다. 수해 복구의 본부이자 주민들의 숙소로 한 달 동안 사용됐다. 이를 계기로 교회는 관악구청과 교회를 긴급 피난처로 사용하는 걸 골자로 하는 협약도 맺었다.

교회가 마을 공동체의 중심이 돼야 한다는 게 최근 관심을 끄는 ‘마을 목회’의 중요한 개념이다. 월드비전교회는 마을 목회가 도입되기 훨씬 전부터 이를 실천한 셈이었다. 김 목사는 “우리나라 교회가 빠르게 성장했지만, 지역사회를 전도대상으로만 보면서 오히려 지역과 단절돼 버리는 후유증이 생겼다”며 “교회가 지역사회 공동체의 중요한 일원으로 자리 잡으면 결국 건강한 성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조언했다. 주민들은 몇 해 전 김 목사를 주민자치위원에 위촉했다. 현재는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민들이 김 목사를 공동체의 일원으로 인정한 것이었다.

교회는 삼계탕 끓여주는 교회로도 잘 알려져 있다. 이 사역은 코로나19로 잠시 중단됐지만, 그동안 교회는 해마다 중복(中伏) 때면 ‘사랑의 삼계탕’ 400그릇을 주민들에게 대접했다. 주민센터 소방서 경찰서 지하철역 공무원들도 위로하고 격려했다. 추수감사절 같은 교회 절기에는 떡을 선물하고 여름에는 수박 파티를 열었다. 김 목사는 “매년 거르지 않고 지역사회 심방을 하다 보니 언젠가부터 교회가 지역사회에 스며들게 됐다”며 “주민들이 삼계탕 잘 먹었다거나 수박 맛있었다고 인사를 건넬 때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위드코로나’가 시작되면 교회 인근의 보라매공원에서 모이는 체조 클럽을 다시 교회로 초청할 예정이다. 공원에서 200m쯤 떨어져 있는 교회는 겨울이 되면 체조 클럽을 교회로 초대했다. 김 목사는 “야외에서 체조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겨울이 되면 실내로 장소를 옮겨야 하지만 마땅한 공간이 없다”며 “현재 계획으로는 3팀 정도 교회로 초청해 따뜻한 곳에서 운동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라고 했다.

1967년 창립한 교회는 54년 동안 큰 갈등 없이 평안했다. 김 목사가 설립자인 안 목사에 이은 두 번째 담임목사인 것만 봐도 그렇다. 부침이 많은 교회일수록 담임목사가 수시로 바뀐다. 40대 초반 부임한 김 목사는 ‘조화와 균형을 통한 성장’을 목회 좌우명으로 정했다. 갈등 대신 화합, 논쟁 대신 대화의 길을 택했다. 적지 않은 교회에서 원로목사와 후임 목사 사이에 갈등이 생기지만 월드비전교회는 달랐다.

김 목사는 원로목사가 2013년 별세하기까지 아버지와 아들 같은 관계를 유지했다. 이런 신뢰는 전적인 지원으로 이어졌다. 원로목사는 김 목사에게 “모든 걸 다 바꾸라”고 권했다고 한다. 후임목사를 전폭적으로 지지한 것이었다. 김 목사가 교회 이름을 ‘신생’에서 지금의 월드비전으로 바꾼 것도 이런 응원 덕분이었다. 비전(vision)이라는 영어 단어를 교회명에 담았지만 사실 ‘하늘의 비밀을 전한다’(秘傳)는 의미를 담고 있다.

장로들과도 갈등을 빚지 않았다. 김 목사는 “요즘 담임목사로 부임하자마자 원로목사는 물론이고 장로님들과도 갈등을 빚는 분들이 적지 않은데 ‘조화와 균형’을 앞세우고, 피스 메이커 역할을 하면서 갈라진 틈을 메우면 화목한 당회를 만들 수 있다”며 “싸우면 결국 교인들이 피해를 보고 양을 먹이라는 주님의 명령을 지킬 수도 없게 된다”며 화합을 강조했다.

김 목사는 외부 활동을 하는 데도 원칙을 세웠다. 외부에서 사례비를 받으면 개인적으로 쓰지 않고 교회에 헌금했다. 교회도 담임목사의 특별헌금을 남다르게 관리했다. 별도의 통장을 만들어 따로 모았다. 훗날 선교비로 사용하기 위해서였다. 실제 이 기금을 종잣돈으로 원로목사의 이름을 딴 ‘안길중 목사 장학회’가 설립됐다. 또한 교회 창립 50주년을 기념해 태국 치앙라이에 세운 ‘월드비전교회 창립 50주년 기념교회’도 김 목사의 헌금으로 지었다.

김 목사는 “재정 문제에서 흠이 없어야 구설에 오르지 않고 말씀에 권위가 더해지고 목회가 평안해진다”며 “새롭게 목회를 시작하는 후배 목사들이 꼭 기억하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글·사진=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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