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범의 이코노믹스] 대기업·공기업에 혜택 집중..고용취약층 배려해야

입력 2021. 10. 19. 00:31 수정 2021. 10. 19. 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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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연장 추진, 그 안의 함정


박영범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
정부가 지난달 30일 ‘고령자 고용 활성화 대책’을 발표했다. 중소기업은 내년부터 60세 이상 고령자 1인당 분기당 30만원씩 최장 2년간 ‘고령자 고용장려금’을 받을 수 있다. 지난해 2월 문재인 대통령의 고령자 고용연장 검토 지시의 후속 조치다. 그러나 지원 금액이 적어서 채용 효과가 작고, 계약직에도 지원금이 지급돼 단기 일자리만 양산될 가능성이 있다.

내년 3월 대통령 선거를 의식해 정부와 여당이 정년연장의 불을 붙이려고 한다는 비판도 있다. 지난해에도 총선 2개월 전에 문 대통령이 정년연장 검토를 지시해 총선에서 50·60대와 노조의 표를 얻으려 한다는 논란이 있었다. 또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이 올해 단체교섭에서 정년 64세를 요구해 지금도 파문이 퍼지고 있다.

「 현행 60세도 버거운 중소기업 많아
취업난 청년 일자리 더 줄어들 수도
성과 위주로 임금체계 개편 필요
사회보험 확대 등 안전망 보완을

정년연장을 주장하는 논거의 하나는 우리나라는 고령화가 아주 빠르게 진행됐고, 앞으로는 더욱 급속도로 진행될 것이나 고령자들의 노후 준비는 미흡하다는 것이다. 다 맞는 말이지만, 정년을 늘리기 전에 선결 과제가 있다.

전체 근로자의 20% 정도만 수혜

박영범의 이코노믹스

2023년 국내 65세 이상 고령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3%로 증가하며 한국은 초고령사회에 진입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고령자는 가난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실질적인 노동시장 은퇴 연령이 가장 높다. 지난 10년간 지속해서 상승한 55∼79세 연령층의 고용률은 올해 5월 기준으로 56%다. 3명 중 2명은 일하고 싶어 하며, 10명 중 6명은 생활비에 보태기 위해 일하고자 한다. 혼자 사는 고령자 가구는 전체 고령자 가구의 35%(2020년 기준)이다. 단독 고령자 가구의 절반 이상이 스스로 생활비를 벌지 못한다. 노후를 준비하고 있는 고령자는 3분의 1에 불과하다.

60세 정년제가 2016년부터 2017년까지 단계적으로 시행됐으나 아직도 많은 중소기업에서 작동하지 않고 있다. 법적 정년이 다시 연장된다면 이번에도 혜택을 보는 고령자는 전체 근로자의 20% 미만인 대기업, 공공 부분에 국한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60세 정년제 도입 이후 연령층 이직 추이

법적 정년이 60세가 된 지 5년이 됐지만, 올해 5월 기준으로 55∼64세 취업 유경험자의 ‘가장 오래 근무한 일자리’의 평균 근속 기간은 15년을 조금 넘고, 그만둘 당시의 평균 연령은 49.3세에 불과했다. 정년이 늘어나기 전인 2015년도와 비교하면 이직 당시 연령은 0.3년 늘었고, 근속 기간은 조금씩 늘어 지난해 15.6년까지 늘었으나 올해에는 오히려 0.4년 줄었다.

한국의 주된 임금체계는 호봉제다. 호봉제 임금체계에서는 근속 기간이 길어지면 보상이 많아져서 급여보다 조직 기여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중·장년층 근로자들이 조기 퇴직을 하는 원인이 된다. 호봉제가 유지된 채 정년이 연장되면 기업들의 인건비 부담은 더 높아지고, 결과적으로 조기 퇴직 압력이 가중된다.

60세 정년제 도입 이후 이직 사유

대한상공회의소가 대·중소기업 300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살펴본다. 정년 60세 의무화로 90% 가까운 기업이 중·장년 인력관리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50% 가까운 기업이 연공서열식 호봉제 임금 체계로 인한 높은 인건비를 인력관리의 가장 어려운 점으로 들었다.

정년 연장에 따른 중장년 인력관리의 어려움

정년연장에도 불구하고 55∼64세 취업 유경험자의 ‘가장 오래 근무한 일자리’의 이직 사유로 ‘정년퇴직’ 비율은 2015∼2021년 기간 동안 8.1%에서 7.5%로 줄었고, 오히려 ‘권고사직·명퇴·정리해고’ 비율이 10.5%에서 12.1%로 증가했다.

정부가 지난해 총선을 앞두고 정년연장을 추진하다가 기업이 자발적으로 정년을 연장하는 고용연장(계속 고용제)으로 돌아선 주된 이유는 가뜩이나 어려운 청년 일자리 문제가 더욱 악화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대기업일수록 청년 고용 줄어

청년과 중·고령 세대 간의 일자리는 보완적일 수도 있으나 현시점에서는 정년연장이 세대 간 일자리 갈등으로 비화할 수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의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20대 청년 3분의 2 정도가 65세 정년연장 제도가 청년 신규 채용에 부정적일 것으로 보고 있다.

법적으로 정년이 상향 조정되면 기존 근로자의 재직 기간이 길어져 청년층이 원하는 일자리인 대기업에서 먼저 채용이 줄어든다.

한국개발연구원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민간기업의 경우 60세 정년연장 수혜자가 1명 늘어나면 청년 고용은 0.2명 감소했다. 사업체 규모가 클수록 감소 폭이 컸다. 100인 미만 사업체는 변화가 없고, 100∼499인 1.9명, 500∼999명 2.6명 줄었다.

60세 정년을 법제화한 박근혜 정부에서 청년층 일자리 피해를 줄이기 위해 지원금을 주면서 공공부문과 금융 산업을 중심으로 임금피크제 도입을 독려했으나 그마저 절반의 성공밖에 거두지 못하였다. 임금피크제로 절감된 인건비로 청년 채용을 장려하였으나 그 효과는 제한적이었다.

법적 정년이 연장된다면 정년연장과 함께 기업이 임금체계를 성과, 직무 위주로 개편하는 것을 의무화해야 한다.

일본에선 45세 정년제 제기돼 파문

완성차 노조의 정년연장 요구도 논란이다. 노조 측은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이 2033년에는 65세가 되기 때문에 정년이 늘어나야 하고 정년이 연장되면 국민연금의 재정 건전성 제고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국민연금이 재정적 위기에 처해 있다는 것은 일부 과장된 측면이 있고, 재정 건전성 제고를 위해 보험료 인상과 함께 수급연령 상향 조정도 검토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년연장과는 별개로 정년연장 혜택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되는 수많은 고령자도 배려해야 한다. 세금으로 만든 재정 일자리가 아닌 제대로 된 고령자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이와 함께 자영업자, 고용 취약 고령자 계층에 대한 사회보험 확대 등의 별도 조치가 이뤄져야 일부에 한정될 정년연장 혜택의 부작용이 완화될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노동시장 유연성이 확보된다면 미국이나 영국과 같이 정년을 폐지하는 것도 대안이다.

최근 일본에서는 한 유력 경영인이 최근 “45세 정년제로 회사 의존을 낮춰야 한다”고 주장해 파문이 일었다. 100세 시대에 45세에 직장 경력을 일단 정리하도록 하는 것이 근로자·회사·사회에 도움을 준다고 주장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정년연장을 검토하는 논의에서 나름 경청할 가치가 있는 제안이다.

■ 기업들에 준비 기간과 선택권을 준 일본

「 정년연장, 또는 정년폐지는 세계적인 현상이다. 국가별 차이가 있으나 여러 나라가 이 방향으로 가고 있다.

독일은 정년을 2029년까지 67세로 올릴 계획이다. 싱가포르는 정년을 65세로 점진적으로 올리겠다고 2019년 발표했다. 일본 기업들은 올해부터 근로자가 70세가 될 때까지 ‘취업확보 조치 노력’을 해야 한다. 프랑스(현재 60세), 러시아(여성만 남성과 같이 60세로 상향) 등은 정년연장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거나 절반만 성공했다. 미국은 1986년, 영국은 2011년에 정년을 폐지했다.

노동시장의 경직성, (우리보다 일찍 시작됐지만) 고령화 진행 추이 등 우리나라와 유사한 일본은 정부와 정치권이 일방적으로 정년연장을 추진하지 않았다. 일본은 현재 인력난으로 폐업하는 기업이 있고, 정년이 70세이거나 정년을 폐지한 기업이 3분의 1(2020년 6월 기준)인 상황에서 기업들이 재직 근로자에게 70세까지 취업기회를 보장하는 노력을 하는 의무를 지게 됐다.

유연하게 접근하고 기업들에 충분한 준비 기간을 준 것도 차이가 난다. 일본은 법적 정년은 60세(2015년에 65세로 상향 조정)로 둔 채 고용확보 조치, 그리고 취업확보 조치 노력을 부과했다. 정년연장 외에 퇴직 후 재계약 고용, 다른 기업에서의 재취업 및 개인 창업 지원, 프리랜서 계약, 사회공헌 활동 지원 등이 취업확보 조치 노력으로 인정된다. 근로자가 원할 때까지 일할 수 있으나 정년이라는 보호막이 없어지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는 정년폐지를 선택할 수도 있다.

우리나라는 60세 정년법 제정 이후 대기업은 2년 반, 중소기업은 3년 반의 준비 기간을 마련했다. 일본의 경우 60세 법적 정년에 6년, (70세 ‘취업확보 조치 노력’ 전에 도입된) 65세 ‘고용확보 조치’에 7년의 준비 기간을 뒀다.

박영범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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