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주의 아트&디자인] 열린 건축, 발견하는 건축

이은주 입력 2021. 10. 19. 00:19 수정 2021. 10. 19. 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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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 문화선임기자

여운(餘韻)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전에는 그 뜻이 이렇게 나옵니다. ‘아직 가시지 않고 남아 있는 운치’. 기자도 취재를 위해 여러 현장을 다니다 보면 감동의 여운이 유난히 긴 작품이나 공간,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최근 기자에게 그랬던 곳이 서울 송은문화재단(이사장 유상덕) 신사옥 ST빌딩이었습니다. 스위스 듀오 건축가 헤르조그 앤 드 뫼롱(Herzog & de Meuron·이하 HdM)이 설계한 이곳은 무엇보다도 이들의 한국 첫 프로젝트라는 점에서 국내외에서 주목받아왔습니다.

2018년 기공식에 참석하기 위해 그들이 한국을 찾았을 때 인터뷰를 했는데요, 바로 얼마 전 개관을 기념해 그들의 건축전이 열리고 있는 현장에서 HdM의 피에르 드 뫼롱(71)을 다시 만났습니다.

송은문화재단 신사옥 1층 로비. Iwan Baan 촬영. [사진 송은문화재단]

드 뫼롱에 따르면 송은문화재단 신사옥은 “폐쇄적이지만 열린 공간”입니다. 실제로 이 건물엔 흥미로운 반전(反轉)이 눈에 띕니다. 큰 도로를 마주하고 있는 삼각형 건물은 차갑고 뾰족하고 닫혀 있는 듯하지만, 실제 안으로 들어가 보면 전혀 다르게 두 팔 벌려 사람을 반기는 밝고 쾌적한 공간입니다.

3년 전 기자 간담회에서 어느 기자가 “(입면의) 창문을 최소화하면 폐쇄적인 느낌을 주지 않겠느냐”는 물었는데요, 그때 헤르조그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입면이 유리로 싸여 있거나 창문이 많다고 해서 다 개방적인 것은 아니다”라고요. 실제로 완성된 건물은 1층 입구와 로비가 만나는 경계부터 건물 측면의 삼각형 창, 뒷면에 층층이 자리한 테라스는 주변을 향해 활짝 열려 있습니다. 그들이 말한 “사람들을 환영하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전할 수 있는 공간”이 어떤 것인지 돌아보게 됩니다.

깊은 우물 같은 분위기의 지하 2층 전시장도 특이합니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가운데 천장이 1층까지 뚫려 있습니다. 로비 유리창으로 들어온 자연 햇살과 지하 인공조명이 차분하게 섞인 이곳은 성소(聖所)처럼 느껴질 정도입니다. 여기에서 예술 작품을 보며 잠시나마 번잡하고 소음으로 가득 찬 바깥세상을 잊으라 권하는 듯합니다.

인터뷰에서 드 뫼롱이 시종일관 강조한 것은 ‘감각’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디지털 기술이 발전하고 가상 세계가 아무리 발달해도 여전히 중요한 것은 우리의 감각”이라고 했습니다. 실제 공간에서 직접 만지고, 경험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이라면서요.

총 11개 층 중에서 5개 층이 공공을 위한 미술 전시공간인 이곳에선 현재 헤르조그 앤 드 뫼롱의 건축 이야기, 송은문화재단 신사옥 아카이브 사진작품 전시가 열리고 있습니다. 더 많은 사람이 이 건물의 표면 질감부터 계단 하나하나까지 직접 경험하고 진짜 개방적인 건축, 발견하는 건축이 어떤 것인지 함께 질문해 보았으면 합니다.

이은주 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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