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대통령이 말만 하면 '탄소 제로(0)'가 뚝 떨어지나

2021. 10. 19.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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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18일 2050 탄소중립위원회 제2차 전체회의에 참석하기위해 회의장에 입장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한국 탈원전 아집과 달리 세계적 유턴 추세


현실적 방안 외면하고 기업에 부담만 안겨


대통령 직속 2050 탄소중립위원회(탄중위)가 어제 2030년까지 탄소 총배출량을 2018년 대비 40%까지 줄이기로 했다. 이를 위해 신재생에너지 발전을 점차 확대해 2030년엔 30.2%까지 발전 비중을 높인다는 계획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회의에 참석해 “40% 감축 목표는 한국의 강력한 의지와 국제사회에 대한 책임의식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탄소중립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길이지만 우리가 반드시 가야만 하는 길”이라고 말했다.

방향만 놓고 보면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정부가 제시한 연평균 감축률(4.17%)은 유럽연합(EU·1.98%)보다 훨씬 높은 급격한 목표치다. 지난 8일 원안 발표 때 논란이 됐던 전력 시스템 변화와 관련한 구체적 해결책은 여전히 빠져 있어 기대보다는 걱정이 앞선다. 당장 큰 부담을 져야 할 기업들은 “경쟁력 약화를 막기 위한 정책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고 반발하고 있다. 지금보다 탄소 배출량을 더 줄이려면 수소환원제철, 탄소 포집·활용·저장(CCUS) 등 미래 기술이 필요한데 2030년까지 상용화가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실제로 지난 10년간 공공 연구기관의 탄소중립 관련 기술의 77%가 상용화에 실패했다. 이 밖에 탄소 배출이 많은 업종이 겪는 현실적 어려움도 크다. 철강협회는 “에너지 효율이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이라 감축 수단이 없다”고 우려하고 있고, 석유화학·시멘트업계도 “정부 목표에 맞추려면 생산량을 줄일 수밖에 없다”고 호소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탄중위는 “사회 각계각층의 의견 수렴을 거쳐 결론을 내렸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 8일 원안 회의 당시 갑작스럽게 기존의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치(NDC)가 기존의 26.3%에서 40%로 오른 배경에 문 대통령이 있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문 대통령이 “국제사회에 대한 신의로 40% 이상은 돼야 하는 게 아니냐”고 발언하자마자 불과 한 달여 만에 목표치를 크게 올리는 가속 페달을 밟았다. 이러니 미래를 좌우할 온실가스 감축 로드맵에 대통령의 의지만 있고 방법은 없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이다.

개별 기업 부담과 별개로 국민이 내야 할 비용도 큰 문제다. 국회입법조사처 추산에 따르면 탈(脫)원전을 전제로 한 탄소중립 시나리오대로라면 앞으로 30년간 전력 생산 비용 누적 손실은 1067조4000억원에 이른다. 비교적 값이 싼 화석연료나 원전 대신 신재생에너지 비중이 커지면서 앞으로 전기요금은 올라갈 수밖에 없다.

프랑스와 영국 등 세계 각국은 탄소 배출량 감축을 위해 속속 기존의 탈원전 정책에서 유턴해 원전 투자로 방향을 바꾸었다. 각국 정상이 이런 판단을 한 데는 원전이 탄소중립으로 가는 현실적 대안인 데다 국민 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어서다. 상황이 바뀌면 정책을 유연하게 수정해야 하는데 탈원전 도그마에 빠져 국민 부담만 지우고 있어 심히 우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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