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 중립 실현할 기술도 없는데..2050년까지 '넷제로'

김남준 입력 2021. 10. 18. 18:16 수정 2021. 10. 19. 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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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탄소 중립 최종 청사진이 나왔다. 2050년까지 탄소 배출을 ‘넷제로(Net-zero:탄소 배출량이 흡수량과 같거나 적어 순배출이 0인 상태)’로 만들고, 2030년까지 온실가스를 2018년 총배출량 대비 40% 줄인다. 전문가는 정부가 탄소 중립을 위해 “가장 세고 빠른” 길을 택했다며, 에너지와 산업계 부담이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가장 세고 빠른 안으로 확정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 최종안은.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18일 탄중위는 제2차 전체회의를 열고 ‘2050 탄소 중립 시나리오’와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 상향 안을 최종 심의ㆍ의결했다. 탄소 중립 시나리오와 NDC는 다음 주 국무회의에서 확정한다. NDC 수정안은 11월 초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6)에서 발표 후 국가연합(UN)에도 제출한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NDC 안은 국제기구에 제출하기 때문에 일부 구속력을 가진다”면서 “탄소 중립 시나리오는 강제성은 없지만, 앞으로 구체적 이행 계획을 법제화할 예정”이라고 했다.

관심을 모았던 탄소 중립 시나리오는 큰 틀에서 탄중위가 지난 8월 발표했던 3가지 시나리오 중 가장 강력한 3안으로 정했다. 다만 석탄과 LNG(천연액화가스) 발전 모두 중단하는 A안과 LNG 발전은 일부 남기는 B안 2가지로 선택지만 나눴다. 정부는 ‘탄소 포집 활용 저장(CCUS)’ 기술을 확보할 경우 B안, 확보하지 못하면 A안으로 간다는 방침이다. 탄소 중립 중간 계획이라고 할 수 있는 NDC는 기존 26.3% 감축(2018년 대비)에서 40% 감축으로 ‘속도’를 대폭 높였다. NDC 수정안 대로면 2030년까지 한국 연평균 온실가스 감축률은 4.17%다. 주요국인 일본(3.56%)·미국과 영국(2.81%)·유럽연합(1.98%)보다도 높다.


화석 연료 퇴출…에너지 업계 '비상'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은 에너지 업계다. 탄중위 안 대로면 지난해 전체 설비 용량의 60.4%를 차지 하는 석탄과 LNG 발전 대부분을 신재생에너지로 채워야 한다. 신재생에너지는 설비뿐 아니라 용지ㆍ에너지 저장장치 등 부대 비용이 추가로 들어 막대한 돈이 필요하다. 탄중위는 정확한 에너지 전환 비용을 밝히진 않았다. 하지만 이종호 전 한국수력원자력 기술본부장은 탈원전 정책을 유지하면서 신재생에너지를 확대하면 2050년까지 설비 투자비만 약 1394조원에 필요한 것으로 분석했다.
자료: 양금희 국민의힘 의원

이런 비용은 전기요금 인상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탄중위도 “장기적으로 탄소 비용(온실가스 배출로 인한 피해 비용)을 발전 원가에 100% 반영하고, 연료비와 함께 전기요금에도 반영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노동석 서울대 원자력정책센터 연구위원은 “신재생에너지 확대를 먼저한 유럽도 최근 발전량 부족에 화석 연료 확보에 나서는데, 우리는 전부 퇴출한다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한지 모르겠다”고 했다.


제조업 부담도 눈덩이


제조업 부담도 문제다. 탄중위는 최종안에서 2050년 산업 분야 탄소 배출량을 8월 발표했던 초안(5310만tCO2eq) 보다도 소폭 축소한 5110만tCO2eq으로 제시했다. 특히 탄소 배출량이 많은 철강(95%)·시멘트(53%)·석유화학 및 정유(73%)는 물론 반도체·디스플레이(78%) 등 전력 다소비 업종도 2018년 대비 2050년까지 배출량 대부분을 줄여야 한다.
자료: 양금희 국민의힘 의원

이들 업종이 탄소를 감축하기 위해선 기존 공정 자체를 바꿔야 해 비용이 더 든다. 양금희 국민의힘 의원이 확보한 한국석유화학협회 내부자료에 따르면 2050년 업계 예상 탄소 배출량(1억1006만8000tCO2eq)을 모두 감축하기 위해 최대 270조원이 필요했다. 한국철강협회도 대표적 탄소 저감 기술인 수소환원제철(석탄이 아닌 수소로 철광석 녹이는 기술) 적용에만 109조4000억원이 든다고 추산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충분한 사회적 합의와 경제ㆍ사회적 영향 분석 없이 정부와 탄소중립위가 일방적으로 결정한 부분에 대해 유감을 표한다”며 “온실가스 감축 목표의 급격한 변화가 기업의 생산설비 신ㆍ증설 중단, 해외이전, 고용감소 등 국가 경제의 악영향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도 “경제계와 산업계는 우리 산업의 에너지 효율이 세계 최고 수준이며 획기적인 탄소 감축 기술 도입이 어려운 점 등을 제시하며 목표치 조정을 요청해 왔지만,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며 유감을 표했다.


기술 없이 '과속'…“다음 정부 떠넘겨”


비용뿐 아니라 탄소 중립을 실현할 ‘방법’ 확보도 난관이다. 탄중위는 수소환원제철ㆍCCUS와 같은 기술 확보를 탄소 감축 방법으로 제시했다. 하지만 이런 기술은 2050년까지 상용화가 가능할지 미지수라는 게 업계 평가다.

실제 탄소 중립 위해 필요한 기술로 평가받는 CCUS는 국내에서는 아직 기초 연구 단계에 머물고 있다. CCUS는 석유화학·철강·시멘트 공정 과정에서 배출하는 이산화탄소가 공기 중으로 방출되는 것을 막고, 이를 모아 따로 저장하거나 다른 물질로 재활용하는 기술이다. 철강업계가 2040년 확보를 목표로 개발 중인 수소환원제철 기술은 아직 상용화를 시킨 나라가 없다.

실제 양 의원이 산업부·과학기술정보통신부 소관 연구기관의 탄소 중립 연구·개발(R&D) 현황을 분석한 결과 전체 과제 2488건 중 77.8%(1934건)가 경제적 성과를 거두는 데 실패했다. R&D 기술 성숙도를 판별하는 기준인 TRL(Technology Readiness Level) 지표로도 양산 단계인 ‘TRL 9’에 해당하는 기술은 전체 2.1%(57건)에 불과했다. 만약 기술을 확보하지 못하면 막대한 비용을 들여 탄소배출권을 구매하거나 아예 사업 자체를 이어 가지 못할 수도 있다. 생산량 자체를 줄이거나 신규 투자를 미뤄야 하는 악순환에 직면할 수 있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에너지정책학과 교수는 “미국과 유럽은 기술 확보 어려움에 탄소 감축 속도를 초반엔 천천히 가고 2050년에 가까워질수록 높이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면서 “정작 정부는 기술도 없는데 속도만 높이는데 결국 다음 정부에 숙제를 떠넘기는 꼴”이라고 했다.

세종=김남준 기자 kim.nam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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