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계방천에 '멸종위기' 열목어가 돌아오는 그날이 오면

전명원 입력 2021. 10. 18. 11:00 수정 2021. 10. 18.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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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전명원의 일상의 발견(16)


봄가을이면 매주 낚시를 갔다. 어둑한 이른 새벽에 종종 운두령을 넘었다. 고갯길에서 내려다보면 구름바다였다. 하지만 몇 년을 다녔어도 깜깜한 때에 그 고개를 넘은 적은 없었다. 초보 낚시꾼 시절, 누군가가 믿거나 말거나 하며 해준 이야기는 이랬다. “6.25 전쟁 때 운두령에서 전투가 너무 치열해 골짜기로 피가 흘렀대요.” 그 이야기를 듣고는 깜깜한 밤에 운두령을 혼자 넘을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깜깜한 밤만 아니라면, 운두령 고갯길만큼 아름다운 곳은 없다. 구불구불한 고갯길도, 고갯마루에서 내려다보는 경치도 모두 발길을 재촉할 수 없게 만드니 말이다.

56번 도로를 타고 가다 보면 만나는 물줄기가 계방천이었다. 누구에겐 구룡령으로 가기 위해 그저 지나가는 길일 수도 있다. 또 누구에겐 그 유명한 은행나무 숲을 보러 가는 길이었을 수도 있겠고 말이다. 나에겐 그 계방천이 봄가을이면 매주 찾는 제2의 고향 같은 곳이었다. 사람도, 차도 드물게 지나가는 그 물길에서 낚시할 때엔 마치 다른 세상에 와있는 것 같았다.

열목어는 이미 금어기가 있었고,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었지만, 이제 아예 열목어 자체가 멸종위기 야생생물이 되었으므로 더이상 낚시를 할수 없게 되었다. [사진 환경부]


바람이 불어 건너편 산의 나무들이 흔들렸다. 큰바람이 불 때엔 마치 산 전체가 일렁이는 것만 같았다. 계곡의 물이 힘차게 흘렀다. 햇살 좋은 오후, 가만히 눈을 감고 있으면 나를 스쳐 가는 바람의 소리도 들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나는 플라이낚시로 계방천에서 열목어를 낚았다. 한 마리를 낚으면 충분했고, 세 마리쯤 낚으면 만선이나 다름없는 어설픈 낚시꾼이 나였다. 열목어는 순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들을 만나면, 사진을 찍고 도로 돌려보내 주었다. 어떤 날은 사진조차 찍지 않았다.

어느 해인가는 계방천에서 혼자 캠핑을 했던 밤도 있었다. 밤이 되자 물소리는 더욱 또렷해졌다. 누구는 그 빛없는 계곡의 밤이 무섭지 않느냐 했지만, 계방천은 이미 내겐 익숙했기에 낯선 공포는 없었다. 새벽이 되어 텐트를 걷고 나왔을 때 계곡의 물안개와 그 너머의 푸른 나무들이 어울린 그 싱그러움을 잊을 수 없다. 계곡가에서 캠핑을 하면 나는 불을 피우지 않았다. 봉지빵을 부스럭거리니 근처에서 채소를 다듬고 계시던 동네 할머니를 따라온 큰 개가 관심을 보였다. “못 써! ” 하는 할머니 말씀에 눈치를 보던, 열목어처럼 순한 얼굴을 한 녀석과 눈을 마주치던 그런 아침도 있었다.

“2012년 5월 31일 환경부는 열목어를 멸종 위기 야생생물 2급으로 지정했다.”

어느날 기사한줄이 떴다. 열목어는 이미 금어기가 있었고, 그 서식지 몇 곳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제 아예 열목어 자체가 멸종위기 야생생물이 되었으므로 더이상 낚시를 할수 없게 되었다. 낚시꾼들에게 열목어는 잘 낚였다. 그러니 그럴 리가 없다고, 멸종위기라니 말이 안 된다고 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아닐 수도 있다.

언젠가 계방천에 열목어가 돌아오는 날을 그려본다. 그날이 오면 있는 듯 없는 듯 자연 속으로 스며드는 하루를 보낼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사진 pixabay]


낚시를 하는 사람에겐 ‘포인트’라는 것이 있다. 계절이나 수량에 따라 열목어가 잘 낚이는 곳을 말한다. 오랜 세월 포인트는 낚시꾼들에게 전해져 오며 물고기가 잘 낚여왔으므로, “멸종 위기라니…”하고 의아해했을 수도 있다. 어쨌거나 열목어는 부침을 겪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1급수에 사는 냉수성 어종인 그들에게 계곡물은 전과 같지 않고, 지구는 자꾸만 더워진다. 주변 환경 역시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

이제 열목어 낚시를 하지 않으니 계방천에 갈 일이 없어졌다. 하지만 해마다 봄이 될 때, 그리고 뜨거운 여름을 지나고 가을을 맞이할 때면 늘 습관처럼 며칠간 계방천을 생각한다. 그곳의 순한 열목어를 생각한다. 언젠가 계방천에 열목어가 돌아오는 날을 그려보기도 한다. 그날이 오면, 예전처럼 낚싯대를 들고 있는 듯 없는 듯 그렇게 자연 속으로 스며드는 하루를 보낼 수 있으리라 기대하면서 말이다.

작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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