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중앙] 숙제도 친구 만나는 것도 "귀찮아"..우울증 신호일까

김현정 2021. 10. 1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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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는 세상은 참 빠르게 돌아갑니다. 오늘 구입한 최신 휴대전화나 노트북이 1~2년 뒤에는 옛날 것으로 취급되며, 우리가 입는 옷이나 말투 역시도 빠르게 유행을 타고 변화하지요. 그뿐 아니라 우리의 생활도 아침에 눈을 뜨면 씻고 시간 맞춰 등교를 하거나 온라인 수업을 들어야 하고, 오후에 가야 하는 학원 숙제를 해야 하는 등 바쁘게 돌아갑니다. 설령 내가 아직 바쁜 생활에 뛰어들지 않았더라도 점차 나이를 먹을수록 우리는 바쁜 시간 속에 몸을 맡긴 채 살아가게 됩니다.

하지만 이와 정반대로 '귀차니즘'(귀찮다의 어간 '귀찮'과 ~주의·상태 등을 뜻하는 영어 '~ism'의 합성어) 시대이기도 합니다. 친구를 만나는 것도, 운동을 하는 것도, 씻는 것도, 숙제를 하는 것도, 계획을 세우는 것도 모두 귀찮아하는 거죠. 그래서 침대에 누워 휴대전화만 들여다보며 시간을 보내고 누군가 왜 그러냐고 물으면 그냥 ‘귀찮아서!!’라는 말로 일축해 버립니다.
이와 비슷하게 어떤 사람들은 ‘고양이처럼 살고 싶다’고 말합니다. 그냥 먹고 싶을 때 먹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느릿느릿 걸어 다니거나 누워있는 고양이처럼, 귀찮은 일은 하고 싶지 않다고 이야기하죠.
사람들은 이제 ‘귀찮다’라는 말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고 그냥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넘어 갑니다. 시대는 점차 빠르게 변화하고 우리에게 바쁘게 움직이라고 하는데 도대체 왜 이렇게 귀찮아하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는 것일까요? 귀차니즘과 같은 신조어가 생길 만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귀찮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귀찮다’라는 것은 어떤 일을 하기 싫다는 말이기도 하지만 귀차니즘에 빠진 사람은 특정 한 가지 일만 귀찮아하는 것이 아니라 움직여야 하는 일, 말하자면 에너지를 써야 하는 일을 귀찮다고 말하며 움직이려 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귀차니즘은 ‘무기력’, ‘동기 없음’과 일맥상통하는 현상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누구나 귀찮을 수 있고, 어떤 일을 피하고 싶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경우가 반복되고 있다면 그것을 아무렇지 않게 넘길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면 어떤 일을 시도하는 것이 점차 두렵고 어려운 일이 될 것이고 지레 포기하는 경험이 많아져요.
또 일정 기간 귀차니즘에 빠져 있다 보면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움직이는 것은 더욱더 힘들어지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자신을 탓하는 일이 늘어나죠. 그렇게 활력은 점점 더 떨어지게 됩니다.
이러한 반응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어떤 질병과 비슷한 반응입니다. 점차 사람과 현실에서 멀어지고 자신만의 동굴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 강렬한 자극 이외의 것에는 반응을 할 에너지가 없으며 그 반응은 화나 분노, 슬픔의 감정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은 질병. 바로 우울증과 매우 비슷합니다.
물론 귀차니즘의 영향을 받고 있다고 해서 다 우울증이라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지금 나에게 특별하게 신체적으로 피로한 일이 있는지, 요즘 갑자기 할 일이 너무 많아졌는지, 몸이 아픈지, 최근 신경 쓰는 일이 생겼는지를 먼저 확인해 봐야죠. 그것이 아니라면 혹시 우울감이 높고 지속되는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울증은 현대인의 ‘감기’ 라고도 하고 일생에 한번쯤은 찾아온다고도 합니다. 감기에 걸린 것이 온전히 내 잘못이 아니듯 우울증도 내 잘못이 아닙니다. 하지만 우울증인 것을 의심하면서도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잘못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나를 돌봐주지 않고, 나를 위해주지 않는 행동이니까요. 자신을 위해주고 보살펴줄 사람은 부모님이나 가족, 선생님 이전에 반드시 나 자신이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도 바쁜 생활 속에서 지쳐있는 나를 발견했다면, 나를 위해 무엇을 해주면 기분이 좋아질지 또는 위로가 될지 한번 생각해 보세요. 그리고 그것을 직접 실천해 보면 어느새 따뜻함을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글=전수경 테라피엔스 심리상담연구소 센터장/차의과학대학교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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