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규의 아하, 아메리카] 12월 시한 미 국가부도 여야 '폭탄 돌리기'

김필규 2021. 10. 18.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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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경 원 규모 연방정부 빚 못 갚을 위기
그간 수십 차례 한도 높이며 문제 해결
공화 "책임져라" 민주 "트럼프가 진 빚"
정부 부채한도 아예 없애자는 목소리도

미국 뉴욕 맨해튼 6번가 원 브라이언트 파크 근처엔 특별한 전광판이 있다.

‘우리나라의 부채’ 밑에 적힌 숫자는 16일(현지시간) 현재 26조8980억 달러(약 3경1800조 원)에서 지금도 쉴 새 없이 올라가고 있다. ‘당신 가족이 갚아야 할 국가부채’는 21만 달러(약 2억4800만원)가 넘는다고 적혀있다. 이른바 ‘국가부채 시계’(National Debt Clock)다. 한 사업가가 “다음 세대에 부담을 떠넘기지 말자”는 취지로 만들었는데, 1989년 첫해 2조7000억 달러가 적혔던 이 전광판의 숫자는 2008년 10조 달러를 넘어 앞자리를 추가해야 했다.

30조 달러를 향해 가는 미국의 국가부채는 이제 이를 못 갚는 채무불이행(디폴트)까지 걱정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지난 14일 조 바이든 대통령이 한시적으로 부채한도를 높이는 법안에 서명하며 한고비는 넘겼지만, 오는 12월 초유의 미국 국가부도 사태가 올 수 있단 위험은 여전하다.

미국 뉴욕 맨해튼에 있는 국가부채 시계. 16일(현지시간) 현재 26조8980억 달러(약 3경1800조 원)의 국가부채가 있으며 지금도 계속 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뉴욕=최선욱 기자]

Q : 어쩌다 이런 일이?
미국이 부채한도를 정한 것은 1차 세계대전 당시인 1917년이다. 돈을 꿔 참전비용을 대는 것을 반대하는 의원들을 달래기 위해 10억 달러를 상한으로 정했다. ‘부채 천장’(Debt Ceiling)이라고도 하는데, 그동안 이 한도를 지키기보다는 기둥을 다시 쌓아 천장을 높이며 부채 문제를 해결했다. 2019년까지 법으로 정한 부채한도는 22조 달러였다. 당시 의회는 이 한도를 2년간 적용하지 않기로 했는데, 그 사이 미국 부채는 28조 달러 이상이 되며 이 한도를 훌쩍 뛰어넘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7일 부채한도 협상에 대한 전망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잘 되기를 바란다'는 의미를 담아 손가락을 꼬아 보였다.[AP=연합뉴스]

또 한 번 미루거나 한도를 높여야 하는데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 권한을 쥔 공화당 상원이 이를 가로막고 있다. 자신들과 협의 없이 앞으로 인프라ㆍ사회복지에 4조 달러를 쓰겠다는 민주당의 계획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부채한도를 못 높이면 결국 18일쯤 디폴트(채무 불이행)가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다행히 막판에 여야가 오는 12월까지 부채한도를 28조9000억 달러까지 높이는 것에 합의하며 일단 급한 불만 껐다. 그러나 한시적 조치일뿐 그 전까지 의회가 부채한도상향법을 처리하지 못하면 국가부도로 번진다.
실제 국가 부도나면 누구 잘못?
CNN에 따르면 지난 50년간 미 의회가 연방정부 부채한도를 올린 것은 총 78회다. 이 중 49번은 공화당 대통령 때, 29번은 민주당 대통령 때 이뤄졌다. 누가 집권하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에 초당적으로 해결한 경우가 많았는데, 이번엔 내년 중간선거 등을 앞두고 공화당의 반대가 유독 거세다.

1916년 미국 뉴저지 해안에서 사람을 공격하는 '식인 상어'를 잡았다는 내용을 소개한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의 기사. 이 충격적인 사건이 같은 해 있던 미국 대선에까지 영향을 줬다는 분석도 나왔다. [위키피디아]

이를 두고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은 뉴저지 해변에 상어 떼가 출몰했던 1916년 대통령 선거 당시와 비교했다. 엄밀히 상어 피해는 연방정부와 상관없지만 흉흉해진 여론에 당시 우드로 윌슨 대통령이 출신 지역인 뉴저지에서 패하는 원인이 됐다는 것이다. 지금 출혈을 감수하며 공화당이 부채한도 높이는데 협조하지 않는 것도 이런 이유라는 분석이다.

반면 민주당은 지금 갚아야 하는 부채의 상당 부분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때 쌓인 것이라고 반박한다. 게다가 2017년 공화당이 일방적으로 세금을 감면하면서 살림을 더 어렵게 만들었다고도 주장한다.
대통령이 부도 막을 방법은?
공화당의 미치맥코널 상원 원내대표는 “대통령과 민주당 상·하원 의원들이 부채한도를 높일 모든 수단을 가지고 있는데도 쓰지 않고 있다”며 책임을 공화당에 떠넘기고 있다고 비판한다.

미국 공화당의 미치 맥코널 상원 원내대표는

실제 공화당 도움 없이 해결할 방법은 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때도 나온 이야기인데, 액면가 1조 달러짜리 주화를 발행하는 것이다. 대통령에게 기념주화 발행 권한이 있다는 점에서 착안한 아이디어로, 발행 후 연방준비제도(Fed)에 예치해 1조 달러를 끌어 쓴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상 돈을 새로 찍어내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달러화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일이라 재닛 옐런 재무장관도 최근 청문회에서 반대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예산조정 절차를 통해 공화당의 필리버스터를 무력화하고 상원의 과반 찬성으로 법안을 통과시키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매번 쓸 수 있는 게 아니라서 앞으로 인프라·사회복지 예산안 등을 강행해야 하는 민주당 입장에선 최대한 아껴두고 싶은 카드다.
정말로 미국이 부도날까?
CNN의 경제 분석가 크리스 실리자는 “사실 의회가 부채한도를 높이지 않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잘라 말했다. 벼랑 끝 대치를 하다가도 결국은 결론을 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것은 실제 디폴트가 일어났을 때 충격파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당장 재무부가 지출의 40%를 줄이면서 미국 경제가 타격을 입고, 미 국채를 많이 가진 중국·일본 등을 시작으로 세계 경제가 요동칠 거라는 게 월 스트리트 저널의 전망이다.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은

2011년 공화당이 부채한도 증액을 가로막았을 때도 스탠더드앤드푸어스가 70년 만에 처음으로 미국의 신용등급을 강등한 적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부채한도 자체를 없애자는 이야기도 나온다. 현대화폐론의 이론가인 경제학자 스테파니 켈톤은 “스스로 돈을 찍어낼 수 있는 미국 정부는 돈이 떨어질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며 “도로·교량·무기·병원 등 원하는 것을 마음껏 살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옐런 장관 역시 “부채한도는 대통령과 재무부에 파괴적”이라며 폐지에 찬성한단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상당한 정치적 부담을 무릅쓰고 총대를 멜 의원들이 있을지는 미지수다.

워싱턴=김필규 특파원 phil9@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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