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 중독'에 공황장애까지.. 신수지가 털어놓은 고민

김종성 2021. 10. 17.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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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오은영의 금쪽 상담소>

[김종성 기자]

리듬체조 국가대표 선수로 활약했던 스포테이너 신수지가 채널A <오은영의 금쪽상담소>를 찾아왔다. 신수지는 하루라도 운동을 안 하면 견딜 수 없다는 고민을 꺼내놓았다. 몸이 아무리 힘들어도 운동을 쉴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는 국가대표를 은퇴한 지 11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운동에 몰두하고 있었다. 11살 때 운동을 시작한 이후로 운동을 한 번도 쉰 적이 없다니 정말 놀라웠다. 

신수지가 은퇴 후 한 일은 PT 자격증 취득, 프로 볼링 선수 자격 따기처럼 리듬체조 이외의 다른 운동에 몰두하는 것이었다. 현재는 골프와 야구까지 병행하고 있다고 했다. 신수지는 처음부터 볼링 선수가 될 생각이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친구를 따라 볼링장에 갔는데 점수가 50점밖에 나오지 않아 선수 출신으로서 자존심이 상했고, 그때부터 볼링 연습에 매진했다는 것이다. 
 
 <오은영의 금쪽 상담소>의 한 장면.
ⓒ 채널A
 

한 달동안 매일같이 연습한 끝에 평균 점수가 180점까지 껑충 뛰어올랐지만 뭔가 만족이 되지 않았다고 한다. 자신만의 기준인 200점을 넘기지 못하는 건 전문적인 훈련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라 생각해 그 길로 최고의 전문가를 찾아갔고, '10개월 안에 프로 자격증을 따겠다고 약속하면 제자로 받아주겠다'는 제안을 받고 볼링에 더욱 매진하게 됐던 모양이다. 

그러나 연습을 너무 많이 해 손가락 사이가 찢어지는 부상을 입었고, 시험 중에 피가 나자 엄마에게 부탁해 순간접착제를 구입해 손가락에 바르고 마비되길 기다렸다고 시험을 쳤다고 한다. 그 말을 들은 오은영과 MC들(정형돈, 박나래, 이윤지)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신수지는 볼링을 통해 금전적인 이익을 얻은 것도 없지만, 노력으로 쟁취하고 인정받은 것만으로 만족한다며 웃음지었다.

"운동 중독 맞는 거 같아요. 운동 중독은 내 몸의 '무리예요'라는 신호를 못 알아채요." (오은영)

신수지는 하루에 운동을 다섯 시간 이상씩 꼬박 할 뿐더러 몸이 아프거나 부상이 있어도 운동을 빼먹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정말이지 할 말을 잃게 만드는 열정이었다. 이쯤되니 궁긍했다. 신수지는 왜 이토록 운동에 목숨을 거는 걸까. 그 이유가 무엇일까. 오은영은 신수지가 '운동 중독'이라고 진단했다. 그 말을 들은 신수지는 동공 지진을 일으켰다. 수긍하지 못하는 반응이었다. 

오은영은 어떻게 해야 알아들을 수 있게 설득할 수 있을지 난제라고 난감해했다. 오은영은 중독의 특성은 과도한 몰입을 할 때 대뇌에서 '도파민'이 올라가는데, 이 때 몸 안에서 '내인성 오피오이드'가 생성돼 통증을 완화시킨다고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쾌락과 황홀감을 경험하게 된다. 신수지의 경우에는 '과한 운동'을 통해 이 중독의 매커니즘을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운동 중독 자가 진단>

1주일에 3회 이상 2시간 이상 운동한다.
하루 스케줄을 운동 중심으로 짠다
정해놓은 운동을 다 못하면 죄책감을 느낀다
스트레스를 운동으로 푼다
운동에 대한 목표가 뚜렷하다

신수지는 운동 중독 자가 진단의 5가지 항목에 모두 해당됐다. 초등학교 4학년 무렵부터 리듬체조를 시작했던 신수지에게 운동은 어떤 의미였을까. 어린 시절부터 혹독한 훈련을 감당해야 했고, 훈련량에 비해 먹는 건 적다보니 성격은 예민해졌다. 신수지는 매일 그만두고 싶었다고 털어놓았다. 들인 노력에 비해 미래가 불투명했고, 환경도 열악해 부상을 입기 일쑤였다. 리듬체조는 신수지에게 애증의 존재였다. 

힘들지만 참아야 했던 결정적인 이유는 올림픽에 출전하고 싶다는 간절한 꿈과 자신을 위해 희생하는 가족 때문이었다. 부모님은 신수지를 위해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았는데, 한 달에 3000만 원이나 되는 전지훈련비를 위해 집까지 팔았다고 한다. 아빠는 투잡을 뛰며 비용을 충당했다. 신수지는 올림픽에 못 가면 죽겠다는 각오로 운동에 매진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걸 허구의 독립이라고 해요." (오은영)

신수지는 그때부터 힘든 일이 있어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고, 꾹 참고 스스로 해결하는 타입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실어증을 앓기도 했다. 신수지는 자신을 독립적인 편이라고 얘기했지만, 오은영은 '허구의 독립'이라 설명했다. 그러면서 힘들 때 의지하고 싶은 기본적 욕구가 채워지지 않으면 겉으로만 독립적인 것처럼 보이는 상태가 된다고 덧붙였다.  

오은영은 신수지의 엄마에 대해 궁금해했다. 신수지는 엄마가 가족에 대해 희생적이면서 자신에게는 굉장히 엄격했다고 회상했다. 모질게 대해서 스스로 이겨내길 바라는 편이었다는 것이다. 신수지는 힘들어하는 자신을 안아주면 포기할 거라 생각했던 것 같다며 만약 엄마가 '힘들면 한국 들어와!'라고 했으면 평생 올림픽 근처에도 못 갔을 거라며 엄마를 이해하려 했다. 

진짜 독립 필요한 시간

하지만 오은영은 그것은 공감이 아니라 경쟁을 대신 내려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수많은 부모들이 아이의 마음을 들어주면 내면이 약해질 거라 여기지만, 인간의 마음은 공감을 통해 훨씬 강해진다고 강조했다. 오은영은 신수지가 공감이 가지는 엄청난 힘을 아직 모르는 것 같다고 안타까워하며 부모에게 공감을 많이 받았다면 조금 더 편안하게 자랐을 거라며 위로했다. 

"가족은 각자의 자리에서 감당해야 할 몫이 있거든요. 감당해야 할 몫이라는 게 혼자 꿋꿋이 버티라는 게 아니라 부모와 자식과 관계에서는 나이가 몇 살이든 간에 부모는 부모로서의 역할과 몫이 있고, 자식은 자식으로서의 역할과 몫이 있거든요. 근데 이 몫으로 엄마가 힘들어 할까봐 수지 씨가 전혀 얘기를 안 하는 건 그게 어떻게 보면 어머니를 더 힘들게 하는 면이 있을 수 있다는 거죠." (오은영)

신수지는 훈련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힘든 내색을 하면 부모님이 힘들어하니까 괜찮은 척을 했고, 방 안으로 들어가 혼자서 고통을 인내했다.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어지러운 나날을 보내다가 언젠가부터 바깥에서도 그런 증상이 이어져 병원을 찾았더니 '공황장애' 진단을 받게 됐다고 했다. 치료의 첫 걸음으로 1년 반 전에 독립을 하면서 지금은 많이 호전됐다고 설명했다. 

신수지에게 있어 올림픽 출전과 체조 선수로서의 성공은 개인의 성취, 개인의 꿈이자 가족의 꿈이었다. 물론 리듬체조를 좋아했지만, 어린 나이에 신수지가 짊어져야 했던 부담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또, 엄마를 사랑하면서도 어린 마음에 때로는 너무 도 미웠을 것이다. 오은영은 어린 수지가 오롯이 겪어야 했던 꿈과 부모를 향한 양가적 감정을 이해하며 다독였다. 

당시 불안과 두려움에 맞서기 위해 신수지가 선택한 방법은 정해진 틀 안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수치화할 수 있는 자신만의 틀로 불안을 잠재웠다. 아무리 아파도 정해진 틀을 지켜야 마음이 편했으리라. 오은영은 휴식은 비생산적인 퇴보가 아니라 회복의 시간이라 정의했다. 충분한 휴식을 가져야 진짜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다고 다독였다. 신수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오은영은 몸은 떨어져 있지만 마음의 끈은 가족에게 얽힌 채 지냈던 신수지에게 이제 진짜 자유로운 독립을 할 시간이라고 힘을 북돋아주었다. 그 독립이란 마음의 독립과 신체적 독립은 물론 공간적 그리고 경제적 독립까지 포괄하는 개념이었다. 신수지는 "처음이라 길지 않더라도 조금씩 늘려가면서 쉬는 시간을 가져보겠다"고 의지를 보였다. 부디 신수지가 진정한 의미의 독립을 이뤄내길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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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김종성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버락킴, 너의 길을 가라'(https://wanderingpoet.tistory.com)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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