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서 제일 높은 회전 레스토랑, 영화보다 유명한 007 촬영지[여기 어디?]
영화보다 촬영지로 더 유명한 ‘007’ 시리즈가 있다. 1969년 영화 ‘007과 여왕(On Her Majesty's Secret Service)’이다. 영화의 줄거리도, 2대 ‘제임스 본드’ 조지 라젠비(한 편 만에 007 자리에서 물러났다)의 존재도 지금은 기억하는 이가 많지 않다.
반면 알프스의 장쾌한 풍경과 스키 액션 장면은 오래도록 회자된다. 이곳이 바로 스위스에 있다. 알프스 영봉 가운데 하나인 쉴트호른(2971m)이다. 아이거(3970m)‧묀히(4107m)‧융프라우(4166m)로 이어지는 일명 ‘알프스 스카이라인’을 한눈에 조망할 수는 포인트로 유명한 장소다.
‘007과 여왕’은 제임스 본드가 전 세계에 바이러스를 퍼뜨리려 하는 악당 블로펠드(텔리 사바라스)에 맞서는 이야기다. 블로펠드가 알프스 꼭대기에 있는 비밀스러운 연구소에서 20대 여성들을 상대로 바이러스 실험을 한다는 설정. 실제 쉴트호른 정상의 레스토랑 겸 전망대에서 주요 장면을 촬영했다.
쉴트호른에 케이블카가 놓인 건 1967년의 일이다. 영화는 그 이듬해 촬영했다. 대개 영화 세트는 설치와 철거가 쉽도록 조립식으로 세우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실제로 건물을 올려 촬영했다. 케이블카 회사에서 알프스 정상에 그림 같은 레스토랑을 짓는다는 소식에 ‘007’ 제작진이 일부 건설비용과 영구 활용 가능한 세트를 지어준다는 조건으로 일찌감치 촬영 허가를 받았단다. 그렇게 세계 최고 높이의 회전식 레스토랑이 탄생했다. 피츠 글로리아(Piz Gloria)라는 이름의 레스토랑인데, 이언 플레밍의 원작 소설과 영화에 등장한 이름을 그대로 가져왔다.
쉴트호른은 반세기 넘게 007 마케팅을 이어가고 있다. 덕분에 전 세계 007 팬의 성지가 된 지 오래다. 케이블카 정류장에서부터, 쉴트호른 정상의 레스토랑과 전망대 곳곳이 007 테마로 꾸며져 있다. 제임스 본드와 본드걸이 정장 차림으로 총을 들고 있는 특유의 실루엣 문양이 화장실 칸마다 새겨 있을 정도다.
내부 식당 아래층에는 ‘본드 월드 007’이라는 이름의 체험관이 있다. 1962년부터 이어져 온 ‘007’의 연대기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장소. 365일 007을 상영하는 영화관과 영화 속 헬기와 봅슬레이를 재현한 체험시설도 있다. 2013년 체험관 개관 때 주인공 조지 라젠비(82, 당시 74)도 참석했다. 야외에는 출연 배우와 주요 스태프의 사진과 핸드프린트가 줄지어 늘어선 ‘007 명예의 거리’가 있다.
레스토랑 피츠 글로리아에서는 다양한 스위스 전통 요리를 내놓는데, 최고의 인기 메뉴는 일명 ‘007 버거 세트’다. 햄버거와 감자튀김을 묶은 일반적인 메뉴지만, 빵에 ‘007’ 로고가 찍혀 있어 기념사진을 찍어가는 사람이 많다. 25스위스프랑(약 3만2000원, 스위스는 살인적인 물가로 유명하다).
영화 속 스키 추격 장면의 설원도 쉴트호른이다. 실제로 매년 스키 대회를 열만큼 스키어 사이에서도 명소로 통한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007과 여왕’에서 영감을 받아 ‘인셉션(2010)’의 설원 풍경을 연출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가는 길은 만만치 않다. 스위스 베른 주의 라우터브루넨에서 버스를 타고 슈테헬베르크까지 간 다음, 짐멜발트, 뮈렌, 비르크까지 세 번의 케이블카를 갈아타야 한다. 정상까지는 케이블카로 30여 분이 걸린다. 창밖으로 알프스 전경이 펼쳐지므로 지루할 틈은 없다. 운이 좋으면, 절벽을 기어오르는 알프스 산양 ‘아이벡스’를 볼 수도 있다.
당일치기가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기왕이면 뮈렌에 하루 이상은 묵어가시라 권한다. 오로지 케이블카로만 닿을 수 있는 아담한 산악마을이어서 어느 지역보다 청정하고, 운치도 남다르다. 해발 1600m 산 중턱에 마을이 들어앉아 있는데, 마을 어디서나 알프스의 절경을 만끽할 수 있다. 한동안 국내 신혼여행자들 사이에서도 인기 여행지였다. 알프스 산악마을 가운데 가장 적막하고 평화로운 풍경을 지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쉴트호른(스위스)=백종현 기자 baek.jong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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